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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봉덕
1910년 12월 12일 ~ 1998년 5월 18일
태어난 곳 평안북도 강서군
복무 대한민국
복무 기간 1948년 ~ 1950년
최종 계급 대한민국 육군 대령
기타 이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전봉덕(田鳳德, 일본식 이름: 田中鳳德[1], 1910년 12월 12일 ~ 1998년 5월 18일)
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 간부이며
대한민국의 군인, 변호사이다.
아호는 남헌(南軒)이다.
생애[편집]
평안북도 강서군 출신으로 1932년 경성부에서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만주의 보통학교에서 교원으로 잠시 근무했다.
그러나 다시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에 입학한 뒤 재학 중 일본의 고등 문관시험에 합격했다.
1940년 학교를 졸업하고 조선총독부에서 관료 생활을 시작하여
이듬해 평안북도 경찰부의 보안과장에 임명되었고,
경기도 경찰부 수송보안과장으로 근무하던 중 광복을 맞았다.
전봉덕은 광복 당시 경찰 최고위직인 경시에 올라 있던 조선인 8명 중 한 명이다.[2]
사상범을 다루는 보안과에 근무했지만
미군정의 일제 경찰 경력자 우대 방침에 따라 경기도 경찰부의 보안과장으로 계속 근무했으며,
장택상의 비호를 받으며 미군정 경무부의 공안과장(1946), 경찰전문학교 부교장(1947) 등으로 승진했다.
1948년 반민족행위처벌법의 제정과 함께 친일 경찰에 대한 탄압이 예상되자,
친일파 조직인 88 구락부의 같은 회원이던 신성모 국방부장관의 도움으로
육군사관학교를 졸업(제1기)하고 헌병부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이후 헌병 조직은 친일 경찰들의 도피처가 되었으며,
전봉덕은 자신을 체포하려했던 반민특위의 소장파 의원들이 연루된
1949년 국회 프락치 사건이 발생하자
헌병대 산하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수사본부장에 올라 이들을 체포해 고문했다.
1949년에는 대통령 이승만의 최대 정적인 김구가 자택에서 안두희에게 암살되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때 전봉덕은 안두희를 보호하면서 사건을 축소하고 배후를 은폐하는 쪽으로 수사를 마무리해버렸다.
이승만이 사건 발생 보고를 듣자마자 당일로 그가 수사를 담당할 수 있도록
헌병사령관으로 승진시킨 것을 놓고, 김구 암살의 배후라는 소문이 꾸준히 나돌았다.
전봉덕은 이후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거쳐
변호사로 일하면서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내는 등 법조계의 원로로 활동하였고,
법제사 분야의 저술 활동을 주로 벌였다.
1973년에는 한국법사학회를 창설하고 회장을 맡았다.
1980년대 이후 미국에 건너가 생활했다.
2002년 공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에 모두 선정되었다.
문인 전혜린은 전봉덕의 1남 7녀 중 맏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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