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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0~200; 동한

고9-고국천왕(故國川王, 119년?~197년, 재위: 179년~197년)

by 사마르칸트 2016. 3. 19.

고국천왕(故國川王, 119년?~197년, 재위: 179년~197년)은 고구려의 제9대 군주이다.

신대왕의 둘째아들로 휘는 남무(南武)이다.

국양왕(國壤王)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다른 이름으로 이이모(伊夷模)가 기록되었다.


제8대 신대왕(新大王)의 둘째 아들이며,

신대왕이 죽은 뒤 형인 발기(拔奇)를 제치고 대신들의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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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를 이해하자면

중국의 정세를 알아야 한다.

혼란기의 시작이다.


한 영제 (168년~189년)
한 소제 (189년)
한 헌제 (189년~220년)


-십상시의 난[189년]

-동탁집권[182-192]

-반동탁전쟁[190-191]


-공손찬[-199];반하전투[192;공손찬;원소]

-공손탁[-204];요동태수임명 [190],50여년간 요동의 공손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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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혼란기에 들어가므로,

고구려의 변경은 조용해진다.


184년에

후한(後漢)의 요동(遼東) 태수가 쳐들어와 동생 계수(罽須)를 보내 막았으나 패배하였다.

이에 왕이 직접 출병하여 좌원(坐原)에서 한군을 격퇴하였다.


190년 가을, 왕후의 친척인 중외대부(中畏大夫) 패자 (沛者) 어비류(於卑留)와

평자(評者) 좌가려(左可慮)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자

왕이 이를 벌하려 하였다.

 이에 좌가려 등이 사연나(四椽那)와 함께 반란을 일으켜

191년 4월에 수도를 공격하였으나 패배하여 진압되었다.



반란을 진정시킨 뒤 그해에 왕은 평민 출신의 을파소(乙巴素)를 등용하고 국상(國相)에 임명하였다.

구신(舊臣)들이 신진 세력인 을파소를 참소하자 왕은 “국상의 명령을 따르지 않는 자는 멸족할 것이다.”라고 포고하였다.

이에 을파소는 왕의 정성에 감동하여 정치에 힘써 나라가 융성하였다.

194년에는 진대법(賑貸法)을 제정하여 백성들을 구휼하였다.


197년에 사망하였으며 고국천원(故國川原)에 장사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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