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우(杜佑, 735년 ~ 812년)는
중국 당나라의 역사가이다.
자는 군경(君卿)이고, 시호는 안간(安簡)이다.
경조부(京兆府) 만년현(萬年縣), 즉 지금의 산시 성 시안 시 출신이다.
유질(劉秩)이 편찬한 『정전(政典)』 30권의 결점을 보완하여,
대력 원년(766년)부터 30년 남짓의 시간을 들여 『통전』 200권을 저술하였다.
그밖에 『이도요결(理道要訣)』, 『빈좌기(賓佐記)』, 『관씨지략(管氏指略)』 등의 저술을 남겼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사후 태부(太傅)에 추증되었으며,
그의 손자는 당 말기의 시인으로 유명한 두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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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典 卷第一百八十五 邊防一 東夷上 百濟
백제는 즉 후한말 부여왕 위구태의 후손이다.
후위 때에 백제왕이 표를 올려서 말하기를
“신은 고구려와 함께 부여에서 일찍이 나왔다”고 했다.
처음 백여가구가 바다를 건넘으로써 국호를 백제라고 했다.
진나라때에 고구려가 이미 요동을 경략하자,
백제 역시 요서와 진평 2군을 점거하였으니,
지금의 유성과 북평의 사이다.
진나라때 이후로 여러 제국들을 병탄하고,
마한의 옛 땅을 점거하였다.
그 나라는 동서로 4백리요, 남북으로 9백리이며,
남쪽에는 신라와 접하고,
북쪽에는 고구려 천리와 대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큰 바다가 경계지어 있고,
소해의 남쪽에 위치하는데,
나라의 서남 바다에는 3개의 섬이 있어서
황칠수가 나오는 흡사 작은 개오동나무와 같으나 크기가 크다.
유월에 그 즙을 채취하여 기물에 칠하는데,
마치 황금을 칠한 것과 같이 그 빛이 사람의 눈을 빼앗는다.
진대이후로 번작을 받았고, 스스로 백제군을 두었다.
의희(405-418)년중에
백제왕 부여(전타전반-전지왕?)을 사지절도독 백제제군사로 삼았다.
송,제 양국에 사신을 보내 조공하고, 관직을 받았으며, 그 사람을 봉했다.
百濟,卽後漢末夫餘王尉仇台之後,後魏時百濟王上表云:「臣與高麗先出夫餘。」初以百家濟海,因號百濟。晉時句麗旣略有遼東,百濟亦據有遼西、晉平二郡。今柳城、北平之間。自晉以後,呑幷諸國,據有馬韓故地。其國東西四百里,南北九百里,南接新羅,北拒高麗千餘里,西限大海,處小海之南。國西南海中有三島,出黃漆樹,似小檟樹而大。六月取汁,漆器物若黃金,其光奪目。自晉代受蕃爵,自置百濟郡。義熙中,以百濟王夫餘腆佗典反爲使持節、都督百濟諸軍事。宋、齊並遣使朝貢,授官,封其人。
사람들은 토착생활을 하는데, 땅이 낮고 습하여, 모두들 산에서 산다.
그 도읍은 거발성이라고 하며,
왕은 어하라라고 하는데,
백성들은 건질지라고 부른다. 중국말로 왕이란 뜻이다.
왕의 아내는 어륙이라 하는데, 중국 말로 왕비라 말이다.
후 위 효문제(471-499)가 무리를 보내 정복하여 깨뜨렸다.
후에 그 왕 모대[동성왕]가 고구려에게 여러번 패한 바가 되어
차차 쇠약한지 오래되어 남한의 땅으로 옮겨갔다.
수문제 개황(581-600)초에
그 왕 부여창이 사신을 보내어 방물을 바쳤기에
대방군공 백제왕으로 삼았다.
대당 무덕(618-6260, 정관(626-649) 시기에도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어 조공을 해왔다.
현경 5년(660)에 소정방을 보내 토벌하여 평정하였다.
예전에는 5부와 37개군, 200성을 나누어 76만호로 통치했었다.
이때에 이르러 그땅에 웅진, 마한, 동명 등 5도독부를 나누어 두게 된 것이다.
이에 그 추장 거수를 도독부자사로 삼았다.
그 옛 땅은 신라에게 편입되었으며,
성과 주변의 남은 무리들은 후에 점점 적어지고 약해졌으며,
흩어져서 돌궐 및 말갈에 투항을 했다.
백제의 주인인 부여숭[부여융]은 마침내 옛 나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토지는 신라, 말갈에 모두 흡수되고 말았으므로,
부여씨 왕가는 마침내 끝어지고 말았다.
後魏孝文遣衆征破之。後其王牟大爲高句麗所破,衰弱累年,遷居南韓地。隋文開皇初,其王夫餘昌遣使貢方物,拜爲帶方郡公、百濟王。大唐武德、貞觀中,頻遣使朝貢。顯慶五年,遣蘇定方討平之。舊有五部,分統三十七郡、二百城、七十六萬戶,至是以其地分置熊津、馬韓、東明等五都督府,仍以其酋渠爲都督府刺史。其舊地沒於新羅,城傍餘衆後漸寡弱,散投突厥及靺鞨。其主夫餘崇竟不敢還舊國,土地盡沒於新羅、靺鞨,夫餘氏君長遂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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