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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2.중세사

탄금대 전투 [ 1592년 음력 4월 28일(양력 6월 7일)]

by 사마르칸트 2016. 3. 12.




-너무나 유명한 전투이다...


북상하는 왜군...고니시 유키나가 군을 맞아...


신립의 8천군이 분전하였지만...


패한 전투이다...



-어떤 정신나간 인간이


당시 조선군이 8만이었다는 기록을 믿는 모양인데...


8만군이 있었다면 ...


달천평원에 군대가 가득 찼을 테고..


2만명정도는 그냥 밟아버렸겠지...



-8만정도의 대병은


시간내 모으기도 힘들고


수리에 걸쳐 병영을 만들어야 함...



-당시 조선군은 기병이 상당수 있었다고 하는데...


수백 수준일 것이다...



-조령같은 요새에서 방어 하지 않고...


달천평원에서 결전을 벌인 이유는...


역사의 진실이야 알수 없지만...




-몇가지 요소를 보면...


평소 명장으로 조선조정에 이름이 한껏 높던 사람...


-북방에서 여진족을 대상으로 기동전술을 펼친 경력...


-왕의 기대를 한껏 모으고 출진..


-그나마 있던 정예병을 끌고 출진한 점...


-경쟁자이던 이일장군이 패한 점...


-그에게는 당장의 커다란 승리가 필요했다...


-아직도 왜군의 작전등 정체를 잘 모르고 있는 점..




-전투는


달천의 넓은 평야에서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군대는 여진족과의 전투양식으로


넓게 포진하여...


왜군 진영으로 돌격한다..


-수차례 돌격하지만..모두 실폐하고..


적의 복병이 사방에 일어나 패하고 만다...




-탄금대 전투는 전쟁시기에 일어나는


의욕만 가득찬 장수가 저지르는


흔한 전투이다...


명장과 용장의 차이랄까...


-조총부대와의 정면전투는


어렵다는 한계만 보여준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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