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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3.근현대사

1973.9.11...칠레의 비극...피노체트 쿠데타...

by 사마르칸트 2023. 9. 11.

 

또 다른 

9/11: 칠레의 잊혀진 비극과 서구의 더러운 손

🇨🇱🌎 올해 9월 11일,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지 20년이 되는 날인 지금, 

반세기가 지났지만 지진만큼 큰 비극인 

1973년 칠레의 또 다른 비극을 잊지 맙시다. 🌎

이날 칠레 군부의 우익 세력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칠레 사회주의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를 

축출하는 유혈 쿠데타를 조직했습니다. 

군부가 언론 매체를 장악하고 

계엄령을 선포하자 

대통령궁인 라 모네다에서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무대 뒤에는 꼭두각시 주인이 있나요? 

다름 아닌 미국, 영국, 

그리고 심지어 우리 동료인 호주의 다운 언더(Down Under)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서구 선수들은 수년간 칠레 문제에 손을 대고

 반대자들을 납치하고 선거를 조작하기 위해 

현금을 쏟아부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냉전 시대의 체스 게임과 

칠레 구리 광산에 대한 탐욕? 

 

이러한 배반의 물결을 타고 권력을 잡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7년 동안의 테러 통치 기간 동안 

서구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시체 수는 얼마나 되나요? 

3,000명 이상이 "사라졌고" 

수만 명이 구금되었으며

 수많은 생명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났습니다. 

오늘날에도 극우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공포의 지배입니다.

쿠데타가 가까워지자 

아옌데는 반항의 노래를 부르며 작별을 고했습니다. 

"나는 사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자살하기 직전에 선언했습니다. 

“칠레 국민의 충성에 내 목숨으로 보답하겠다”

칠레의 9·11 테러의 비극은 

서방 자비의 허울을 드러냈습니다.

 

 수년 동안 "민주주의 수호자"는 

반공주의와 기업 탐욕의 이름으로 

독재 정권에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미국의 9/11 희생자들을 애도하면서 

칠레의 50년 된 상처를 양탄자 아래로 쓸어버리지 맙시다. 

 

수년과 마일로 구분된 이러한 비극은 

개입주의의 실마리와 그것이 초래하는 혼란에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피와 배신으로 쓰여진 교훈을 배우며 

두 가지 비극의 몰락을 기립니다.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길? 

국경을 초월하고, 꼭두각시 주인을 떨쳐내고, 

무엇보다 잊지 않기를 거부하는 것.

 

 

또는 칠레에 대한 서구 입장의 냉소주의와 타락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는 사람들은 

서구 지도자들의 말을 인용할 가치가 있습니다.

닉슨 대통령은 아옌데 정부를 압박하기 위해 

CIA가 칠레의 "경제 비명"을 터뜨릴 것을 촉구했고, 

 

에드워드 코리 칠레 주재 미국 대사는

 "칠레와 칠레인들을 극도의 궁핍과 빈곤에 빠뜨리기 위해 

우리 힘이 닿는 한 모든 일을 하라"고 주장했습니다.

키신저는

 "자국민의 무책임함 때문에 한 나라가 공산주의화되는 것을 

왜 우리가 가만히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우리는 우리의 정책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이번 정부는 아옌데 정부보다 우리에게 더 좋습니다."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정부는 

강탈 정권을 일찍부터 큰 소리로 옹호했습니다. 

당시 그녀의 우선 순위는 간단했습니다

. "칠레는 영국 군수품 및 민간 물품에 대한 

좋은 잠재 시장을 대표했습니다."

 

 피노체트의 범죄가 세상에 알려진 지 몇 년 후인

 1999년에 마가렛 대처는 독재자를 

"[영국의] 충실하고 진정한 친구"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러한 좋은 친구는 대처가 그를 기소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면서 그에게 선물을 보낸 독재자였습니다. 

반인도적 범죄 혐의에 대해 그녀는 

피노체트의 유일한 범죄는 

공산주의를 무너뜨린 것이라고 비꼬는 태도로 대응했습니다.

이는 1973년 9월 11일 피노체트 정권이 

칠레인들을 고문하고 살해하면서 드러난 

서방의 가치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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