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346; 『처음에 부여는 녹산(鹿山)에 거처하였는데,
백제의 침략을 받아 부락이 쇠산(衰散)해져서
서쪽으로 연(燕)나라 근처로 옮겼으나 방비를 하지 않았다』
(<자치통감> 영화 2년 정월 조)
-『백제국은 본디 고려(고구려)와 함께 요동의 동쪽 천여 리에 있었다』(<송서> 백제 조)
-『가을에 궁(宮)이 드디어 마한(백제)과 예맥의 군사 수천 기(騎)를 이끌고 현도를 포위하였다』(<후한서> 건광 원년 조)
-AD 19; 고수려 대무신왕
『백제 주민 1천여 호가 귀순하여 찾아왔다』 <삼국사기>
-광개토왕릉비문 「백잔(백제), 신라는 예부터 고구려의 속민이었다」
-『백제는 부여의 별종이다.
구태라는 사람이 있어 처음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다…
해마다 4번 그 시조인 구태의 사당에 제사를 지낸다』(<주서> 백제조)
-『동명(東明)의 후손으로 구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어질고 신망이 돈독했다…』(<수서> 백제 조)
-『구태의 제사를 받드는데 부여의 후예임을 계승하였다…』(<한원> 백제조)
-<삼국사기> 『(백제의) 세계(世系)는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나온 까닭에 부여로 씨를 삼았다』
-『서울의 석촌동 백제 고분군 지역의
기단식 석실 적석총(이른바 계단식 피라미드형 무덤)은
이 지역의 이전 시기 고분들과는 판이한
만주 지역의 고분 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4세기 후반에 느닷없이 나타났다』
-<수서> 『(백제에는)신라, 고구려, 왜인들이 나라 안에 섞여 있으며 중국사람도 있다』
-『백제의 중이 중인도로 들어가 불경을 얻어 귀국했다』(조선불교통사)
-『백제가 부남(扶南:지금의 캄보디아 지역)의 재물과 노비 2구를 왜에 주었다』(일본서기)
-『백제 사인(使人)들이 (백제를 거치지 않고
왜와 독자교섭을 시도한) 곤륜(崑崙:남베트남, 캄보디아, 타이, 미얀마, 남부 말레이반도 등을 일괄한 동남아시아지역)
의 사신을 바다에 던져버렸다』(일본서기)
-『1929년 10월 도굴꾼들이 허난성 낙양 북망산에 소재한 묘광을 파헤쳤는데,
거기서 흑치상지의 묘지석이 발견됐다.
거기서는 백제의 잃어버린 고대사를 밝혀주는 보물 같은 글귀들이 쏟아져 나왔다.
중국학자들이 묘지석을 해석한 결과
흑치씨(黑齒氏)는 그 선조가 부여씨인데
흑치(黑齒)에 봉해졌으므로 자손이 그것을 성씨로 삼았다고 했고,
흑치는 동남아시아 지역의 군도를 가리키는 지명으로
최근 중국학자들은 흑치가 필리핀임을 증명한 바 있다』
-<송서>
『백제는 요서(遼西)를 경략하였는데,
백제가 다스리는 곳을 진평군(郡) 진평현(縣)이라고 하였다』
-<양서> 『백제 또한 요서와 진평, 2군의 땅을 차지하였는데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중국 복단대학 역사지리연구소에서 간행한 <중국역사지명사전>을 보면
진평군은 468년에 지금의 복건성 복주시에 설치되었으나,
471년에 진안군으로 이름을 고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유균인(劉鈞仁)의 <중국역사지명대사전>
『진평은 현 이름인데,
진(晉)나라가 설치하여 광주(廣州) 울림군에 소속시켰고,
남송(유송을 가리킴)과 남제도 그대로 하였다.
지금은 없어졌으나 광서(廣西) 경계에 있었다』
-『백제는 지명인데, 광동 흠현 서북쪽 1백80리에 소재하였고,
터가 있는데 오문과 계림 2성의 경계가 교차하는 곳』
-광서 장족자치구내
-팥 문화권
-우리 민족 고유의 지게
-<신당서>와 <구당서>
백제의 서쪽 경계를 월주, 즉 지금의 절강성 소흥시 부근
-단재 신채호는 <조선상고사>
『(백제)근구수 왕이 375년에 즉위하여
재위 10년 동안에 고구려에 대하여는 겨우 1차 평야의 침입만 있었으나
바다를 건너 지나(중국)대륙을 경략하여,
선비 모용씨의 연과 부씨의 진을 정벌,
지금의 요서·산동·강소·절강성 등지를 경략하여 광대한 토지를 장만하였다…』(232쪽)
-4세기 이후 중국 대륙은 양자강을 경계로 남조와 북조로 나뉘게 된다.
이때 백제는 남조 정권에 사신을 파견하는데,
사신에게 붙여진 관직의 이름
서하태수(산서성 분양현),
광양태수(북경 서남),
조선태수(하북성 노룡현),
광릉태수(강소성 양주시),
청하태수(하북성 청하현),
대방태수,
낙랑태수,
성양태수(하남성 비양현)
-우리나라 및 중국의 역사서는 백제의 호수(戶數)를 76만호로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백제가 패망하고 무려 7백60여년이 지난
조선시대 초기의 호수 조사에는
옛 백제권(경기· 충청· 전라의 삼도)의 인구가 6만호 남짓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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