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서기 49년)봄, 장수를 보내 한(漢)의 북평(北平)·어양(漁陽)·상곡(上谷)·태원(太原)을 습격하였으나
요동태수 채동(蔡彤)이 은혜와 신의로써 이를 대하였으므로 다시 화친을 회복하였다.
二年春, 遣將襲漢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祭肜, 以恩信待之, 乃復和親。
《삼국사기》모본왕條 中
(광무제 건무) 25년 봄, 구려(句驪)가 우북평(右北平)·어양·상곡·태원을 노략질하였으나
요동태수 제융(祭肜)이 은혜와 신의로써 이를 초유하니 모두 다시 항복하였다.
二十五年春, 句驪寇右北平·漁陽·上谷·太原, 而遼東太守祭肜, 以恩信招之, 皆復款塞。
《후한서》〈동이열전〉고구려條
25년 봄 정월, 요동의 변경 바깥 맥인(貊人)이
우북평·어양·상곡·태원을 노략질하였는데
요동태수 제융이 이를 초유하여 항복시켰다.
二十五春正月, 遼東徼外貊人寇右北平、漁陽、上谷、太原, 遼東太守祭肜招降之。
《후한서》〈광무제기〉
기록에 고구려가 선비족과 더불어
동쪽 장성안을 헤집고 다닙니다...
가능한 거리입니다..
보통 북방족들이
남쪽을 공격하고 싶을때...
옆나라와 동맹을 맺거나,
같이 행동 합니다...
선비족이 장성 안을 공격하고 싶을때...
옆나라인 고구려와 동맹을 체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장성안을 공격하기 위해
군대가 근거지를 비우면
옆나라인 고구려가
선비의 근거지를 공격 할수 있으므로
동맹을 맺고
같이 가는 겁니다.
이런 예가 아주 많습니다...
---기록을 보면...
은혜와 신의로써 이를 초유하니 모두 다시 항복하였다.
-정말 웃기는 내용입니다.
무슨 전쟁하러 간 사람들이
놀러간 것도 아니고...
-아마도 습격하고 노략질 하고 돌아 갔을 겁니다.
기습적인 공격에 너무 놀라서
도망갔다가...
돌아와 보니...적이 물러 간지라...
은혜와 신의로 물러가게 했다고 보고 했겠죠...
-보통 전쟁은 땅을 뺏기 위해
하는데...
이들은 그냥 약탈 하러 온 겁니다...
그래서 잔뜩 짊어지고
스스로 물러 간 것이죠...
-> 흉노가 동에 번쩍 , 서에 번쩍 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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