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스크리트로 '不二論', '일원론'이라는 뜻이다.
추종자들은 이 학파의 주요교리가
이미 〈우파니샤드 Upanisad〉에 충분이 나타나 있고
〈베단타 수트라 Vedanta-sutras〉로 체계화되었다고 하지만,
역사적으로 후기 〈망두키아 우파니샤드 Mandukya Upanisad〉에 대해서
시적 형식으로 주석을 단
〈망두키아 카리카 Mandukya-karika〉의 저자인
7세기의 사상가 가우다파다에서 시작된다.
가우다파다는 더 나아가 공(空 Sunya)을 설하는 대승불교 철학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는 이원성이란 없으며,
마음은 깨어 있거나 꿈을 꾸거나 간에 환상(maya)을 통해 활동하며
불이일원론만이 궁극적인 진리라고 주장한다.
이 진리는 환상의 무지로 가려져 있다.
저절로 무엇이 생기거나 다른 것에서 무엇이 생겨 나오는 일은 없다.
결국 어떤 개별적인 자아나 영혼(jiva)이란 없고 아트만만 있을 뿐이다.
그속에서 개체들은 주공간의 일부가 단지 속의 공간으로 한정되는 것처럼
일시적으로 한정될 수 있을 뿐이다.
그 단지가 깨지면 개별적인 공간은 다시 주 공간의 일부가 된다.
중세 인도의 철학자 샹카라(700~750경)
또한 가우다파다에 기초를 두고 있는데
주로 〈베단타 수트라〉에 대한 주석서 〈샤리 라카 미망사 바시아 Sari-rakamimamsa-bhasya〉('자아 연구에 대한 주석서'라는 뜻)에서 그러하다.
샹카라의 철학은 논리적 분석에 의해 경험적인 세계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는 곧바로 절대자(브라만)에서 출발한다.
그는 정확히 해석하면 〈우파니샤드〉는 브라만의 본질을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주장하면서 그는 완벽한 인식론을 발전시켜
현상적인 세계를 실재로 보는 인간의 오류를 설명하려 한다.
샹카라의 기본적인 견해는,
브라만은 실재하며
세계는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떠한 변화나 이원성·다양성도 환상이다.
자아는 브라만과 결코 다르지 않다.
이런 동일성을 통찰하게 되면 정신이 해방된다.
브라만은 현상적 경험의 형태일 뿐인 시간·공간·인과를 넘어선다.
브라만 내에서 또는 브라만으로부터의 차별은 불가능하다.
샹카라는 동일성을 말하거나('네가 그것이다') 차별성을 부정하는('여기에 이원성이란 없다') 경전들을 가리키며,
아무런 속성도 가지고 있지 않은(nirguna) 브라만의 참된 뜻을 밝히고 있다고 말한다(→ 색인 : 니르구나).
인격적 브라만에 속성이 있다(saguna)고 하는 그밖의 책들은
브라만의 참 본질이 아닌 인격적 신(Isvara)의 측면에서 브라만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들이 유일하며 무한한 브라만을 다양하고 무한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인간에게 내재한 덧붙이는 버릇(adhyasa) 때문이며
그때문에 나 아닌 것을 나로 여긴다('나는 피곤하다', '나는 행복하다', '나는 알아차린다' 등).
이 버릇은 인간의 무지(ajnana, avidya)에서 생긴 것으로,
브라만의 정체를 깨달을 때만 피할 수 있다.
그럼에도 경험적인 세계가 전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재하는 브라만을 잘못 파악한 것이기 때문이다.
밧줄을 뱀으로 잘못 안 경우 밧줄만 있고 뱀은 없지만
밧줄을 뱀으로 생각하는 한 그것은 하나의 뱀이다.
샹카라에게는 많은 추종자가 있어 그의 작업을 계승하고 정교화했는데,
그중에서도 9세기의 철학자 바차스파티 미슈라가 유명하다.
불이일원론의 문헌은 대단히 방대하며
현대 인도 사상에도 여전히 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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