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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지혜/ -도학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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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마르칸트 2014. 7. 26.

◇열일곱번째. 환난관(患難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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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의 환난의 난관을 초월해야 된다 라는 가르침이니, 사람이 환난을 당하면 대개 자기가 세운 입지를 포기하고 무너지게 됨을 경계한 글.

주역(周易)에는 말씀하기를 사람이 곤궁하게 생활을 하면서도 지킬 바의 형통한 예절을 잘 지켜서 실수하지 아니하면 오직 군자가 될것이라고 하였다.

중용(中庸)에는 말씀하기를 본데부터 환난속에 태어나서 환난속에 사는 사람은 환난에 대해서 지선(至善)의 도리를 실행을 하라고 하였고, 장춘진인(長春眞人)은 말씀하기를 자기가 병들은 것은 곧 다른사람에게 병들은 것을 가르치는 것이되며 자기가 죽는것은 다른사람에게 죽는것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죽을때에 이르르기 까지 하나에 집착해서 잡아야 될것은 도를 잘 살피되 어긋나지 말아야 할 것인바,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없어질것이라고 하니 이것은 다 말하자면 그 환난을 난리를 인해서 처음에 자기가 타고나고 생각하던 입지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옳치 않다는 것이라.

무릇 우주의 대도(大道)라는 것은 하늘과 땅에 꽉 싸가지고 얽고 있어서 남모르게 천지(天地)조화의 변화를 탈취해서 죽음의 문에서 나와 사는 문으로 들어갈 수 있고 범인의 경지를 초월해서 성인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으며 부처님도 될 수 있고 신선도 될 수 있는 것이다.

큰 용기와 큰 힘을 가지고 하늘을 자기의 머리의 두정으로 삼고, 땅에서 서있을 때에는 철한(鐵漢)과 같아서 티끌세상을 벗어나고 이 풍속의 세상을 초월할 수 있는 금강의 지혜가 있지 않다면 능히 이러한 도()라는 것을 실어가지고 있을 수 없고 일어나서 도를 잡아당길 수 없으며 이 도를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 어떻게 하는 것이 큰 용맹이 되고 큰 힘이 되는 것인가.

아무리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려도 능히 의논하지 아니하고, 아무리 빈천하고 가난하게 살지라도 능히 자기 뜻을 옮기지 아니하며, 위엄스러운 무력에도 능히 정신적으로 굴복 당하지 아니하는 것이 대력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은혜다 사랑이다 하는 것에 능히 꼬이지 아니하고, 자기의 명예와 이익에 대해서 능히 유혹을 당하지 아니하는 것 이것이 대력이 되는 것이며,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으로 부터 한번이라도 자기 마음에 일으키지 아니하는 것 이것을 대력이하고 하는 것이며, 기뻐하고 성내고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그런 심정에 제연히 끊어 버리고 한번이라도 방하(放下)해서 그런 마음을 내지 아니하는 것이 이것이 대력이 되는 것이며, 아주 곤고(困苦)히 살고 고초스럽게 살고 아주 위험하게 살고 어렵게 살아도 자기 마음을 움직이지도 않고 요동하지도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질병으로 병이들고 재앙이 일어나고 횡액이 일어나고 하여도 그 자연함을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을 순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것이 대용(大勇)이 되는 것이며, 아주 배고프고 몸이 추워서 벌벌 떨고 추워서 울고 배고픈 그런 경지에 자기 생명이 죽음에 이르러서도 자기 심성이 변하지 않는것이 이것이 큰 대용(大勇)이 되는 것이며, 남한테 수치스러운 일을 많이 당하고 남한테 능멸을 당하고 업신여김도 당하고 욕을 받는 그런것에 대해서 그것은 마음에 인식도 않는다면 이것이 대용(大勇)이 되는 것이라.

그런 까닭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가리왕이라는 사람이 와서 석가모니 살을 칼로 베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라고 하고, 순양옹(純陽翁)이라는 신선이 정양조(正陽祖)라는 신선이 열번 시험을 보임을 만나도 거기에 실패가 되지를 아니하고, 자청(紫淸)이 큰소리로 꾸지럼 당하면서 나무람에도, 가르치다 야단치며 떠나가면서도 성을 내지 아니했다라고 하고, 장삼봉(長三奉)이라는 신선이 옷이 떨어지고 신이 떨어져도 그것을 뉘우치지 아니했다라고 하고, 장진(長眞)이라는 신선은 남들이 주먹으로 자기를 두드리더라도 싸우지를 아니했다라고 하고, 장춘(張春)이라는 신선은 남이 자기의 옆구리 갈빗대를 세번 부러뜨려도 돌보지도 아니했다라고 하니, 이상의 성현들은 다 환난을 만났을때에 자기 마음을 숫돌에 가는것같이 하고 단련을 해서 아주 무한한 한량이 없는 그런 고초를 다 받아주는것이다.

그런 까닭에 마침내 능히 대법을 설명 듣고 대도(大道)를 밝혀서 범인을 초월하고 성현의 경지에 들어가는 까닭이 되니 그 참 드물게 볼 수 있는 그런 큰일을 성취하게 된것이라.

이 세상의 우물쭈물하게 그냥 배워 나가는 그런 사람은 환난이라는 이 난리가 이것이 참 진실함을 수련하는 큰 약이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도를 성취하는 난로가 되고 망치가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도리어 환난과 난리를 두려워하게 되고 환난을 자꾸 피하고 피해서 혹 자그마한 배고프고 추운일을 만났을 때에 문득 별다른 법을 생기게 하고, 혹 자그마한 질병을 만났을 때에 곧 망령된 생각을 일으켜서 혹 어떤 사람은 작은 위험한 일을 만났을 때에 곧 자기가 후퇴해서 물러날것을 생각하며 혹 어떤 사람은 남들이 자기를 능멸히 업신여기고 욕을 하는 것을 만났을 때에 문득 그사람과 더불어 다투고 싸워서 의논하게 된다.

참 진검(眞劍)은 아주 주요한 일이 큰 불속에 있을때에 그것을 잘 단련을 해서 나타낼 수 있고, 연꽃은 모름지기 더럽고 더러운 진흙속을 쫓아 있음에, 그속에 자라나고 연꽃을 잘 이룬다는 것을 알지를 못하니 불기운이 아니면 그 참 황금의 밝은 것을 볼수가 없는 것이고 진흙이 아니면 연꽃의 청정함을 볼 수 없는 것이니,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세상에 환난이 무슨 병이 되리오. 환난이 한번 지나간 연후에 그사람의 심금과 그사람의 높고 낮음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고 환난연후에라야만 그사람의 뜻의 지위와 그사람이 참된 진실한 사람인가 거짓된 사람인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

내가 참마음으로 이 도를 배우는 사람에게 권유하는 것은 속히 환난의 그 난관의

관문의 출입구를 꽉 잡아가지고 그것을 타파하고 이것을 통달해서 사람의 심성과 생명이라는 두글자를 아주 자기가 확인해서 그것을 잘 정해서 이세상에 살아도 저 한개의 심성과 생명이라고 하고 죽어도 저 한개의 생명과 심성이라고 해서 일체 모든 큰 재앙과 큰 난리와 어려움과 큰 아주 곤란한 일과 큰 횡액과 큰 위험한 일과 큰 검소한 일과 큰 험한 일을 다 하늘에 그냥 부처두어야 한다.

무심한 마음으로 처리할것 같으면 나날이 가고 오래오래 되매 자연히 흉한 것이 변해서 길한 것이 되고 재화가 변해서 복이 될 것이라. 그렇지 아니한즉 환난을 만나서 환난을 두려워하게 되고 자기의 심성과 자기의 정신이 정하지 못하게 되며 자기의 뜻으로 생각하는 것은 항상 어디로 옮아가게 되겠구나 어디로 이사를 가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 환난이 없더라도 자기 스스로가 자꾸 환난을 불러 이루게 되는 것이고 환난이 적더라도 큰 환난으로 변형을 하게 되어서 망령되게 생각을 하니 도를 밝힌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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