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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200-400; 5.16

평양근교 고분군과...흔적도 없이 사라진 백제의 고분군...

by 사마르칸트 2016. 5. 8.




--무용총(舞踊塚, JYM458)은
중국 길림성 집안현 통구
고분벽화기 제2기의 회화



--각저총

중국 길림성 집안현 여산
1935년 발굴되었으며 서남쪽에 무용총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제작 연대는 무용총과 비슷해 보이나
각저총이 다소 앞선 시기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4~5세기경에 제작된 벽화 고분들에서 나타나는
주인공 부부의 초상화가 각저총에는 있는

반면 무용총에는 없기 때문이다.



---안악3호분(安岳3號墳)

 황해남도 안악군에 위치한 고구려 고분이다.

벽화와 비문으로 알려져 있고 고구려 고분군의 일부이다.

제작년도는 357년으로 추정되었다.

1949년에 처음으로 발견되었는데, 이미 가치가 높은 보물들이 도굴된 뒤였다.

벽화는 좋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벽화 속의 남자와 여자는 고풍스러운 옷을 입은 채로 그려져 있었다.

고분의 입구에는 7행 68자로 동수라는 장군에 대한 글이 써져있으며,

말각조정이라는 고구려 특유의 고분방식을 사용하였다.

->언제 도굴되었을까..




--쌍영총(雙楹塚)은
평안남도 용강군 지운면(池雲面) 안성리(安性里)
고구려 벽화고분기 제1기의 분묘
전실과 현실 사이의 통로에 좌우로 팔각 돌기둥이 하나씩
서 있어 쌍영총(두 기둥이 있는 무덤)으로 명명되었다.



--강서대묘(江西大墓)는
평안남도 강서군
강서삼묘 중 가장 큰 벽화고분
7세기초...




-우리는 알고 있다.


서기 400년대 장수왕이후... 백제의 한성이 함락되고...


백제는 먼 변방으로 이주한다....



-그 이전 서기200년대 백제가 성장 하면서...


고구려와 많은 다툼이 있었다.


-그리고 300년대 후반...백제가 고구려의 평양을 공격하고,


고구려 고국원왕이 전사하는 데 까지 이른다.


-고구려의 평양은 백제의 공격에 자유롭지 않은


위태로운 곳이었다.



-안악3호분; 백제와의 전쟁에서 전사한 고국원왕이


자신의 부친인 미천왕을 위태로운 황해도에 묻었단다...


것도 중국식 무덤으로...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고분군이 있다.


신라는 경주에 고분군이 있다.


고구려는 집안에 고구려 고분군이 분명히 있다.


심지어


가야는 각 지방마다 고분군을 남겼다.


-그런데 고구려 만큼 역사가 길었던 찬란한


백제의 고분군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평양부근에는 수많은 고분군이 있다.


이것들을 낙랑이라 하기도 하고... 고구려라 하기도 한다.


백제의 것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백제는 원래 대방의 옛터에 개국을 했다고 한다.


그들의 설명대로라면...


백제가 황해도에 개국을 했다는 것...


-백제가 어떻게 낙랑을 가로질러 남하를 했고...


-어떻게 낙랑 몰래 황해도에 개국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백제가 개국한 황해도에...백제의 흔적은 없고...


왠 낙랑, 고구려의 흔적만...


참 이상타...


-그것도 왜놈들의 낙랑 유물 찾기 쑈중에서...



-고구려는 부여에서 나오고...


백제는 고구려에서 나왔다...


소서노와 비류와 온조...


이들도 부여계의 일종이다...


과연 이들 초기문화가 고구려와 많이 달랐을까...


개마무사의 모습은 가야에도 볼수 있는데...



-고구려 장수왕이후 고구려가 남하 한 것은 분명할것이다...


-하지만....


삼국중에...무역이 가장 활발하고...


수많은 중국, 일본의 물품이 있던 곳이


백제이다...



-중국의 물건과 풍속을 가장 먼저 수입하던 곳이다...


-무역로에 있는 국가는 아주 풍요롭다...


-항구도시는 여러나라의 물건과 풍속이 섞인다....


-과연


이 풍요로운...역사가 긴 나라의 고분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단말인가....



-일제시대 평양부근에는


낙랑 유적 발견쑈와....


대규모 고분 도굴 전쟁이 벌어진다.


-평양근교... 고분군..


왕의 시신, 관, 유물은 어디가고...


벽화만 남았단 말인가....



-왕의 무덤에 왕에 대해서는 한마디없이..


신하로 보이는 사람위에


대충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인가....


하필이면 낙랑,현도, 대방의 사람인가...


다른 편 사람 위의 글은  알아볼수도 없는데...


이쪽 글은 왜 이리 선명한가...


-혹 왜놈들의 작난은 아닌가...



-서울 강남땅이 백제의 위례성이라면...


무슨 무덤군이라도 있어야...


-강남 땅밑에 다 숨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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