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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400-600; 남북조

위구르족(위구르어: ئۇيغۇر, 중국어 간체: 维吾尔, 정체: 維吾爾, 병음: Wéiwú'ěr, 터키어: Uygurlar, 영어: Uyghur people)

by 사마르칸트 2016. 3. 26.

위구르족(위구르어: ئۇيغۇر, 중국어 간체: 维吾尔, 정체: 維吾爾, 병음: Wéiwú'ěr, 터키어: Uygurlar, 영어: Uyghur people)은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민족으로

현재 중국의 신장 웨이우얼 자치구와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는 민족이다.


스스로는 동투르키스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역사적으로는 744년, 위구르족은 바스밀(Basmil), 카를룩(Qarluq) 등의 부족과 함께

후돌궐 제국을 멸망시키고

외튀켄(Ötüken)산에서 위구르 제국을 세운다.


중국뿐 아니라 파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몽골, 우즈베키스탄, 독일, 터키, 러시아 등에도 흩어져 살고 있다.


중국에서는 신장 위구르 자치구뿐만 아니라

후난성 창더 시의 타오위안 현(중국어: 桃源县)에도 살고 있으며,

 베이징이나 상하이와 같은 주요 도시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작기는 하지만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뉴욕 시와 워싱턴 D.C.에도

위구르족 공동체가 있으며, 캐나다의 토론토와 밴쿠버에도 살고 있다.


외모는 다양해서

중앙아시아의 투르크계 민족들과 유사한 경우도 있지만,

유럽인처럼 피부가 흰 위구르인들도 있다.




오르혼 제국 이전[편집]

전성기의 동서돌궐 제국의 영토, 600 A.D. 밝은 색은 직접통치지역, 어두운 색은 영향권


위구르족의 조상은 유목 가오처(高車, 고거)족이다.


타림분지에 살았던 토카라(Tocharians, 月氏)족

역시 위구르의 조상에 포함된다고 보기도 한다.


 가오체의 이름은 천막을 옮기기 위한 소가 끄는 수레에서 유래되었으며,

이들은 바이칼호 남쪽 협곡과 예니세이 강 일대에 사는 알타이계의 유목민족이었다.


이들은 약간의 농업과 예니세이강 유역의 풍부한 철광석을 바탕으로 금속문화를 발달시켰다.


이후 흉노에 복속되어 무기를 제공하였으며

이후 유연과 에프탈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450년 가오체는 유연에 반란을 계획하였으나

유연 지배하의 투르크족에 패배한다.


이 사건은 돌궐제국을 오래 괴롭힌 역사적인

투르크와 퇼레스(鐵勒, 철륵)간 원한의 시작이었다.


돌궐이 유연/에프탈을 패배시켰을때,

그들은 퇼레스의 새로운 지배자가 된다.

(이 시기에 고거족의 이름은 퇼레스로 바뀐다.)


이 시기에 위구르는 처음으로 중국의 사서에

바이칼 남쪽 지역의 10,000호의 작은 부족으로 기록된다.


퇼레스 부족연맹이 와해되자,

위구르는 중국의 수나라와 연합한 설연타(薛延陀) 연합에 참여하며,

타르두한을 꺾고 독립을 쟁취한다.


이 연합은 603년부터 당 태종이 돌궐제국에 결정적 타격을 준 630년까지

그 자치의 정도를 달리 하며 존재했다.


이 시기에 위구르는 연합 내에서 설연타 다음의 지위를 점유하였다.


전돌궐과 후돌궐의 사이 공백기인 630년에서 683년 사이

위구르는 설연타를 무너뜨리고

부고(僕固), 동라(同羅), 바이르쿠(拔野古) 등 다섯 부족들과 함께

위구르 연합을 구성하여 독립을 선언한다.



중국 측천무후의 재위기간에 후돌궐이 세워지고,

 위구르는 다른 유목 터키계 부족들과 함께 후돌궐 제국에 참여한다. 후


돌궐 제국은 734년 빌케가한(毗伽可汗)의 사망 이후

그 세가 기울게 된다.


위구르는 중국 동맹국들과 연합한 일련의 반란 뒤에 9개 부족이 연합한

토쿠즈-오구즈(Toqus-Oghuz)라는 부족연맹을 통합하여

새로운 동맹세력, 온 위구르(On-Uygur)의 지도세력이 된다.


십성회흘(十城回吃) 744년,

위구르는 바스밀(Basmil), 카를룩(Qarluq) 등의 부족과 함께

후돌궐 제국을 멸망시키고 외튀켄(Ötüken)산에서 위구르 제국을 세운다.





오르콘 위구르 제국[편집]



8세기의 위구르 제국


오르콘 위구르 제국은

744년 쿠틀룩 보일라(Qutluɣ Boyla, 骨力裵羅)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840년까지 카스피 해 유역에서 만주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점유하였다.


 오르콘 강 유역의 광활한 스텝지역을 지배하였으며

수도는 현재의 카라 발가순(Qara Balɣasun)에 위치한 오르두 발릭(Ordu Balïq)이었다.


중국의 당나라와 대체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757년 안사의 난으로 중국 당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수도 장안(長安)에 진군하여 구해주기도 한다.


759년부터 779년까지 최전성기를 누렸으나


762년 뵈귀(Bögü) 카간은 이란계 소그드인에게서 전파된 마니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점차 유목적 성격을 잃고 정착 농경사회로 탈변한다.


결국 군사력이 약해진 위구르 제국은

840년 다른 터키계 민족인 키르기즈(Kyrgyz)에 의해 멸망한다.




제국의 몰락과 분열의 시기[편집]
위구르 제국이 멸망하자, 위구르의 유민들은

간쑤, 신장, 톈산 산맥 서쪽 추이 강 유역으로 이동해 정착하였다.




유고르[편집]
세개의 위구르 지역중 동쪽에 있었던 나라는

현재 중국 간쑤 성의 장예에 도읍한 간수 왕국(870년~1036년)이며

유고르라고도 한다.

유고르는 마니교에서 라마교로 개종하였는데,


서쪽의 다른 투르크계 사람들과 다르게 이들은 이후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았다.

이들의 후손은 현재 위구르족과 분리된 중국의 소수민족인 유구르족이다.


전성을 누리던 유고르는 1028년부터 9년간 이어진

탕구트 왕국과의 치열한 전쟁에서 패하여 1036년에 흡수합병된다.




카라코야[편집]
서쪽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중가리아 분지와 타림 분지에 살던 다른 투르크계 부족과 함께 카라코야 왕국(高昌國, 856-866 CE 사이 건국)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인도유럽어족인 토착 토하라인들과 융합되었다.


지배자의 호칭을 따서 이디쿠트(신성한 부, 영광)라고도 불렸던 이 나라는,

겨울의 수도인 투르판과 여름의 수도인 베쉬발릭,

그리고 쿠물, 쿠차에 기반한 불교국가였다.


이들은 위구르 문화의 정통을 이어받은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카라코야는 몽골 제국의 칭기즈 칸에게 복속되는

1209년까지 독립적으로 국가를 다스렸다.


중국에서 981년 황옌더를 사절로 보내 정주시킬 만큼

이들은 확고한 국가를 완성하였으며

몽골 제국에 복속된 이후에도 영주국가로서 1335년까지 명맥을 유지한다.


카라코야 왕국에 토하라인이 참여한 것은,


현재의 위구르족이 투르크계뿐 아니라

인도유럽어족의 서역인들을 유전적/문화적으로 계승하고 있는 역사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카라한 왕조[편집]


 이 부분의 본문은 카라한 왕조입니다.


카라코야의 서쪽에는 카라카니드 왕국(840년~1212년)이 있었으며

카라한(위대한 칸), 일레크칸 이라고도 불렸다.


카라한은 840년,

추이 강 계곡에서 위구르족에 의해 발흥하여

 1212년까지 투르키스탄과 트란스옥사니아 지역에 존속했다.


934년 술탄 사툭 부그라 칸(920년-956년)에 의해 이슬람으로 개종하였으며


940년 카를룩의 수도를 점령하여 무슬림 연방으로 거듭난다.


사마르칸트의 사만조와 함께 그들은 스스로를


불교 국가인 카라코야와 호탄왕국에 맞서는 이슬람의 수호자로 여겼다.


카라한의 첫 수도는 추이 강 계곡의 발라사군이었으며 이후 카슈가르로 옮겼다.


카라한의 군림은 투르크 문화와 예술의 역사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기간 동안 모스크와 학교, 다리, 그리고 카라반의 숙사가 지어졌다.


카슈가르, 부하라, 사마르칸트는 배움의 중심이 되었고 투르크 문학이 발달했다.


이 시기의 중요한 작품으로는 Yusuf Balasaghuni의 1060년대 작품인 《Kutadgu Bilig》 (한국어: 행복을 주는 지식)이 있다.


카라코야와 카라한 모두 훗날 야율대석의 서요에 의해 멸망한다.


이란에서 셀주크 제국이 발흥한 뒤에 카라카니드는 이름뿐인 속국이 된다.


이후 카라카니드는 서요와 셀주크 제국에 이중종주권을 바친다. 이 세 지역은 모두 1209년 칭기즈 칸에게 점령 당한다.

베쉬발릭과 투르판 지역의 거주자들은 15세기 야르칸드 칸국의 세력 확장때까지


이슬람으로 개종하지 않았다.


이슬람으로의 개종 이전에 위구르인들은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불교, 네스토리우스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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