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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0~200; 동한

전한서...후한서...유주(幽州) 인구분포 및 변화...

by 사마르칸트 2016. 2. 8.

 

 

-기원전 45년(한나라 연호로는 초원 4년) 낙랑군 내

 

25개 현의 현별 호구와 인구,

 

전체 인구 28만여 명을 기록한 당시 공문서 목간이

 

평양 낙랑 구역의 옛 귀틀무덤에서 발굴됐다.

 

 

 

 

 

 

-후한 시대는 거의 고구려의 태조대왕과 명재상 명림답부의 시절이다.

 

 

 

인구가 대폭 줄어 든 곳...

 

현도, 요동, 요서,우북평...

 

70-80% 정도의 인구감소...이것은 이동이다..

 

엄청난 북방의 압력이 가해졌다는 사실...

 

거의 유명무실한 군으로 전락했다는 의미...

 

 

 

50%정도의 인구감소...

 

낙랑, 상곡, 대군...

 

이 곳 또한 전란으로 황폐화 되었다는 뜻....

 

 

인구가 거의 비슷하게 유지된곳...

 

탁군, 발해...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 난 곳..

 

광양, 어양....

 

 

 

 

 

장성밖의 군들은 이미 유명 무실해졌다..

 

장성내부에서도

 

장성 근처의 인구는 대폭감소한다...

 

이것은 이동이다...

 

이미

 

엄청난 압력이 기원후 1-2세기에

 

가해졌다는 엄연한 반증...

 

장성밖의 낙랑이

 

313년까지 1백을 더 버텼다는

 

전설적인 장면....

 

 

 

-이것은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다...

 

하지만...

 

낙랑군은

 

대군, 상곡의 라인에 존재 했어야...

 

이렇게 라도 유지될수 있었다...

 

 

-이미 장성 밖의 한나라군들은 유명무실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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