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타이(고대 그리스어: Σκὐθαι)는 본래 이란인이었다.
그 이름은 헤로도토스(Herodot)에 의하면 스콜로토이(Skolotoi)에서 유래한다.
스키타이 (Scythian), 스쿠드라 (Skudra), 소그디아 (Sogdian), 사카 (Saka) 라고도 한다.
스키타이족은 현재도 북캅카스 지역에 살고 있는 오세트인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이란인의 한 분파였다.
우라르투의 유적들이 소련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기 이전에는,
러시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보통 이 스키타이족으로부터 시작했다.
그 까닭은 이들이 오늘날의 러시아 영토에 살았던 민족들 가운데 역사책에 언급된 최초의 민족이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 예컨대 기원전 5세기에 활동했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가 쓴 "역사"는
고대 그리스 사람들이 교역과 식민의 대상으로 삼았던 스키타이족의 모습을 보여 주면서,
그들을 키메리아족 또는 메오티아족(Maeotians)의 후계자라고 지적했던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스키타이족이 키메리아족을 정복한 것으로 믿고 있다.[1]
스키타이족은 기원전 8~9세기경부터 동부 유럽에 와서 남부 러시아에 제국을 건설하였다.
이들은 서쪽으로 도나우 강, 동쪽으로 돈 강, 북쪽으로 드네프르 강과 부그 강의 상당한 지역까지 뻗쳐 있었다.
기원전 7세기경부터 남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드네프르 강에 이르기까지 퍼져 살았다.
이 기마전사들은 훌륭한 궁술을 가지고 있었고,
바지를 입음으로써 기동력을 높였다.
용병으로 싸우기도 하였다.
헤로도토스는 스키타이 족에 대해서 점령지 주민들을 가혹하게 다루는 민족이라고 평가했는데,
스키타이족이 잔인했던 이유는 반란을 막기 위해서였다.
기원전 5세기경에 흑해 지역을 방문한 헤로도토스는 이들에 관한 자세한 자료를 주고 있다.
스키타이 인의 침입 경로는 실롱스크, 모라바와 체히를 거쳐 왔음을 추적할 수 있다.
이것은 파괴된 루사티아 문화의 거점과 무수한 스키타이 묘 등에 의하여 점철된다.
이들에 의한 동부 지역에서의 파괴상은 서쪽 지역보다 덜했는데,
이는 아마 이 곳의 주민들이 저항하지 않고 침략자들에게 굴복하였기 때문인 듯하다.
스키타이 인의 침입은 원주민들을 상당히 약화시켜, 시기해 오던 이웃 족속들의 침략, 약탈을 더욱 용이하게 하였다.
그 예로, 게르만족들이 오데르 강 쪽으로 밀고 들어왔으며,
켈트족들은 동쪽으로 이동하여 체히, 모라바,
그리고 실롱스크 일부와 상류 지역의 비스와 강 유역을 점령하였다.[2]
소그드인은 본래 "스키타이"라고 불렸다.
스키타이 (Scythian), 사쿠라 (Skudra), 소그디아 (Sogdian), 사카 (Saka) 라고도 한다.
사카족은 부처 고타마 싯타르타를 배출해낸 부족이다.
소그드(Sogd)인은 이란계의 민족이었으며,
5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중국과 인도, 동로마 제국에 걸쳐 통상을 하였다.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소그드 문자를 여러 지역에 전파하였다.
중국에서는 속특(粟特)이라고 불렀다.
유럽에서는 특별한 명칭은 없으나 스코트족의 일부 구성 민족이
스키타이, 소그드인과 같은 민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소그드인 성씨로는 강(康), 사(史), 안(安), 조(曹), 석(石), 미(米), 하(何), 화심(火寻), 무지(戊地)라는 성씨가 있어
중국에서는 소무구성(昭武九姓)이라고 하였다.
안녹산 역시 아버지가 소그드인으로 소그드인에게 흔한 안씨 성을 지닌다.
(녹산은 '빛'을 뜻하는 소그드어를 한자로 음차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 측의 기록 중 소그디아 왕족의 성씨는 온(溫)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평강 공주와 결혼한 온달,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호위 무사였던 온군해도 소그디아 왕족 출신일 수도 있다.
또 다른 근거로는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통틀어서 온씨 성을 가진 사람은 온달과 온군해 두 사람 뿐이기 때문이다.
소그드인들은 8세기 신라와도 교역을 하였다.
최치원의 속독(束毒)은 소그드인 탈춤을 묘사한 것이다.
처용가의 처용이 서역인, 즉 소그드인이라는 설이 있다.
또한, 8세기 신라 음악이 서역인(소그드인)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신라 시대에는
고유 음악을 향악(鄕樂),
서역에서 유래한 음악은 속악(俗樂),
중국 당나라의 음악은 당악(唐樂)이라고 불렀다.
통일신라 때에 최치원이 지은 향악잡영(鄕樂雜詠)에 "수만리를 걸어오느라고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구나"라는 구절이 있는데,
북청사자놀이와 같은 서역에서 들어온 연희를 보고 지은 시구라고 한다.
본래 소그드인은 스키타이로 불렸는데, 그들도 신라처럼 금관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현재 한국의 국악은 그 본질적 요소는 속악에서 유래하였다.
그 활동 범위는 동로마 제국에서 당나라의 장안에까지 이르렀지만,
이슬람 세력의 대두에 의해 이슬람화가 진행되어,
12세기에는 그 민족적 특색이 없어졌다.
소그디아나 지방은 나중에, 우즈베크인의 남하에 따라 투르크화가 진행되어 갔다.
그디아나 또는 소그디아(Суғд , 수구다, سغد, Σογδιανῆ)는 이란계 민족(소그드인)이 일으킨 고대 문명권이다. 고대 한자문헌은 속특(粟特)이라고 표기했다.
다리우스 1세의 베히스툰 비문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아케메네스 조 페르시아 제국의 속주였으며, 조로아스터교 벤디다드 기록에서 아후라 마즈다가 창조한 열여섯 지역 중 두 번째(Gava) 지역도 이곳으로 비정(比定)되고 있다. 소그디아나는 여러 시기를 걸쳐 사마르칸드, 부하라, 케슈Кеш(현재의 샤흐리사브즈Shahrisabz), 수그드 주의 후잔트, 판자켄트를 포함하는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 지역을 지칭했다.
소그드 국가들은 끝내 정치적으로 통합하지는 못하였지만, 주요도시였던 마라칸다(사마르칸드)를 중심으로 결집하고 있었다. 또한 중앙아시아 실크로드의 요충지이기 때문에 주변 세력의 침입이 현저하게 더 많아 월지, 강거, 쿠샨 왕조, 에프탈, 돌궐 등의 유목 국가나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소그디아나는 박트리아 북부에서 호라즘의 동부, 강거의 남동부에 이르렀으며, 비옥한 자라프샨(고대 희랍지명 폴리티메투스, 고대 중국지명 나밀수那密水) 계곡을 아우른 옥수스 강(아무다리야 강)과 야크사르 강(시르다리야 강) 사이의 지역에 해당하였다. 이는 현 우즈베키스탄 행정구역의 사마르칸드 주와 부하라 주, 그리고 타지키스탄 행정구역의 수그드 주와 대체로 일치한다.
이후 8세기경에 아랍인에 의해 정복되어 이슬람을 수용했다. 후에는 스텝 지역에 있었던 투르크족의 서진에 따라 투르크화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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