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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참고자료

역사서의 평가....신뢰성이 떨어지는 사서가 많다....

by 사마르칸트 2016. 2. 16.

 

 

-《사기》(史記)는, 중국 전한 왕조의 무제 시대에 사마천이 저술한 중국의 역사서이며, 중국 이십사사의 하나이자 정사의 으뜸으로 꼽힌다. 본래 사마천 자신이 붙인 이름은 《태사공서》(太史公書) 였으나, 후한 말기에 이르러 《태사공기》(太史公記)로도 불리게 되었으며 이 '태사공기'의 약칭인 '사기'가 정식 명칭으로 굳어졌다. 「본기(本紀)」 12권, 「표(表)」10권, 「서(書)」8권, 「세가(世家)」30권, 「열전(列傳)」70권으로 구성된 기전체 형식의 역사서로서 그 서술 범위는 전설상의 오제(五帝)의 한 사람이었다는 요 (기원전 22세기)에서 기원전 2세기 말의 전한 무제까지를 다루고 있으며, 그 서술 방식은 후대 중국의 역사서, 특히 정사를 기술하는 한 방식의 전범(典範)이 되었고, 유려한 필치와 문체로 역사서로서의 가치 외에 문학으로서도 큰 가치를 가진 서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한서》(漢書)는 반고가 편찬한 전한의 역사를 서술한 역사서로, 중국 이십사사에 포함된다. 《전한서》라고도 한다.

다루는 시대는 한 고조 유방이 전한을 창건한 기원전 206년부터 왕망의 신나라가 망한 24년까지이다. 총 100편 12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기전체 형식으로 쓰여져, 제기(帝紀) 12권, 연표 8권, 지(志) 10권, 열전(列傳) 70권으로 되어 있다.

재료가 풍부하고 사실(史實)의 정확함이 특색이다. 《사기》와 함께 정사(正史)의 모범이 되었다고 평가받는다.[1]

 

 

->사기, 한서는 상당히 신뢰 할만한 사서이다...

 

->이후 혼란기에 접어드는

 

후한서부터는 별로 신뢰할만한 사서가 아니다.

 

데이터량이 부족할뿐 아니라...

 

저자의 지식이나, 인식이 많이 부족하다.

 

특히 남쪽 정권이 적은 북쪽정권의 역사나...

 

북쪽정권이 적은 남쪽정권의 역사는

 

오류가 많다...

 

서로의 증오로 인해...왜곡된 역사관이 반영된 듯...

 

 

 

 

-《후한서》(後漢書)는

중국 이십사사 중의 하나로 후한의 역사를

남북조 시대 송나라의 범엽(398년 ~ 445년)이 정리한 책이다.

 

 

 

 

-정사 삼국지 -

 진수(陳壽, 233년 ~ 297년)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 ~ 서진의 관료로, 자는 승조(承祚)이며

익주(益州) 파서군(巴西郡) 안한현(安漢縣) 사람이다.

 

진나라의 사마염(司馬炎)이 천하를 통일하고 난 이후, 진수의 재능을 알아챈 사공 장화(張華)의 추천을 받아 진나라의 관리가 되었다.

진수는 삼국지 외에도 《고국지(古國志)》50편,

《익부기구전(益部耆舊傳)》, 《관사론(官司論)》, 《석휘(釋諱)》,

《광국론(廣國論)》, 《촉상제갈량집(蜀相諸葛亮集)》을 편찬해 중국 사학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

《진서(晉書)》〈진수전〉에서 진수를 평하길, 반고(班固)와 사마천(司馬遷)을 이어

이전의 전(典)을 이을 자는 오직 진수 뿐이라고 호평했다.

 

 

진서(晉書)는 중국 진나라(晉)의 기록을 담은 역사서이다.

이십사사중에 하나이다.

648년 당나라 태종 때에 방현령(房玄齡) · 이연수(李延壽) 등 20여명의 학자가 편찬한 책으로,

 서진(265년 ~ 316년)과 동진(317년 ~ 418년)의 역사가 수록되어 있다.

이 진서 이후 사서(史書) 편찬이 국가 사업으로 행해지고

새 왕조에서 전왕조(前王朝)의 역사를 쓰는 것이 나라의 임무가 되었다.[1]

 

 

 

-송서(宋書)는

488년에 남제(南濟) 무제(武帝)의 명을 받아 심약이 편찬한 기전체 역사서로,

동진의 뒤를 이은 남조의 왕조인 유송(劉宋, 420년~479년)의 역사를 담았다.

본기 10권, 열전60권, 지(志) 30권으로 모두 10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중국 24사의 하나로 꼽힌다. 본기나 열전이 1년 정도 걸려 완성된 것과는 달리 지를 완성하는데 10년이 걸려 양(梁) 시대에 이르러서야 완성된다.

유송이 멸망하고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유송의 역사와 관련된 많은 사람들이 생존해 있던 시대에 편찬된 덕분에

 동시대의 자료를 많이 수록하고 있어 사료적 가치가 높은 역사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남제서(南齊書)는 남조 양나라 때인 537년에 소자현이 편찬한 것으로, 남조 제나라(479년~502년)의 역사를 담았다.

총 60권으로 자서 1권, 본기 8권, 지 11권, 열전 40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자서 1권이 당나라때 소실되어 59권만 전한다.

 

 

 

 

양서(梁書)는 중국 남조 양나라(梁, 502년 ~ 557년) 시대의 기록을 한 역사서이다. 전56권으로 구성되어있다.

629년에 진나라(陳) 사람인 요찰(姚察)이 편찬을 시작하였고, 요찰이 죽자, 그의 유지를 이어받아,

아들인 요사렴(姚思廉)에 의해 완성하였다.

 

 

진서(陳書)는 당나라의 사학가인 요사렴이 636년에 편찬한 사서이며, 이십사사 중 하나이다. 중국 남북조 시대(439년 - 589년)의 남조 마지막 왕조인 진나라(陳)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황제, 왕을 중심으로 적은 본기 6권, 나라를 종사한 가신이나 주변 이민족의 에피소드가 기록된 열전 30권으로 구성이 되고 있으며 표나 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11 세기경, 북송의 사관수찬인 증공 등의 손에 의해서 간행되었다.

 

 

《위서》(魏書)는 중국 북제의 위수(魏收)가 편찬한 북위의 정사이다. 《북위서》, 《후위서》라고도 하며 24사의 하나이다. 구성은 본기 14권, 열전 96권, 지 20권으로 전체 130권으로 기전체이다. 본기와 열전의 부분은 554년(천보 5년)에, 지는 559년(천보 10년)에 완성했다. 다른 저자가 편찬한 위서(魏書)도 몇 종류가 존재하나 일부 단편적인 내용 외에는 남아있지 않다.

 

 

《북제서》(北齊書)는 당나라 이백약이 쓴 기전체 역사서로 이십사사 중의 하나이다. 제기 8권과 열전 42권, 합계 50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636년(정관 10년) 완성된 동위, 북제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이다.

이백약의 아버지인 이덕림이 쓴 기전체로 전27권의 《북제사》가 존재하고 있었고, 그것이 수나라 때 이르러 38편에 편찬을 추가하였다.

이백약은 아버지로 사서(史書)에 오른 왕소가 《북제지》에서 얻은 자료를 더하여 본서를 완성시켰던 것이다.

본서에는 외국전은 존재하지 않는다.

18권은 이백약이 쓴 문장이 남아 있다.(4권, 13권, 16-25권, 41-45, 50권) 나머지는 소실되었기 때문에

후대의 사람이 《북사》 등의 여러 책에서 보충했다. 원래의 명칭은 《제서》(齊書)였지만,

송대 이후에 소자현의 《남제서》와 구별하기 위해 《북제서》(北齊書)라고 부르게 되었다.

《사통》(史通)을 저술한 류지기는 본서에 대해서 왕소의 《북제지》(北齊志)나 송효왕의 《관동풍속전》 보다 못하다는 매우 엄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주서(周書)는 당나라의 영호덕분 등이

당나라 당 태종의 칙명에 의해서 저술한 기전체의 단대사로, 이십사사 중 하나이다.

서위)와 북주의 역사를 기록한 정사이다.

북주서나 후주서라고도 부른다. 50권, 636년 정관 10년에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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