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5년(한나라 연호로는 초원 4년) 낙랑군 내
25개 현의 현별 호구와 인구,
전체 인구 28만여 명을 기록한 당시 공문서 목간이
평양 낙랑 구역의 옛 귀틀무덤에서 발굴됐다.
-후한 시대는 거의 고구려의 태조대왕과 명재상 명림답부의 시절이다.
인구가 대폭 줄어 든 곳...
현도, 요동, 요서,우북평...
70-80% 정도의 인구감소...이것은 이동이다..
엄청난 북방의 압력이 가해졌다는 사실...
거의 유명무실한 군으로 전락했다는 의미...
50%정도의 인구감소...
낙랑, 상곡, 대군...
이 곳 또한 전란으로 황폐화 되었다는 뜻....
인구가 거의 비슷하게 유지된곳...
탁군, 발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난 곳..
광양, 어양....
장성밖의 군들은 이미 유명 무실해졌다..
장성내부에서도
장성 근처의 인구는 대폭감소한다...
이것은 이동이다...
이미
엄청난 압력이 기원후 1-2세기에
가해졌다는 엄연한 반증...
장성밖의 낙랑이
313년까지 1백을 더 버텼다는
전설적인 장면....
-이것은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하지만...
낙랑군은
대군, 상곡의 라인에 존재 했어야...
이렇게 라도 유지될수 있었다...
-이미 장성 밖의 한나라군들은 유명무실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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