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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0~200; 동한

부여왕 위구태...백제 시조론...

by 사마르칸트 2016. 2. 15.

 

「부여는 원래 현도군에 속하였다.

후한 말에 현도태수 공손도가 요동 땅을 넓히니 바깥의 오랑캐들이 무서워하며 복속하였다.

부여왕 위구태는 다시 요동군에 속하였다.

때에 고구려와 선비가 강하였는데, 공손도는 고구려와 선비 사이에 있는 부여에 종녀를 처로 주었다.
夫餘 本 屬玄도 漢末 公孫度 雄張海東 威服外夷 夫餘王 尉仇台 更屬遼東 時 句麗鮮卑彊 度以夫餘在二虜之間 妻以宗女.」

 

三國志 魏志 東夷傳 卷30 夫餘

 

[註 삼국사기 백제본기, 수서, 북사 등에는 위구태에게 공손도의 딸을 주었다고 적혀 있고,

삼국지 부여전에는공손도의 종녀를 주었다고 적혀 있다.]

 


「동명의 후손으로 구태가 있어 어짐과 신의에 돈독하였다.

처음 나라를 대방고지에 세웠다.

한 요동태수 공손도가 그의 딸을 그의 아내로 주어 드디어 동이의 강국이 되었다.
東明之後 有仇台 篤於仁信 始 立國 於帶方故地 漢 遼東太守 公孫度 以女妻之 遂?東夷?國.」 北史 列傳第八十二 百濟

 


 
「책부원구에 의하면 진 간문제 함안 2년 정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어 조공하고 방문을 바쳤다.

6월 사신을 보내어 백제왕 여구에게 벼슬을 내렸다.

생각컨데 백제는 부여왕 위구태의 후예이다.

고로 부여를 성으로 하였다.
冊府元龜 晉 簡文帝 咸安 二年 正月 百濟 遣使貢方物 六月 遣使 拜百濟王 餘句
(按百濟爲夫餘王尉仇台之後 故 以夫餘爲姓.後略)」欽定滿流原流考

 

 

 

「통고에 의하면 백제는 후한 말 부여왕 위구태의 후예이다..
通考 百濟 卽 後漢末 夫餘王 仇台之後..後略」欽定滿流原流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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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상한 문구들에 의해...

 

온갖 설이 난무하게 되았다...

 

이것은 한마디로 데이터부족 현상이다...

 

책 쓴 사람이 백제에 대해 별로 아는게 없다는 것...

 

삼국사기 같은 우리나라의 정사를 본일이 없었다는 것....

 

 

 

-북부여가 공손씨와 협력한 사실은 있음...

 

-백제가 부여의 후손이며...대방의 옛땅에 건국한 사실이 있음

 

-이 두가지 기록을 혼용해서 사용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부여에 대해 아는게 너무 없고...기록이 별로 없으므로..

 

-위구태왕에 대한 것만 나오므로...

 

-백제가 부여의 후손이라고 하자...

 

이것을 혼용해 버린 것...

 

-후대의 나머지 사서들은

 

모두 앞 서적의 내용을 반복하고 있음....

 

 

-한마디로

 

백제와 부여에 대해 너무 모른다는 것...

 

물론 관심도 없겠지만...

 

 

cf)우리나라에는

 

엄연히 삼국사기, 삼국유사라는 정사가 있습니다.

 

비록 시원챦지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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