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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0~200; 동한

제6대, 태조대왕(太祖大王)(재위기간: 서기 53~146년)

by 사마르칸트 2016. 3. 17.

제6대, 태조대왕(太祖大王)(재위기간: 서기 53~146년)






3년(서기 55)

봄 2월에 요서(遼西)에 10성을
쌓아 한나라 군사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4년(56) 가을 7월에

동옥저(東沃沮)를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성읍으로 삼았다.

영토를 개척하여 동쪽으로 창해(滄海)까지 이르렀고

남쪽으로 살수까지 이르렀다.



16년(68) 가을 8월에

갈사국왕의 손자 도두(都頭)가 나라를 들어 항복하여 왔다.



53년(105) 

왕은 장수를 보내 한나라의 요동에 들어가 여섯 현을 약탈하였다.

수 경기(耿夔)가 군사를 내어 막으니, 우리 군사가 크게 패하였다.

가을 9월에 경기가 맥인(貊人)을 격파하였다.



66년(118)

여름 6월에 왕은 예맥과 함께 한나라의 현도를 치고

화려성(華 麗城)을 공격하였다.



69년(121) 봄에

한나라의 유주(幽州) 자사(刺史) 풍환(馮煥), 현도태수 요광(姚光), 요동태수 채풍(蔡諷)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침략해 와서 예맥의 우두머리를 쳐서 죽이고, 병마와 재물을 모두 빼앗아 갔다.


왕은 아우 수성을 보내 보내 군사 2천여 명을 거느리고

풍환, 요광 등을 역습하게 하였다.


수성은 사신을 보내 거짓 항복하였는데 풍환 등이 이것을 믿었다.

수성은 그에 따라 험한 곳에 자리잡고 대군을 막으면서,

몰래 3천명을 보내, 현도·요동 두 군을 공격하여 성곽을 불사르고 2천여 명을 죽이거나 사로잡았다.


여름 4월에 왕은 선비 8천 명과 함께 가서 요수현(遼隊縣)을 쳤다.

요동태수 채풍이 군사를 거느리고 신창(新昌)으로 나와 싸우다가 죽었다.

공조연(功曹) 용단(龍端), 병마연(兵馬) 공손포(公孫)가 몸으로 채풍
을 보호하여 막았으나 모두 진영에서 죽었다.




12월에 왕은

마한(馬韓), 예맥의 1만여 기병을 거느리고 나아가 현도성을 포위하였다.

부여왕이 아들 위구태(尉仇台)를 보내 군사 2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한나라 군사와 힘을 합쳐 싸웠으므로 우리가 패했다.



70년(122)에 왕은 마한, 예맥과 함께 요동을 쳤다.

부여왕이 군사를 보내 요동을 구하고 우리를 깨뜨렸다.

->이때 '마한' 이름의 등장으로 많이 혼란스러워한다.

마한은 서기9년에 백제에게 망한다.

하지만 백제가 모든 영토와 인구를 차지 한것은 아니다.

고구려로 투항한 지역이 있을 것이다.

이들이 마한이다.



94년(146)
가을 8월에 왕은 장수를 보내 한나라 요동의 서안평현(西安平縣)을 쳐서,

대방령(帶方令)을 죽이고 낙랑태수의 처자를 사로 잡았다.


->대단히 중요한 기록이다.

서안평과 대방현과 낙랑군의 지리적 근접성을 보여준다.

당시 대방은 낙랑군 아래의 현이름이다.

나중에 모용씨가 낙랑군을 분할해서 대방군을 만든다.


서안평과 낙랑군의 치소가 아주 가까이 있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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