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대, 대무신욍(大武神王)(재위기간: 서기 18~44년)
왜 대무신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은 지 알수 있다.
---4년(21) 겨울 12월에 왕은 군대를 내어 부여를 정벌하였다.
---5년(22) 봄 2월에 왕은 부여국 남쪽으로 진군하였다.
그 땅은 진흙이 많았으므로 왕은 평지를 골라 군영을 만들고 안장을 풀고 병졸을 쉬게 하였는데,
두려워하는 태도가 없었다.
부여왕은 온 나라를 동원하여 출전해서 고구려가 방비하지 않는 사이에 엄습하려고
말을 채찍질하여 전진하였으나, 진창에 빠져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었다.
왕은 이때 괴유에게 지시하였다.
괴유가 칼을 빼서 소리 지르며 공격하니 부여의 모든 군대가 무너져서 지탱할 수 없었다.
괴유는 곧바로 전진하여 부여왕을 붙잡아 머리를 베었다.
부여사람들이 왕을 잃어 기력이 꺾였으나, 스스로 굴복하지 않고 고구려군을 여러 겹 포위하였다.
이물림에 이르러 군사들이 굶주려 일어나지 못하므로, 들짐승을 잡아서 먹을 것을 주었다.
여름 4월에 부여왕 대소의 아우가 갈사수(曷思水) 가에 이르러 나라를 세우고 왕을 칭하였다.
대소가 죽임을 당하자 그는 나라가 장차 망할 것을 알고, 따르는 자 백여 명과 함께 압록곡에 이르렀다.
그는 해두국왕(海頭國王)이 사냥 나온 것을 보고 결국 그를 죽이고 그 백성들을 빼앗아 이곳에 와서 비로
소 도읍하였는데. 이 사람이 갈사국왕(曷思國王)이 되었다.
---9년(26) 겨울 10월에 왕은 친히 개마국(蓋馬國)을 정벌하여 그 왕을 죽였으나,
백성을 위로하여 노략질하지 않고 다만 그 땅을 군현으로 삼았다.
---12월에 구다국(句茶國)의 왕이 개마국이 멸망한 것을 듣고 해가
자신에게 미칠 것이 두려워 나라를 들어 항복하였다.
이로써 땅을 점차 넓게 개척하였다.
---11년(28) 가을 7월에 한나라의 요동(遼東) 태수(太守)가 군사를 거느리고 쳐들어 왔다.
---20년(37) 왕은 낙랑을 습격하여 멸하였다
---27년(44) 가을 9월에 한나라 광무제가 군대를 보내 바다를 건너 낙랑을 정벌하고,
그 땅을 빼앗아 군현으로 삼았으므로, 살수(薩水) 이남이 한나라에 속하게 되었다.
->왕망의 신나라 시기에 한사군병사가 반란을 일으켰듯이...
후한 광무제때... 또 한사군 병사가 반기를 들었을 것이다.
이에 정벌 한 것임
살수의 위치가 대충 어딘지 짐작이 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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