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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3.근현대사

스위스 정보 장교 증언...1

by 사마르칸트 2022. 5. 12.

자크 보우드

전 총참모부 대령으로

스위스 전략정보국(Swiss Strategic Intelligence) 출신으로 동방국 전문가다.

그는 미국과 영국의 정보기관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는 유엔 평화 작전 정책 책임자로 일해왔다.

유엔 법률 및 보안기관 전문가로서 수단 최초의 다차원 유엔 정보부대를 설계하고 이끌었다.

그는 아프리카 연합에서 일해왔고

나토에서 작은 무기의 확산에 대항하는 싸움을 5년 동안 책임졌다.

구소련 함락 직후 러시아 군 및 정보 최고위층 인사들과 논의에 관여했다.

나토 내에서 그는 2014년 우크라이나 사태를 따랐고

이후 우크라이나 지원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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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는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아마도 가장 깨끗하고 합리적인 설명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것의 중요성은 스위스 정보국의 은퇴한 대령인

자크 보드가 우크라이나에서

나토 훈련 작전에 다양한 고위직과 주요 참가자라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수년 동안 그는 또한 러시아 상대국들과 광범위한 거래를 했다.

— 보이드 D.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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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에서 아프가니스탄에 이르기까지

여러 해 동안 나는 평화를 위해 일해 왔고

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전쟁을 하게 된 계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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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분쟁의 근원을 살펴보자.

그것은 지난 8년 동안 돈바스로부터 '분리주의자'나 '독립주의자'를

이야기해온 사람들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틀린 말이다.

2014년 5월 도네츠크와 루간스크의 두 자칭 공화국이

실시한 국민투표는 일부 비양심적 언론인들이 주장했듯이

'독립'의 국민투표가 아니라

 

'자결' 또는 '자율'의 국민투표였다.

친러(친러)라는 한정자는 러시아가 분쟁 당사국이었음을 시사하는데,

이는 그렇지 않았고,

러시아어 연사라는 용어가 더 솔직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러한 국민투표는

블라디미르 푸틴의 조언에 반하여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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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공화국들은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도록 보장하면서 자치권을 갖는 것을 추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미국이 후원하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야누코비치 대통령의 타도로부터 비롯되는

새 정부의 첫 입법행위가 바로 폐지였기 때문이다.

 

 

이 결정은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폭풍을 일으켰다.

그 결과는 2014년 2월부터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지역

(오데사, 드네프로페트로프스크, 하르코프, 루간스크, 도네츠크)

에 대한 격렬한 탄압으로,

상황의 군국화와 러시아 인구의 일부 끔찍한 학살

(오데사와 마리우폴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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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있을 때

나는 작은 무기의 확산에 대항해 싸운 책임을 지고,

우리는 반군에 대한 러시아의 무기 전달을 탐지하고,

모스크바의 개입 여부를 확인하려 했다.

 

그 후 우리가 받은 정보는 거의 전적으로 폴란드 정보기관으로부터 왔고

OSCE[유럽의 안보 및 협력을 위한 기구]에서 나온 정보와

"적합"하지 못했으며 다소 조잡한 주장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로부터 무기와 군사장비의 전달은 없었다.

 

반란군 편으로 넘어간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우크라이나 부대의 귀순 덕분에 반군은 무장했다.

우크라이나의 실패가 계속되자 탱크, 포병, 대공대대가

자치주의 대열을 부풀렸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인들을 민스크 협정에 헌신하도록 몰아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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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민스크 1 협정에 서명한 직후

페트로 포로셴코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돈바스를 상대로 대대적인

'반테러 작전'(ATO/Parsenko)을 개시했다.

 

나토군 장교들의 형편없는 충고를 받은

우크라이나인들은 드발세보에서

참패하여 민스크 2 협정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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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2014년부터

우크라이나의 내부 문제라는 이유로

협상 당사국 진입을 거부하면서

조직적으로 민스크 협정 이행을 요구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가 주도하는 서방은

민스크 협정을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을

직접 대면시키는 '노르망디 형식'으로 조직적으로 대체하려 했다.

 

그러나 2022년 2월 23일부터 24일까지는

돈바스호에는 러시아군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더구나 OSCE 관측통들은 그전까지

돈바스에서 러시아 부대가 운용되고 있는 흔적을

전혀 관찰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2021년 12월 3일 워싱턴포스트(WP)가

발간한 미국 정보지도에는 돈바스(Donbass)에 있는

러시아군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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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우크라이나군은 개탄스러운 상태에 있었다.

 

우크라이나 군검찰총장 아나톨리 마티오스는

2018년 10월 4년간의 전쟁 끝에

돈바스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전사 891명,

도로사고 318명, 기타사고 177명,

독극물(알코올, 마약) 175명,

무기 취급 부주의 172명, 보안규정 위반 101명, 228명 등

2700명을 잃었다고 진술했다.

살인에서 615명이 자살에서 나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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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우크라이나군은 간부들의 부패로 인해 훼손되어

더 이상 인구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영국 내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3~4월 예비역 리콜에서

1차 회의에는 70%,

2차 회의 때는 80%, 3차 회의 때는 90%,

4차 회의 때는 95%가 나타나지 않았다.

 

2017년 10월/11월 징용자의 70%가 'Fall 2017' 리콜 캠페인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ATO 지역의 최대 30%에 이르는 자살과 탈주(자율주의자에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를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젊은이들은 돈바스에 가서 싸우기를 거부하고 이민을 선호했는데,

이것은 또한 최소한 부분적으로나마

우크라이나의 인구통계적 적자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군인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정부는 준군사 민병대에 의존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2020년에는 우크라이나군의 약 40%를 차지했으며,

약 102,000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들은 미국, 영국, 캐나다, 프랑스에 의해 무장하고,

자금을 지원받고 훈련받았다.

19개 이상의 국적이 있었다.

 

 

이들 민병대는

2014년부터 서구의 지원을 받아 돈바스에서 작전을 벌여왔다.

비록 '나치'라는 용어에 대해 논쟁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들 민병대가 폭력적이고, 메스꺼운 이념을 전달하며,

맹렬히 반유대적인…

[그리고] 광신적이고 잔인한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들 중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아조프 연대인데,

아조프 연대는

1944년 프랑스에서 오라두르-수르-글레인 대학살을

수행하기 전 1943년 하르코프를 소련으로부터 해방시켜

우크라이나에서 추앙받고 있는

제2 SS 다스 라이히 기갑사단을 연상케 한다.

 

그래서 서방세계는

2014년부터 민간인들에 대한 수많은 범죄로 유죄를 받아온

민병대를 지원하고 무장시켰다.

바로 강간, 고문, 학살이다.

이들 준군사력을 우크라이나 국가방위군에 통합한 것은

일부 주장처럼 전혀 '부정화'를 동반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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