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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윷놀이와 제기 등 우리의 전통 민속놀이
-가끔씩 글을 보면
각종 놀이형태.... 돌절구 등의 형태가
우리동네랑 비슷하다해서
그 민족적 연관성을 찾는 것은
좀 먼 느낌이다.
이런 종류의 문화는 석기시대의 유물이기 때문이다...
-석기시대에 헤어져서 다른 길을 간 무리들일 것이다...
--- ‘자력이 아니라 타인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운 좋은 왕’ 또는
‘행운을 가져다 주는 왕’을 지칭하여
‘박히야거세(Pakkiyakose)’
또는 ‘박히야거사이(Pakkiyakosai)’
--->‘박혁거세(朴赫居世)’
---인도가 원산지인 ‘박’은 당시 타밀어와 우리말이 아주 똑같으며
현재 타밀어로는 수라이카이(Suraikai)라고 불리고 있다.
---박은 인도나 아프리카 등 열대지방에서만 자라는 식물....
당시 타밀인들은 일년내내 무더운 날씨를 견디려고 박을 파낸 표주박 등으로 만든 물통을 허리에 차고 다니며 목을 축이곤 했다.
---‘왕’의 명칭 거서간(居西干)도
당시 타밀어 ‘거사간(kosagan)’과 그 발음과 뜻이 완전히 일치한다
---박혁거세 알을 처음으로 발견한
돌산 고허촌의 소벌도리는
타밀어로 ‘훌륭한 지도자(Good Leader)’를 뜻하는 소벌두라이(Sobolthurai)와 거의 같다.
---알천 양산촌의 알평은 아리야판(Aryappan)과,
자산 진지촌의 지백호는 치빠이코(Chippaiko)와,
무산 대수촌의 구례마는 구레마(Kurema)와,
금산 가리촌의 지타는 치타(Cheetha)와,
명활산 고야촌의 호진은 호친(Hochin)과 각각 일치한다.
---박혁거세의 탄생지 근처에 있는 우물 ‘나정’은
타밀어로 “파헤친 도랑이나 이랑”을 뜻하는 ‘나중(nazung)’과 거의 일치한다.
->이건 좀 이상하다...나정은 한자음을 읽은 건데...
타밀족도 우리랑 한자 읽는 음이 같았단 말인가...
-이건 우물 정자를 타밀족도 우물정으로 읽어야 하는건데...
---박혁거세의 또 다른 이름인 ‘불구내’는
현재 타밀 나두주(州) 땅에 있던
당시 타밀인들의 촐라 왕국 바닷가 마을 ‘부르구나이(Purugunai)’와 거의 일치한다
->"부르"란 어원은
상당히 원초적인 어원이다...
불, 부리, 부락, 풀무... 여러 단어가 파생되고 있는
아주 원초적인 언어이다...
---신라 이전의 나라 이름인 ‘서나벌’은
당시 산스크리트어 및 고대 타밀어로 황금을 뜻하는
‘서나(Sona)’와,
벌판(field)을 의미하는 ‘벌’ 또는 ‘펄(Pol)’이 합쳐져
황금밭(Gold Field)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벌" 의 의미는 정말 오래되었다.
---박혁거세의 비 알영(閼英·BC 53 ~?)부인은 아리영이라고도 불리는 데
타밀 여성이름 아리얌(Ariyam)과 거의 일치한다.
아리얌은 아리야말라(Ariyamala)의 줄인 이름으로
기원전 타밀 왕국역사에 나오는 캇타바라얀(Kaththabarayan)왕의 부인 이름인 데
이를 신라 초대 왕비 이름으로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대학자 최치원의 ‘석리정전’에서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곧 천신 이비가지에 감응한 바 되어
대가야왕 뇌질주일(惱窒朱日·이진아시왕의 별칭)과
금관국왕 뇌질청예(惱窒靑裔·김수로왕의 별칭) 두 사람을 낳았다”
힌두교의 주요신
시바(Shiva), 부인 파르바티(Parvati), 두 아들 가네쉬(Ganesh)와 무루간(Murugan)을
각각 고대 타밀어로 ‘이비가지(Ibigaji)’ ‘정견(Chongyon)’ ‘뇌질주일(Noejil Juil)’ ‘뇌질청예(Nojil Chongye)’라고 불렀다.
---박혁거세왕은 재임 17년(기원전 40년)에 알영부인을 대동,
6부를 순시하며 농사와 양잠을 권하고,
농토를 충분히 이용하도록 하였다
(王巡撫六部, 妃<閼英>從焉. 勸督農桑, 以盡地利.)고 전하고 있다
---우리말의 비단, 삼, 길쌈, 벼, 풀 등은 고대 타밀어와 그 발음과 뜻이 완전히 일치한다.
---윷놀이, 제기놀이, 쥐불놀이, 팽이놀이 등 민속놀이도
당시 타밀어로 각각
‘윷노리(Yuddh, Yuth Nori)’
‘제기노리(Jegi Nori)’
‘추불 노리(Chupul Nori)’
‘ 팡이 노리(Pamgi Nori)’로 불리며
그 형태도 완전히 똑같다.
‘놀이’는 고대 타밀어로 ‘노리(Noori), 또는 노루(Nooru)’로 불렸으며
현재 타밀어로는 ‘빌햐야들(Vilaiyattu)’로 불린다.
-“아빠(아빠), 암마(엄마), 안니(언니)”
“난(나), 니(니)””니, 인거 바!(니, 이거 봐!)””니, 인거 와!(니, 이리 와!)””난, 우람(난, 우람하다)”
”난, 닝갈비다 우람(난, 니보다 우람하다)”
”난, 비루뿜(난, 빌다)””바나깜(반갑다)” 난, 서울꾸 완담(난, 서울로 왔다)”
”모땅(몽땅)””빨(이빨), 무크(코), 깐(눈깔), 코풀(배꼽), 궁디(궁덩이)”
---“신라주민은 진한-신라 지역에는
선사시대부터 살면서 수많은 고인돌을 남겨 놓은 토착 농경인들,
기원전 3세기 중에 중국 진나라의 학정을 피해 이민온 사람들,
기원전 2세기에 이주해 온 고조선의 유민들,
그리고 고구려에게 멸망한 낙랑에서 내려온 사람 등으로 구성
---필자가 인도 타밀 출신으로 간주하는
신라 제4대왕 석탈해의 알이 담긴 궤짝도 동해를 표류하다가
동해안의 아진포에 당도하는데
이 곳이 지금의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아진포라고
석씨전국대종회가 밝히고 있어 이래 저래
금산가리촌은 당시 인도 타밀인들의 도래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 제3대 유리왕은 서기 32년 육촌을 육부로 개편하고
각 부에 성씨를 하사함으로써
6촌의 각 촌장들은 자동적으로 각 성의 시조가 된다.
소벌도리는 최(崔)씨의,
알평은 경주 이(李)씨의,
구례마는 손(孫)씨의,
지백호는 정(鄭)씨의,
지타는 배(裵)씨의,
호진은 설(薛)씨의 조상이 된다.
-상당히 흥미로운 기사이다...
이 정도의 증거 만으로도
인도문물의 유입을 부정 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언제, 얼마나 왔는가이다...
-학교에서 배운
조선시대 한글책[언문]을 읽어봐도
이게 우리말인가 싶게... 거의 이해되는 말이 없었다...
아마도
조선초의 사람들과 대화를 한다면
대화가 잘 될 것같지도 않다...
-언제 왔는가는 역사적으로 따져 봐야 하는 것이고...
-얼마나 왔느냐는 유전적인 연구도 같이 해야 할것이다...
-벼농사, 박 이라는 식물의 이름으로 보아
적어도 벼농사 이후의 시대에 유입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와야
나,너 같은
가장 원초적인 말까지 바뀔수 있을 까...
-지배층 소수만 왔다고...
언어 전체가 바뀔수 있을까...
-과연 그들이 지배층이 될만한 파워를 가지고 있을을까...
-유물이 나와야 한다...
-무덤 양식....
대부분 거대한 봉분형태의 신라무덤은 북방식...
유물도 대부분 북방식...
-앞선 나라의 문물이 들어왔다면...
말뿐만 아니라...
유물이 나와야...
-우리나라 벼농사가 상당히 오래되었다는데...
농사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에서 벼가 발견된다는데...
적어도
이땅에도 벼가 자라는 곳이다라는 것...
-과연 고인돌, 농사유적의 사람들과의 관계는....
연구 할것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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