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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200-400; 5.16

고10-산상왕(山上王, ?~227년, 재위 197년~227년)

by 사마르칸트 2016. 3. 19.

산상왕(山上王, ?~227년, 재위 197년~227년)은 고구려의 제10대 군주이다.


신대왕의 아들이자 고국천왕의 동생으로


휘는 연우(延優) 또는 이이모(伊夷模)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다른 이름으로 위궁(位宮)이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지(三國志)》 등의 중국 기록에 의하면 위궁은 산상왕이 아닌 동천왕(東川王)의 이름이다.



-발기의 난-

고국천왕이 아들이 없이 죽자 고국천왕의 왕후 우씨의 지지를 받아 즉위하였다.

우 왕후는 산상왕의 아내가 되어 다시 왕후에 올랐다.

이것은 고구려의 형사취수 풍습이 남아있는 것이며,

우씨의 권력 유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산


상왕의 형이었던 발기(發岐)는 자신이 왕위에 오르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군사를 동원하여 왕궁을 포위하였다.


그러나 3일 동안 산상왕이 농성하는 가운데

고구려 국내에서도 발기를 따르는 자가 없자

발기는 요동으로 망명하였다.


뒤이어 발기가 요동 태수 공손도(公孫度)에게 군사를 빌려 쳐들어 오니

왕은 동생 계수(罽須)를 보내 막게 하였다.


계수가 발기의 군대를 물리치자 발기는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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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중국정세입니다.


-황건적의 난[184]

-십상시의 난[189년]

-동탁집권[190-192]

-반동탁전쟁[190-191]


-조조 집권[196]

-관도대전[200]조조;원소전쟁, 조조승리

-적벽대전[208]


-220;조조의 아들 조비가 위나라 건국

-221;유비가 촉한 건국

-229;손권,동오건국


-제갈량 북벌;227-234


-238;사마의가 요동의 공손연 진압


-263년;촉멸망

-264;위 멸망, 사마염이 진을 세움

-280년;진나라 공격, 동오의 멸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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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의 공손씨]


-1대;공손탁[-204]

-요동태수임명 [190],50여년간 요동의 공손정권..


-2대;공손강[204-221 집권]

-대방군 설치[204]낙랑군 남부 7개현으로 구성


-3대;공손공;공손연에 의해 쫓겨남


-4대 공손연[228-238,8]

-237년;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의 공격 격퇴

-238년; 사마의 군대에게 패망



cf) 대방군의 치소는

황해북도 사리원시에 있는 속칭 당토성(唐土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이루어진 발굴 조사에서

‘사군대방태수장무이전(使君帶方太守張撫夷塼)’

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벽돌이 발견되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대방군의 영역은 대체로 황해도의 자비령 이남에서 경기도 북부에 이른다고 본다.


장무이묘의 무덤 양식이 고구려 양식이기 때문에

장무이가 실제 대방태수가 아닌 자칭한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사리원시가 대방군의 치소가

아니라는 주장이 있다.[2]


->왜

우리나라에게 별로 보기싫은

역사의증거는

왜놈들이 다 발견한 것인가...


->대방태수의 무덤양식이 고구려식이면...

실제 황해도에

고구려의 대방군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고구려 대방태수 장무이라는

사람이 살았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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