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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0~200; 동한

허황옥(許黃玉)보주태후(普州太后) 의 인도-가야 쌍어문 루트....

by 사마르칸트 2016. 1. 14.












- 쌍어문(雙魚文)


-신석기시대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에서 유래

-어피복魚皮服을 입은 사제가 넘쳐흐르는 물병을 손에 든 수신水神 오아네스를 호위하는 모습


-기원전 12세기에 아시리아에서 만물을 보호하는 신으로 숭배

-아시리아의 사제들은 인간과 인간의 생활을 보호한다는 의미로 물고기 모양의 사제복을 입고 의식을 집행


-바빌로니아 시대에도 계속되어 왕권의 상징처럼 쌍어문이 유행


-이후 동,서로 쌍어 신앙이 전파


-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네팔 ;힌두교,불교


-스키타이를 통해 중앙아시아 전역과 알타이 산악지대의 유목민들에 전파


-로마 기독교





-코살국의 조상신화


- 태고에 대홍수가 있었다.

그때 만물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이때 위기에 처한 「마누」라는 인물이 커다란 물고기(Matsya)의 도움으로 살아났다.

 마누의 먼 후손인 「익스바쿠」가 코살국을 세웠고,

그의 아들이 힌두교의 중흥시조인 「라마」이다.

따라서 물고기는 코살국의 토템이자

힌두교의 한 신상(神像)이 된 것이다.

그래서 코살국의 국장이 신어(神魚)로 정해진 것이다.




-기원전 1세기에,


인도 서북쪽에 살던 중앙아시아 쿠샨족이 인도로 밀고 내려왔다.


이에 따라 아요디야(아유타)란 도시의 지배층 중에는


동쪽에 있는 중국을 향해 망명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보주의 소수민족반란


<후한서> '광무제 본기'


<후한서>에 광무 23년, 서기 47년에 촉(蜀) 땅에서 토착민의 반란이 일어나 진압하여 주동자와 인구 7천 명을 강하계로 이주


허황옥이 가야에 출현하기 1년 전인


서기 47년에 보주를 비롯한 사천성 지역에서 소수민족들의 반란이 일어났고,


 반란이 진압된 후에 사건 연루자들이 양자강 연변의 무한(武漢)으로 강제이주...



-普州許氏 집성촌

주태후(許黃玉)의 故里는 중국 사천성 자양시 안악현 서운향(瑞雲鄕)임.

안악현은 우리의 市,郡에 해당되는데

사천성에서   제일 큰 현(縣)으로서 인구는 160만명이고

중경(重慶)과 성도(成都)의 중간에 위치한다.

보주(普州)는 안악의 고칭(古稱)임.



-오래 전에 보주 땅에 형성된 허씨 집성촌이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는 점,


-보주 땅의 암벽에서 "후한 초에 허씨의 딸 황옥이 용모가 아름답고 지혜가 남들보다 나았다"라는 글귀...



-드라비다어를 사용하는 타밀족...


-고대 인더스 문명을 세웠던 드라비다족이 아리안에게 밀려


지금은 남인도에서 거주...


-인도반도에서 사용된 고대 언어인 드라비다어에서는

 '가야' 혹은 '가라'라는 발음이 '물고기'를 뜻했다고 한다.




cf)인도계 이주민 중 고위직에 오른 인물 중에는


당시 한나라의 황제 선제(BC91년 ~ BC49년)의 후궁이 된 허씨가 있었다.


선제의 장인에 해당되는 평은후 허광한도 쓰촨성 출신으로,


허황옥 역시 그의 일족으로 추정하는 설도 있다.













-김병모 박사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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