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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BC~0년; 진,한

패수...수경과 수경주

by 사마르칸트 2016. 2. 6.


패수와 평양은 고유명사가 아니다...


평양이 있는 곳에 흐르는 강이름이다...


그러므로 평양과 평양의 강이 같이 다닌다...


평양이 여러 곳에 있다면...패수도 여럿이다..


물론 고유명사로 변할수도 있다.


서울이 서울이 된 것처럼...





허신이 이르기를, ‘패수는 누방현에서 나와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일설에는 패수현에서 나 온다’고 했다.


『십삼주지 十三州志 』는

‘패수현은 낙랑군 동북쪽에 있다.

누방현은 낙랑군 동쪽에 있 다.

패수는 대개 그 현 남쪽에서 나와서 누방현을 지난다.

옛날 연나라 사람 위만이 패수 서쪽에서부 터 조선에 이르렀다.

조선은 옛 기자의 나라다. ……

 전국시대 때 위만이 왕이 되어 왕험성에 도읍했 는데, 그 땅이 사방 수천 리였다.

 그 손자 우거 右渠 때에 이르러 한 무제 원봉 2년 (서기전 109)

누선 장군 양복 楊僕 과 좌장군 순체 荀彘 를 보내 우거를 토벌했는데,

패수에서 우거를 격파하고 비로소 멸망시켰다. _역도원, 『수경주』



만약 패수가 동쪽으로 흐른다면 (위만이) 패수를 건널 이치가 없었을 것이다.

 그 지역은 지금 고구려 의 국치 (國治: 도읍) 이다.


내가 일찍이 고구려 사신 [番使] 을 방문했더니

 ‘평양성은 패수의 북쪽에 있다’고 말했다.


 패수는 서쪽으로 흘러서 옛 낙랑 조선현을 지나는데

곧 낙랑군 치소로서 한 무제가 설치했으며, 서북으로 흐른다.

그러므로 『지리지』에서 ‘패수는 서쪽으로 흘러 증지현에 이르러 바다 로 들어간다’고 말한 것이다.

또 한나라가 일어선 후 조선이 멀기 때문에 요동의 옛 요새를 수리해서 경계로 삼았다.

지금과 옛일을 상고해보니 일에 착오가 있었다.

대개 『수경』이 그릇 증험한 것이다.

_역도원, 『수경주』

 

 

 

 

《수경주》(水經注)는 중국 남북조 시대에 저작된 지리서이다.

《수경》(水經)이란 책에 주석이 추가된 서적이다.

책의 저작 연대는 연창(延昌) 4년(515년)으로 추정된다.

 

 

주석이 없는 원본 《수경》은

전한(前漢) 시대에 상흠(桑欽)이라는 사람이 지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수서 경적지》(隋書經籍志)에는 작자 미상이라고 하였고,

《구당서》와 《신당서》에는 진(晉)나라의 학자 곽박(郭璞)이 저자라고 하였다.

 

《통전》(通典)에는 지명의 명칭을 고증한 결과로 후한 순제 이후에 등장한 서적이라고 하였다.

청나라 말기 학자인 양수경(楊守敬)은 수경은 3국 시대 이후에 만들어졌다고 하였다.

 


 


---역도원(酈道元, 466년? ~ 527년)은

북위의 지리학자이자 작가이다.

자는 선장(善長)이며, 범양(范陽) 사람이다.

472년에 태어났다고도 한다.

대표작으로는 《수경주》가 있다.


---장수왕은 내부적으로 왕권의 위상을 높여서 국내성의 귀족세력을 약화시키고,

남진정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427년에 평양성으로 천도하였다.




패수에 대한 좋은 글이 있습니다.


http://koreanhistory.tistory.com/m/post/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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