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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0~200; 동한

백제-3가지 건국설화

by 사마르칸트 2016. 2. 19.

『삼국사기』에는 2가지 건국 설화가 전해진다.

 

첫째는 비류와 온조를 주몽의 친자로 전한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은 그 부(父)가 추모 鄒牟 혹은 주몽 朱蒙 이라고도 한다.


(주몽)은북부여에서 도망해 졸본부여(卒本夫餘)로 왔는데

(졸본)부여의 왕은 아들이 없고 딸만 셋이었다.

 

주몽이 보통 인물이 아님을 알고 그의 둘째딸로 아내를 삼았다.

 

얼마 아니하여 (졸본) 부여왕이 돌아가매 주몽이 그 位를 이었다.

 

주몽이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는 비류 沸流 라 하고 차자는 온조라 했다

 

[혹은 주몽이 졸본에 와서 건너편 고을(越郡)의 여자를 취해 두 아들을 낳았다고도 한다].

 

주몽이 북부여에 있을 때 낳은 아들이 와서 태자가 되자

 

비류와 온조는 태자에게 용납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오간 烏干․마려 馬黎 등 열 명의 신하와 함께 남행했는데 따라오는 백성이 많았다.

 

드디어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負兒嶽)에 올라 가히 살만한 곳을 바라보았는데, 비류는 해변에 살기를 원했다.

올 때에 백성이 모두 즐겨 좇았으므로 후에 국호를 백제라 고쳤다.

그 세계(世系)가 고구려와 한 가지로 부여에서 나왔기 때문에 부여로 성씨를 삼았다.

 

 

 

 

둘째는 상세한 주석(註釋)형태로 『삼국사기』에 기록

 

[혹은 이르기를 시조는 비류왕으로서 부(父)는 우태 優台이니

북부여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이며,

모(母)는 소서노 召西奴이니

졸본 사람 연타발 延陀勃의 딸이었다.

소서노가 처음 우태에게 시집가서 두 아들을 낳았는데,

장자는비류요 차자는 온조였다.

 

우태가 죽자 소서노는 졸본에서 과부로 지냈다.

뒤에 주몽이 북부여에서 용납되지 못해 전한 건소(建昭) 2년(BC 37년) 二月에

남으로 졸본에 이르러 도읍을 세우고 국호를 고구
려라 하고 소서노를 취해 왕비로 삼았다.

 

그가 건국에 내조의 공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주몽의 총애가 특히 두터웠고 비류 등을 마치 친아들과 같이 대우했다.

주몽이 부여에 있을 때 예씨(禮氏)에게 낳은 아들 유유 孺留가 오자 그를 태자로 세우고 왕위를 잇게 했다.

 

이에 비류가 온조에게 말하기를 “처음 대왕이 부여에서 난을 피해 여기로 도망해 오자,

우리 어머니께서 가재(家財)를기울여서 도와 나라를 세워 그 근로(勤勞)가 많았다.

대왕이 세상을 떠나자 나라는 유유의 것이 됐으
니 우리는 한갓 여기에 붙어 있어 혹과 같아 답답할 뿐이다.

차라리 어머니를 모시고 남쪽으로 가서
땅을 가려 따로 나라를 세움만 같지 못하다”

하고 드디어 아우와 함께 무리를 거느리고 패수(浿水)와
대수(帶水)의 두 강을 건너 미추홀에 가서 살았다 한다.

 

 


셋째로 구태 仇台를 시조라 전하는 백제 건국설이 있다.


중국의『周書』와『隋書』에 기록되어 있다.

백제는 그 선대가 대체로 마한의 속국이며 부여의 별종이다.

구태 仇台란 사람이 처음으로 대방(帶方)에 나라를 세웠다.

그 땅의 경계는 동쪽으로 신라에 닿고

북쪽으로 고구려와 인접하며 서쪽과 남쪽으로는 모두 큰 바다로 경계가 된다.

(중략) ……

그 나라의 왕은 매 계절의 중월(仲月)에 하늘과 오제(五帝)에게 제사지내고,

또 해마다 네 번씩 그의 시조 구태의 사당에 제사를 지낸다. (『周書』, 卷49,


「異域 列傳 上」, 百濟) 백제의 선대는 고려국에서 나왔다.

(중략)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 仇台 란사람이 있어,

매우 어질고 신의가 두터웠다.

대방(帶方)의 옛 땅에 처음 나라를 세웠다. ……

나라가점점 번창하여 동이(東夷) 중에서 강국이 되었다.

당초에 백가(百家)가 바다를 건너 왔다[百家濟海]고 하여,

나라이름을 백제라 하였다. (중략) ……

해마다 매 계절의 중월(仲月)에 하늘과 오제(五帝)에게 제사지낸다.

그 시조 구태의 사당을 도성 안에 세워놓고 해마다 네 번씩 제사를 지낸다

 

『북사(北史)』와『수서(隋書)』에는 모두 이르기를

동명(東明)의 후손에 구태 仇台 란 이가 있어 인신(仁信)이 두터웠다.


처음 대방(帶方)의 옛 땅에 나라를 세웠는데,

한나라의 요동태수 공손탁이 딸을 그의 아내로 삼았다.

드디어 동이(東夷)의 강국이 됐다고 한다.

(건국설에 있어서) 어느 것이 옳은지 알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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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적은 거네요...

 

머리를 만진 놈, 다리를 만진 놈, 꼬리를 만진 놈...

 

이제 모델을 만들어 봅니다.

 

 

 

 

1.주몽 - 북부여에서 도망옴

-주몽의 전처;예씨와 아들 유유

-졸본왕의 딸...애 둘 달린 과부, 소서노공주와 결혼

 

 

2.졸본부여왕;연타발

-3녀중 둘째가 소서노 공주

 

 

3.비류왕 우태;

-북부여왕 해부루(解扶婁)의 서손(庶孫)

-소서노의 전남편

-아들 비류,온조

 

 

4.소서노

-졸본왕의 공주

-왕족 우태의 처

-우태가 죽고 과부

-주몽과 결혼 후, 많은 재물로 국가 건설에 이바지

-비류, 온조와 고구려를 떠남

 

 

-중국 기록은 많이 헷갈린 듯...

-엄연한 우리 기록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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