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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200-400; 5.16

고구려-백제간 전쟁...

by 사마르칸트 2015. 11. 6.

제1차 고구려 백제 전쟁

 

 

 

백제가 369년 마한을 정복하러 간 틈을 이용하여

 

고국원왕이 보병과 기병 2만 명을 거느리고

 

치양(雉壤)에 와서 진을 치고는 군사를 나누어 민가를 약탈하였다.

 

근초고왕이 태자를 보내 군사를 거느리고 지름길로 치양에 이르렀는데

 

백제사람 사기가 고구려 군사의 기밀을 알려주자 쉽게 쳐서 깨뜨리고 수곡성까지 영토를 넖혔다.

 

근구수 태자가 추격하려는데 장군 막고해가 도가의 말을 인용하여 말리자 추격을 멈췄다.

 

또, 5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는데, 포로들은 장수와 군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고국원왕은 복수를 하기위해 371년에 군사를 일으켜 재침공하였다.

 

근초고왕은 패하(浿河)가에 군사를 매복시켜 공격하여 대승하였다.

 

근초고왕은 기세를 타서 겨울에 정예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에 쳐들어가서 평양성을 공격하였다.

 

고구려 군사가 힘을 다해 싸워 막았으나 고국원왕이 빗나간 화살에 맞아 죽었다.

 

함락하기 직전이었으나 흥분한 고구려군사의 결사항전이 심하여 물러났다.

 

 

 

 

고국원왕 사후 소수림왕이 즉위하였다.

 

그는 전열을 재정비 하고 375년 7월에 북쪽 변경의 수곡성(水谷城)을 공격하여 함락시켰다.[1]

 

근초고왕이 반격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근초고왕은이 다시 군사를 크게 일으켜 보복하려 하였으나 흉년이 들어 실행하지 못하였다.

 

11월 근초고왕이 승하하고 태자 근구수가 즉위하였다.

 

 

376년 11월에 소수림왕은 백제의 북쪽 변경으로 쳐들어 갔다.[2]

 

377년 근구수왕은 고구려의 잦은 도발에 노하여 10월에 왕이 군사 3만 명을 거느리고

 

고구려의 평양성(平壤城)을 재침공 하였다.

 

그러나 전열이 갖춰진 고구려를 못이기고 패퇴하였다.

 

 

보복으로 11월에 고구려가 쳐들어 왔다. [3]

 

이후 양국에 흉년과 이상 기후가 겹쳐 사실상 휴전 상태가되었다.

 

(양측이 직접 휴전을 맺었는지는 알 수 없다.)

 

 

 

 

 

제2차 고구려 백제 전쟁


기록 없음 기록 없음


전면전 대신 양국의 도발행동이 이어졌다.

 

386년 새로 즉위한 백제의 진사왕이 고구려의 침략에 방비하자

 

8월에 고구려의 고국양왕이 쳐들어 왔다. [4]

 

 

387년 9월에 고구려가 말갈(靺鞨)을 이용하여 관미령(關彌嶺)으로 침공하여 승리하였다.

 

389년 9월에 백제의 진사왕이 군사를 보내 고구려의 남쪽 변경을 침입하여 약탈하였다. [5]

 

소규모 국지전의 승리로 사기가 오른 백제군은

 

390년 9월에 달솔 진가모에게 명령하여 고구려를 쳐서 도곤성(都坤城)을 함락시키고 200명을 사로잡았다. [6]

 

 

진사왕은 전공으로 진가모(眞嘉謨)를 병관좌평(兵官佐平)으로 삼았다.

 

백제군의 재침공을 받은 고구려도

 

391년 4월에 말갈을 시켜 북쪽 변경의 적현성(赤峴城)을 쳐서 함락시켰다.

 

 

이때 새로 즉위한 광개토대왕은

 

392년 7월에 군사 4만 명을 거느리고

 

북쪽 변경을 침공해 와서 석현성(石峴城) 등 10여 성을 함락시켰다. [7]

 

 

진사왕은 광개토왕이 군사를 부리는 데 능하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막지 못하니

 

한수(漢水) 북쪽의 여러 부락들이 다수 함락되었다.

 

 

8월에 백제가 남쪽 변경을 침략해 왔으므로, 장수에게 명하여 막게 하였다.

 

 

승기를 탄 고구려는 10월에

 

백제 북방의 천혜의 요새이자 중요지인 관미성(關彌城)을 20일에 걸친 포위 끝에 쳐서 함락시켰으나

 

고구려군의 피해도 컸다. [8]

 

 

11월 전세가 불리해져 진사왕이 암살당하고 아신왕이 즉위하였다.

 

백제는 빼앗긴 성을 회복하기 위해 계속해서 고구려를 공격하였다.

 

393년 8월에 아신왕은 진무를 좌장으로목책에 이르렀다.

 

그러나 치욕을 씻기위한 도발이었을 뿐에 회군하였다.

 

 

 

광개토왕은 백제의 공격을

 

393년에는 관미성,

 

394년에는 수곡성(水谷城)에서 격퇴하였으며,

 

394년에 고구려는 백제의 침략을 방비하기 위해 남쪽 변경에 7개의 성을 쌓았다.[9]

 

 

 

395년에는 패수(浿水)에서 백제군 8000여 명을 생포하거나 죽이는 대승을 거두었다. [10]

 

 

396년 고구려는 대대적으로 백제를 공격하여 아리수(阿利水) 이북의 58개 성,

 

700여 개 촌락을 점령하고 위례성(慰禮城)을 포위하였다.

 

 

이때 백제 아신왕(阿莘王)의 항복을 받아

 

아신왕의 동생과 백제의 대신 10명을 인질로 잡고

 

노비 일천 명을 잡고 개선하였다.

 

 

 

399년 8월에 고구려를 치고자 하여 군사와 말들을 크게 징발하였다.

 

백성들은 전역(戰役)에 시달려 신라로 많이 도망하니 호구가 줄었다.

 

그러니 곧 회군하였다.

 

 

 

400년에는 가야·왜 등과 함께 고구려의 보호국인 신라를 침공하였다.

 

403년 왜와 함께 7월에 신라를 치고

 

404년에는 왜를 이용하여 수군으로 대방을 침공하였다.

 

이는 모두 실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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