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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0~200; 동한

낙랑국 기록...

by 사마르칸트 2016. 2. 11.

 

 

---태백일사 북부여기
 
①-<단군세기> 13세 흘달 단군 “16년 갑오(B.C1767)

 

은나라 사람들과 함께 하나라 걸왕을 정벌하기로 하여

몰래 신지우량을 파견하여 견(畎)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낙랑(樂浪)과 합쳐서 진격하여

관중의 빈·기(邠岐)의 땅에 웅거하며 관청을 설치하였다”

 

 
- <단군세기> 23세 아흘 단군

 

“원년 갑신(B.C1237) 단제의 숙부인

고불가(固弗加)에게 명하여 낙랑골(樂浪忽)을 통치하도록 했다”

 


-<북부여기 상> 북부여 시조 해모수 단군 조

 

 “45년 병오년(B.C195) 겨울 낙랑의 왕 최숭이

 

낙랑으로부터 진귀한 보물을 산처럼 가득 싣고 해(海)를 건너

 

마한의 도읍인 왕검성에 이르렀다”

 

3세 고해사 단군 조에

 

“원년 임신년(B.C169) 정월 낙랑의 왕 최숭이 곡식 300섬을 해성(海城)에 바쳤다.

 

 

 

---신라본기


◇ 시조 박혁거세 30년(B.C28) 낙랑인이 군사를 거느리고 내침했다가

도둑질이 부끄러운 일이라 하며 돌아갔다.


◇ 남해차차웅 원년(4) 낙랑의 군사가 와서 금성을 여러 겹으로 포위했다.

11년(14) 낙랑은 우리의 내부가 비었으리라 생각하고 와서 금성을 공격했다.


 

◇ 유리이사금 13년(36) 낙랑이 북쪽 변방을 침범하여 타산성이 함락되었다.

14년(37) 고구리 왕 무휼(대무신왕)이 낙랑을 습격하여 없애니

그 나라사람 5000명이 와서 의탁하므로 육부에 나누어 살게 했다.

(襲樂浪滅之 其國人五千來投 分居六部)

 

 

 

-<백제본기>
◇ 시조 온조왕 8년(B.C10) 가을 7월 낙랑태수가 사람을 보내 말했다.

 (중략) 이로 인해 낙랑과의 평화가 깨졌다.


◇11년(B.C7) 여름 4월 낙랑이 말갈을 시켜 병산의 울짱을 습격하여 쳐부수게 하고 100명을 죽였다.

가을 7월 독산과 구천의 두 울짱을 세워 낙랑의 통로를 막았다.


◇ 17년(B.C1) 봄 낙랑이 내침하여 위례성에 불을 질렀다.


◇ 18년(A.D1) 겨울 11월 왕은 낙랑의 우두산성을 습격하기 위해

구곡에 당도하였으나 큰 눈을 만나 바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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