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번째. 시의관(猜議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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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논하고 시기하고 그러한 난관을 초월해야 한다.
고경(古經)에 이르시길 스승의 적실한 가르침이 없다면 천상의 신선들도 거주할 곳이 없다고 하였다. 오진(悟眞)에 이르되 그대를 살찌우는 총명하고 슬기로움이 예전의 안자를 능가한다 할지라도 참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억지로 의심하고 시기한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긴요한 일은 구결(口訣)을 알아야 하며 으뜸 되는 것을 통하는 데에는 반드시 신선들과 함께 자세하게 의논을 해야된다라고 하였다.
장삼봉(長三奉)이라는 신선은 말씀 하시길, 하늘의 달이 둥근 것은 구결(口訣)하는데 있는 것이고 시기가 현묘한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은 마음으로 정해 두는 데에 있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밝은 스승에게 절해서 묻는 것은 바야흐로 어린애가 손을 내려서 일을 하는 거와 같은 것이며, 속히 수련을 하려고 하니 오히려 더디게 된다고 하였다.
도(道)라 하는 것은 모름지기 스승이 전하는 것이니 가히 망령되게 서로 의심하고 시기하고 사사로이 의논을 해서 아는 것은 아닌 것이라. 대개 큰 도라는 것은 오묘하고 그윽하고 깊어서 크다면 우주에까지 충만하는 것이고 작다고 한다면 세세하여 털끝에도 들어갈 수 있는 것이어서 그 크기야말로 바깥이 없는 것이고 적은 것이야말로 속도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능히 잘 수련을 한다면 천지(天地) 조화도 뺏을 수 가 있으며 음양의 굴레 속에서 벗어날 수도 있고 심성과 생명도 아주 요달하게 끝마쳐서 신선과 부처를 이룰 수가 있어서 하늘과 땅으로 더불어 함께 길이길이 장구할 수 있고 하늘의 해와 달로 더불어서 함께 빛나고 광명할 수 있는 것이다.
하늘보다도 먼저 내가 일을 하였으되 하늘이 내가 한 일을 어기지를 아니하고 하늘보다 뒤에 하게 될 때에는 하늘의 시기를 내가 받들어야 되니 일체 모든 정도(正道)가 아니고 방문(旁門)의 경지로 공부한 사람들 외도(外道)를 공부한 사람들 이라면 가히 이루지 못할 일이라.
마음속에는 음양의 도가 있는 것이지만 몸밖에도 음양의 도가 있는 것이다. 참으로 진실한 것도 있지만 거짓된 것도 있는 것이다. 참 진실함 속에도 거짓됨이 있으며 거짓된 속에도 참 진실한 것이 있어서, 참 진실한 속에 또 진실한 것이 있고 거짓된 속에도 거짓이 있게 된 것이라.
이것을 수련으로 해서 닦음으로 해서 화후법 이라는 것이 있고 차례와 질서가 있으며 우리가 몸으로 실천하는 유위법(有爲法)도 있고 우리가 심성으로 생각해서 해야되는 무위법(無爲法)도 있는 것이다.
처음시작의 일도 있고 끝마침의 종결[有終]도 있으며 채약(採藥)이라는 수련 방법도 있고 약을 합하는 합약(合藥)의 수련 과정도 있으며, 금단(金丹)이 맺혀지는[結丹] 그런 일도 있고, 금단(金丹)이라는 약을 복용하는[服丹] 것도 있으며 이 도 수련에 대해서 태가 응결이 된다는 결태(結胎)의 경지도 있고 태를 벗어난다는 탈태(脫胎)의 경지도 있다.
그 일이야말로 여러 가지가 있어서 법을 지닌다는 것은 한결같지 아니하니,
진실로 밝은 스승님이 첫머리로부터 꼬리에 이르기까지 낱낱이 분별을 하고 세세히 가르치고 암시하지 아니한다면 스스로 알아서 깨닫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미 지나간 모든 단학과 도교에 대한 경전과 여러 저서에는 천 가지 방법으로 서로 비유하고 만 가지의 모양으로 그것을 형용을 하니, 약물(藥物)이라는 수련법과 화후(火候)라는 수련법을 구비하지 아니함이 있더라도 그러나 도의 으뜸이 되는 현묘한 것은 그것을 지으려고 하는 것은 자자하고 세소하고 아주 미소하여 말로 하자고 하더라도 말로는 나타낼 수 없으며, 도를 의논하려고 해도 의논이 말로 이를 다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떻게 형상이 있는 것을 가지고 형상이 없는 것을 깨달아서 비유할 수 있을 것인가. 형상이 있는 것을 가지고 형상이 없는 것을 가리켜서 뒷세상에 더함에 눈이 어두운 사람이 조사님들의 이름을 빌려서 망령되게 그것을 짓고 망령되게 집착을 해서 성인의 도덕(道德)을 헐어버리고 비방을 한다. 신선의 글을 문란히 어지럽게 하며 참 것과 거짓된 것을 서로 섞여두게 되니 만약에 자기의 식견에 의지해서 내게 깨달음이 있다고 한다면 다시는 고명한 사람에게 묻지도 인정도 아니하게 되는 것이다.
한번 어두운 그물 속에 들어간다면 자기 일평생 그곳을 벗어나기란 어려운 것이다. 마침내 종신토록 총명한 어진 재주로 분별하는 그 옳고 그르다 하는 것과 간사하고 바르다하는 그런 곳을 벗어나기는 어려운 것이라. 대략 휘통해서 깨달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머리는 있고 결말의 꼬리는 없는 것이고 이것 같으되 옳은 것 같지만 이것이 아닌 것이니 어찌 능히 참 깨달아 알아서 확실하게 하나를 요달해서 백가지를 감당함을 볼 수 있겠는가. 세간의 호도(糊塗) 학인(學人)들은 도의 깊고 얕은 것을 알지를 못하고 자기의 생명의 가볍고 무거운 것을 깨닫지 못해서 공중에 날아가는 반딧불의 밝은 불빛을 가지고 하늘을 미욱하게 하는 그 그물을 다 타파하기를 하고자 한다.
참 스승을 구하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에게서 그것을 구하며 혹 어떤 사람은 방문에 거짓되게 조작한 그 글을 보아서 작은 희롱을 운반하는 공부를 기록을 하고 자기 일평생 종신토록 그것을 지탱해 가지고 아주 견고하게 굳세게 해서 그것을 깨뜨리고 치지 못해서 자기 일평생을 그르치게 된다.
사람들은 조사님들의 바른 경서를 보고서 밤낮으로 외우고 읽되 참 뜻은 연구를 아니하고 다만 상상적인 것을 인정을 한다. 약물(藥物)이라는 수련법과 노정(火盧鼎)이라는 수련법의 설명을 보고 이것이 살아서 태우는 것이 수련이 되는가를 의심한다.
남자와 여자의 음양의 설명을 보고 규중에 금단(金丹)이 된다는 것을 의심하고 시기를 하며 용이다 범이다 거북이다 뱀이다 그런 설명을 보고 이것이 바로 심장과 신장과 간장과 폐장을 의심하며 그것이 전도되고 거스린 운명을 거스리는 그런 설명을 보고 뒤에서 올라서 앞에서 내린다라고 의심하고 시기를 한다. 보배 구슬이라는 설명을 보아도 이것이 바로 기(氣)가 있는 물체인가를 의심을 하며 성인의 태다(聖胎)라는 설명을 보고 기운과 혈액이 응키고 응결함이 된다라고 의심을 한다.
아주 청정하게 맑은 설명을 보고 이것이 바로 정신을 존속시키고 기운을 안정시키는 것인가 하고 의심을 하며, 우리가 몸으로 행동으로 실천하는 유위법(有爲法)에 대한 설명을 보고, 무엇이든지 지어 가지고 만들면 된다라고 의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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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생각과 마음과 신성으로 하는 무위법(無爲法)의 설명을 보고 허공의 고요한 적적함이 된다라고 의심을 하니 이와 같은 모든 부류의 사람들은 가히 낱낱이 열거해서 말할 수 없으나 다 수수깨끼와 같은 의심을 타파했지만 마침내는 허망함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참마음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에게 권유하니 시기하고 의심하고 의논하는 난관의 출입구를 타파하고 소통시켜서 자기가 일평생 살아온 시기에 자기 스스로가 자부해서 자랑하고 자기의 기량을 손으로 꽉잡아서 제거하고 참 스승을 찾아가서 구해서 그 깊고 오묘한 뜻을 열어 밝혀서 만번 이라도 가해서 자기의 거짓된 총명과 망령된 의논과 의심으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 스스로 떠들어대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모든 사람에게 정득을 얻을 수 없고 다만 자기에게서 구하게 되니 이는 자기 몸밖에서 찾아보고 찾는데 있는 것이 아니며 문득 이것은 몸속에서 짓는 것이라 하는 것으로 망령되게 생각하니 도를 수련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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