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제(北齊, 550년 ~ 577년)는
중국 남북조 시대(439년 ~ 589년) 중에
선비족 고씨(高氏)에 의해 건국한 왕조이다.
국호는 제(齊)이지만
남조의 남제(南齊, 479년 ~ 502년)와 구별하기 위해 북제라고 불리었다.
창시자인 고환은 북위의 6진의 난에 가담하여 선비족의 부족중 해(奚)족의 족장 이주영(爾朱榮)에게 귀순하여 커다란 명성을 날렸다.
이주영이 국정을 농단하다 효장제(孝莊帝)원자유(元子攸)에게 살해당하자
자립하여 이주씨 일족을 멸망시켰다.
효무제(孝武帝) 원수(元脩)를 옹립하고 승상이 되어
북위의 실권을 장악해 권력을 휘둘렀다.
후에 효무제는 그를 피해 서쪽의 군벌 우문태(宇文泰)를 의지했다.
이윽고 고환은 효정제(孝靜帝) 원선견(元善見)을 옹립하고
수도를 업(鄴)으로 옮겨 동위를 건국하여 서위와 다투었다.
547년 고환이 죽자 그의 아들 고징이 지위를 계승하였다.
그 직후 하남의 태수였던 후경이 배신하여
하남의 영지를 갖고 남조 양나라에 귀순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고징은 모용소종을 파견하여 후경과 양나라군과 싸워 그들을 격파하고 하남을 되찾았다.
패배한 후경은 양나라에 투항했으나
양나라가 동위와 수교를 맺자 위기에 몰린
후경은 난을 일으켜 양나라를 멸망시켰다.
후경의 모반을 꺾어버린 고징이었으나,
주벽에 의한 포악한 행동으로
550년 양나라로부터 투항한 난경에 의해 살해되었다.
고징의 동생 고양이 뒤를 계승하여 난을 수습하고
그 여세를 몰아 효정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아
제나라를 건국했다.
당시 화북은 군사력은 서쪽이 높고 동쪽이 낮고,
경제는 동쪽이 높고, 서쪽이 낮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
북제는 경제력을 배경으로
돌궐과 결탁해 거란을 제압하고
북주군을 여러번 격퇴하였다.
고씨 가문은 주벽, 기행이 많아 피를 부르는 사건이 많은 반면,
대부분 우수한 군사적 재능을 타고 났기에
사천성을 병합하여 경제력을 강화한 북주에 대해 항상 군사적 우위를 지켰으나,
후주 고위(高緯)는 소인배를 신임하여 그들의 참언으로 인해
북제의 군사력을 지탱하던 곡률광, 난릉왕 등의 명장들을 처형하는 등의 실정을 거듭하다가,
577년 북주에게 멸망당했다.
신라와의 관계[편집]
신라는 564년과 572년에 북제(北齊)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였다.[1][2]
565년, 북제의 무성황제(武成皇帝)가 조서(詔書)를 내려,
신라 진흥왕을 사지절(使持節) 동이교위(東夷校尉) 낙랑군공(樂浪郡公) 신라왕(新羅王)으로 삼았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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