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창극 총리후보자 온누리교회 강연 전문, 양재 수요여성예배, 2011.6.15 >
제가 이렇게 강단에 설 자격이 없습니다. 여기는 다 목사님이 서야 하고 하는데 저한테 목사님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내주에 마리아행전을 대대적으로 하는데 나라를 위해서 뭐를 기도해야 하느냐, 기도하는 제목을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부탁을 받았다. 다음 주에 오대원 목사님이 오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제가 오대원 목사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사람으로 제가 여기 섰습니다. 나라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를 왜 해야 하느냐. 우리는 각자 개인을 위해서도 기도를 하지요. 매일 우리가 아침에 기도를 하고 끊임없이 기도를 합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우리가 기도를 합니다. 그러면 나라를 위해서도 같이 기도를 합니다. 왜 기도를 하느냐. 이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우리가 알기 위해서 나라를 위해서 기도를 한다.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이 이 나라를 위해서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걸 우리가 깨달으면 우리가 그 뜻대로 살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라라는 것은 뭡니까. 저는 비행기 어떤 때 타면 3등칸을 많이 타지만 가끔 어떤 기회가 있어서 2등칸을 타게 되면 또 굉장히 대우가 다르더라고요. 1등칸을 타면 아마 더 대우가 달라지겠지요. 나라라는 것은 우리가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3등 나라에 있으면 우리는 3등칸에 있는 손님이 되고 1등칸에 타면 1등칸에 탄 승객이 되는 겁니다. 여러분 1등칸에 타면 서비스도 훨씬 좋고 편하고 얼마나 안락합니까. 우리가 1등의 나라를 만일 만든다면 1등의 나라 안에서 저희들은 개개인의 삶의 고통과 개개인의 삶의 고민을 3등 나라보다는 우리가 덜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나라가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 나라가 복받은 나라가 돼야 한다는 기도를 우리가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왜 한국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켜가지고 한국이라는 나라를 무엇에 쓰려고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의 제일 먼저 기도의 방향이 되야 될 것 같다. 그 뜻을 알아야지 우리가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우리 한국에 대해서 이런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이렇게 기도를 드려야되겠다 라고 말할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겠나. 우리가 기도를 통해서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과거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 우리가 과거를 돌아보면 과거에서 지금까지 지내온 상황을 보면 대한민국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이런 것을 어렴풋이나마 우리가 알 수 있을 겁니다. 과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은 그럼 대한민국에 무슨 뜻을 가지고 계신가 하는 거를 저 나름대로 한 번 찾아보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우리는 1890년 그 때가 처음 선교사님들이 이 나라에 오신 때입니다. 1890년 이조 말기, 고종 때, 그 이전에는 사실상 선교사님들이 아주 가끔 왔지만 당시 조선에 상륙을 못했습니다. 배를 타고 있다 돌아가고, 쇄국정책 때문에. 1890년에 선교사님들이 오시게 되시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됐다. 1890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 나라가 어떻게 전개됐느냐 하는 것을 훑어보면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발견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제목을 놓고 제가 생각을 해봤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도대체 어떻게 된 나라인가. 저는 가만히 돌이켜보면 고비고비 마다 구비구비 마다 하나님의 뜻의 분명히 있었다 라는 것을 저는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민족한테 고난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우리 민족을 단련시키려고 고난을 주신 것이다. 또 고난을 주신 다음에 또 하나님은 우리한테 길을 열어주셨어요. 매번 길을 열어주셨어요. 중요중요 고비마다. 그러면 길을 왜 열어주셨느냐, 하나님이 이 나라를, 이 민족을 써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길을 열어주신 겁니다. 그래서 그런 걸 보면 우리나라라는 것은 지금까지 구비구비마다 시련과 도전을 받았지만 그것이 또 하나의 기회가 됐습니다. 그 기회가 돼가지고 지금 이 나라가 왔습니다.
먼저 조선말의 풍경을 하나 말씀드리겠다. 제가 책을 찾아가지고 조선말의 풍경에 대해서 한 두 가지만 먼저 알려드리겠습니다. 1832년에 영국 상선 앰허스토호라는 배가 우리나라 몽금포, 저 황해도 서해에 왔다. 그 때 거기에 선교사가 동승을 했습니다. 이 사람은 독일 개신교 선교사였습니다. 1832년이니까 순조 31년입니다. 퀴츨 라프입니다. 이 사람을 조선을 어떻게 봤냐. 자기가 북경에 가서 보고서를 냈는데, 조선에 대한 현실을 이렇게 썼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불결과 빈곤으로 자기 생애를 보내야 하는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많은 사람들의 피부는 어김없이 때로 덮여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몇달씩 씻지 않아서 이 따위의 해충이 득실댔다. 우리가 보는 앞에서 해충을 잡아죽이는 짓을 주저하지 않았다. 살림도구는 서툴게 빚어졌다. 진흙으로 빚어졌는데 상상할수 없이 조잡한 종류였다. 이것이 1832년선교사님이 우리나라 서해 몽금포에 와서 북경에 자기네 선교본부에 보고한 조선말의 상황입니다.
그 다음에 30년 뒤에 1874년에 달레 신부라는 분이 왔습니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입니다. 이 분이 한국에 와서 한국을 보고나서 ‘코리아의 교회 역사’를 썼다. 거기에 1874년의 조선의 상황을 제가 또 읽어드리겠다. 창고에 저장은 장부상에만 있다. 지방 병기고에는 쓸만한 탄약도 무기도 없다. 관리들이 다 팔아먹고 누더기 몇 조각과 고철 나부랭이를 대신 갖다 놨다.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마음에만 드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강탈한다. 백성은 하도 곤궁하여 서해안 사람은 밀수업자에게 어린 딸을 쌀 한 말에 팔고 있다. 길 마다 송장이 널려 있다. 이것이 1874년 달래신부가 본 한국의 현상입니다.
그 다음에 1890년대에 또 한 분이 왔어요. 이 분이 비솝여사라고 영국 분인데 이 사람은 책으로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비솝 여사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래서 한국을 다 샅샅이 들여다 봤어요. 이 사람은 부산에서부터 저 신의주, 강개, 넘어가서 블라디보스톡까지 갔던 분이에요. 그래서 책을 한 권 냈는데 이 사람이 부산에 와 보니까 한국이라면서 나라가 어찌나 더러운지, 그 하수도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그런 나라고 자기가 놀란 것은 그 당시 일본인들이 거처하는 동래라고 있습니다. 부산 동래가 옛날에는 일본인들이 거기에 거처했었습니다. 동래를 가보니까 동래현에는 그렇게 깨끗하더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야, 일본은 이렇게 일본인이 사는 지역은 이렇게 깨끗한데 어떻게 한국사람들이 사는 이 부산진에는 이렇게 더러우냐하고. 놀라서 썼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서울에 와서 서울구경을 또 했습니다. 서울도 얼마나 더러운지, 냄새가 풀풀 나서 다닐 수가 없는 정도로 서울이 그 당시 더러웠습니다. 그게 언제냐. 지금부터 100년 전 일입니다. 100년 전 한국이 그런 나라였습니다.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서 영월까지 갔어요. 영월까지 배를 타고 갔는데 그 당시 서양여자라는 건 보기가 힘들었잖아요. 중간중간 내려서 잠을 자는데 얼마나 사람들이 서양 여자귀신이 왔다 이래서 구경을 하려고 밤에 잠을 자려고 누워 있으면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빈대, 이같은 것 때문에 잘 수 없는 건 둘째 치고 동네 사람들이 문을 전부 다 구멍을 뚫어서 문을 보느라고, 다 보느라고 눈이 그러니까 창호지에 눈이 몇 십 개가 이렇게 있는 거죠. 사람이 하도 밀려가지고 그 문이 이렇게 완전히 방 안으로 쓰러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한국여행을 했는데 양평을 갔습니다. 옛날에 군수가 있고 그랬는데. 거기 가서 아까 읽어드린 것처럼 그 군 사정을 알아봤는데 그 조그만 군에 이방 이런 것 있잖아요. 네 죄를 네가 알렸다, 이렇게 볼기치는. 이런 이방이 800명이나 있다는 거야. 이 조그만 군에 이방이 800명씩이나 되면 그 사람을 누가 다 먹여살립니까? 다 백성들이 먹여살리는 거야. 그 백성들이 집에 뭘 가지고 있는지 이방들은 다 안대요. 이 사람 부엌에 숟가락이 몇 개, 장 담그는 독이 몇 개. 아주 낱낱이 잘 알고 있대, 이방들이. 그리고 이방들이 그 집에 조금 뭐가 생기잖아요. 농사 열심히 지어서 뭐가 좀 생기면 그 이방이 부른다는 거야. 불러서 그냥 무조건 곤장을 치는 거예요. 곤장을 쳐, 왜 치느냐. 자기는 모르겠다는 거야, 왜 치는지. 그런데 이방이 하는 얘기가 네 죄는 네가 알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네 죄는 네가 알렸단 말이야. 어떻게 이방이 아느냐, 네 죄는 네가 아니까 고백을 해라, 그래서 곤장을 쳤습니다. 그러니까 집에 쌀이라도 한두 말 있으면 다 뺏긴다는 거야. 그러나 조선사람들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 거야. 왜? 일을 하면 다 뺏기니까. 그러니까 게을러 지는 거야. 암만 노력해봐야 나에게 남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게을러 지는 거야. 세월은 가라, 이렇게 되어 있는 거야. 이 사람이 한강을 따라 가보고 평양을 지나서 대동강을 따라 올라가보고 조선 상황은 똑같았습니다.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그 당시 연해주, 지금 소련있는 데죠. 블라디보스톡 갔는데 당시 거기에도 한국에서 이민간 사람들이 북간도, 연해주에 그 때 이민을 많이 갔거든요. 거기를 둘러봤어요. 조선사람들이 여기서는 어떻게 사냐. 그랬더니 연해주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 가보니까 깜짝 놀란거야. 조선에서는 그렇게 더럽고 그렇게 게으르고 그렇게 아주 그냥 하루 삼류민족, 원시인 같은 삶을 사는 조선민족이 연해주에 사는 조선민족은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 집을 반듯하게 짓고 거기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러시아 사람보다 훨씬 더 잘 살고 훨씬 더 깨끗하게 산다 이거예요. 이야, 조선민족이 이런 민족이냐. 참 놀랐다. 그러면 왜 연해주에 있는 조선인은 이렇고 조선에 있는 조선인은 그러느냐. 그게 뭐냐. 나라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거야. 아까 말씀드렸듯이 나라가 백성이 뭐만 생기면 볼기를 쳐서 뺏으니까 일을 안 하는 거야. 그런데 그런 나라를 떠나서 자기들끼리 모여사니까 그렇게 잘 사는 거야. 그래서 조선민족을 자기는 다시 봤다, 이런 얘기를 한 걸 제가 책을 읽었습니다.
이것이 사실은 한국, 우리의 전신 조선의 말의 한국의 상황이었습니다. 조금 더 그 시절을 하면 1904년 고종이 그때 있었습니다. 민비도 그때, 민비는 죽었죠. 1895년에 을미사변인가요. 그걸 뭐라고 하죠. 민비시해사건, 우리가 민비를 지금은 무슨 굉장히 많이 높이잖아요. 민비에 대해서. 명성황후 이래가지고 오페라 같은 것도 있고 그러는데 그런데 그 당시 왕은 그럼 어땠느냐. 왕도 똑같았어요.
그 당시에 윤치호라는 분이 일기를 쓴 게 있어요. 쭉. 그 사람은 스물 몇 살 때부터 죽을 때 까지 일기를 썼어요. 그게 우리 귀한 자료가 됐는데 그 사람은 전부 다 영어로 일기를 썼어, 그 당시에. 왜? 한국말로 쓰면 혹시 나중에 잘못되면 그것 가지고 누가 흉잡을까 봐 1890년대 영어로 전부 일기를 썼어요, 매일매일. 그런데 그 사람이 쓴 일기에 당시 고종과 민비에 대해서 한 얘기가 있어요. 얼마나 그 당시 왕궁에는 점쟁이, 무당, 내시, 이런 사람들만 버글버글 한 거예요. 1904년에 러일전쟁 일어나지 않습니까?
러일전쟁 일어나면 자기가 왕이면 이거 나라가 어떻게 될 거냐, 조선은 이제 러시아에게 먹히는 거냐, 일본에게 먹히는 거냐 조선이 정신을 차려야겠다, 어디로 가야 되느냐 하고 자기가 생각을 하고 당시 기독교인은 아니었으니까 기도는 안 하더라도 지도자로서, 왕으로서 자기가 진짜 뭘 해야 하는데 그 당시 얘기를 들어 보면 제물포에서 전투가 벌어지고 포탄이 날아다니는데 황제는 점쟁이 말을 듣고 궁궐 기둥 밑에 큰 솥을 묻는 짓을 하느라 바쁘다. 이걸 이 사람이 일기에 쓴 거예요. 우리 고종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무능하고 그렇게 나약하고 그렇게 타락한 사람이었다, 이거예요. 민비라는 사람 똑같아요. 그 다음에 민비가 죽기 전에 이 사람 민비에 대해서 평을 하는데 영리하고 이기적인 이 여인은 미신을 섬기는 것의 반만큼 백성을 섬겼더라면 그녀의 왕실은 안전했을 것이다. 민비라는 사람도 백성을 섬기는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요. 관심이 없고 전부 다 미신 섬기는 것. 지금 덕수궁 자리, 그리고 경기여고 자리가 경운궁이었거든요. 러시아에서 아관파천을 하고 경운궁으로 옮겼어요, 고종이. 1907년 이때 쯤에. 그런데 그 옮길 때 그 즈음 1900년대의 덕수궁과 경운궁, 지금 시청 부근이죠. 시청 부근에는 그렇게 점쟁이와 무당이 들끓었대요. 왕이 점쟁이와 무당을 좋아하니까 점쟁이하고 무당만 있는 거야. 백성들은 그 사람들 먹여살리느라고 세금 내야 되고. 이 사람들은 나라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었어요. 나라에 대한 걱정이 없는 대신 뭐냐 있었느냐. 왕과 왕비, 세자만 안전하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상관없다. 이것이 민비의 자세였다, 이거예요.
제가 책을 읽어보니까 그 당시 민비라는 사람 죽고 나서 또 고종이라는 또 엄비인가 그 사람들이 대신을 했는데 얼마나 나라에 대해서 무책임하느냐 하면 일본한테 나라를 팔아 먹어도 좋다. 일본이 우리를 합병해도 좋다. 단, 우리 왕실, 그러니까 이 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게 조건이었어요. 1910년 한일합방할 때의 가장 큰 조건, 이완용이 그 조건을 들고 일본하고 협상을 했어요. 그러니까 이거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이 나라가 없어 지는 거예요.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어 지면 조선의 국왕이라는 것, 조선의 대신이라는 것 다 없어 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거야. 그리고 일본에게 나라, 조선을 너희들한테 바칠텐데 이 씨 왕조만 살려달라, 이 씨 왕실만 살려달라. 그러면 나라를 다 너희들한테 갖다 바치겠다. 그래서 갖다 바친거예요, 사실.
그렇게 우리가 무능하고 그런 나라에서 100년 전, 이게 오래된 얘기가 아니에요.100년 전에 그런 나라였어요. 이런 나라에 들어 온 게 뭐였느냐. 선교사를 통해서 우리 기독교가 들어 온 거야. 그 때 기독교가 들어 왔어요, 선교사를 통해서. 이승만 박사 전기 같은 것을 읽어보면 그런 게 잘 나타나 있어요.
이승만 박사가 처음에는 이 사람은 그 당시 과거를 보려고 했어요. 과거를 보려다가 과거를 안 봤어요, 못 봤어. 과거를 안 보고 어렸을 때 눈병이 났는데 이 사람이 눈이 멀게 돼서 아무 것도 안 보여. 그래서 이승만 박사 그 어머니가 깜짝 놀랐어요. 이거 큰일났구나. 네가 외아들인데 네가 이렇게 눈이 벌면 봉사가 되겠구나. 그래서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해보고 해도 안 낫는 거야. 그 이승만의 어머니가 큰일 난 거예요. 그런데 수소문을 해보니까 서양 선교사가 왔다는 거예요. 의사인데 그 양반, 그 분은 뭐든지 병을 잘 고친다더라. 그래서 이승만 데리고 서양 선교사에게 갔습니다. 의사에게. 그래서 서양선교사가 약을 발라주고 집에 가 있어 보라고. 그래서 가 봤어요. 며칠 지났어요. 어머니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이승만이 이만한 애가 문을 열고 어머니, 내 엄마가 보여요. 이렇게 얘기를 한 거예요. 네가 정말 내가 보이니? 네가 눈을 떴구나. 이승만 엄마가 그렇게 기뻐한 거야. 그래서 너무 너무 고마워서 이승만을 데리고 그 선교사에게 갔어요. 그냥 가지 않았잖아요.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나 이런 분들 다 이렇게 계란 한 줄 이렇게 가지고 갔어요. 이승만 어머니도 계란 한 줄을 가지고 선교사를 찾아갔습니다. 선교사에게 너무 너무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 눈을 이렇게 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하고 선교사에게 갖다주니까 선교사가 그거 계란은 당신 아들 먹이세요. 당신 아들이 눈이 먼 건 영양부족 때문에 그런 거예요. 계란은 당신 아들 갖다 먹이세요. 그렇게 해서 계란을 안 받았어요.
그때 이승만이 깜짝 놀란거예요. 이야, 서양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저 선교사라는 사람은 도대체 뭘 하는 사람이냐. 나는 과거를 봐서 썩어가는 나라를 고치려고 했는데 지금 과거볼 때가 아니구나. 이 선교사라는 건 뭐고 서양의 의술이라는 건 뭐냐. 완전히 머리가 180도달라졌어요. 그래서 과거를 다 때려치웠어요. 과거 공부도 때려치우고 이승만이 어디 들어 갔죠? 배제학당을 들어 갔어요. 배제학당 들어 가서 신학문을 공부했어요. 그러면서 무슨 독립협회니 이런 가입을 했잖아요. 그런데 23살 때 감옥에 들어 갔어요. 왜 들어 갔냐. 고종에 대한 반역죄, 이런 걸로 들어 갔는데 그래 가지고 1907년에 6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거예요. 그때 조선 은 러일전쟁 일어났지 이미 조선은 일본에 먹히게 될 상황이에요. 그래서 이 사람이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썼어요. 감옥에서 29살 때. 지금 읽어봐도 아주 뛰어난 책이야. 그러니까 이승만이라는 분은 굉장히 훌륭했던 분이었던 것 같아, 젊었을 때. 제가 지금 나이가 60이 넘었는데 제가 쓰라고 해도 그것보다 못쓰겠어요. 29살 때, 100년 전 이승만이 그걸 썼어요. 썼는데 거기에 결론이 뭐였냐. 결론이 있어요. 그 결론이. 독립정신, 마지막 부분 결론입니다. 그걸 읽어드리겠습니다.
세계 문명국 사람들이 기독교를 사회근본으로 삼고 있으며 그 결과로 일반 백성들까지도 높은 도덕수준에 이른 것이다. 우리나라가 쓰러진 데에서 일어나고 썩은 데에서 싹을 틔우고자 노력하는데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온 세계에 접할지 라도 그 목적을 못 이룰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하는 자가 되어 나라를 한 마음으로 받들어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에 이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건국 4237년 6월 23일. 이게 1904년에 쓴, 1904년에 이런 글을 쓴 거예요. 이 사람 결론이 뭐였느냐. 이승만이 20세 때의 결론이 이 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되어야 되겠다. 기독교 국가가 아니고서는 조선은 살아날 길이 없다. 이 사람이 결론을 내린 거예요. 결론을 그렇게 내렸어요. 이승만이 그런 식으로 결론을 내리고 난 뒤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1910년에 합방이 되어 버리지 않았습니까? 그래 가지고 일본이 차지하게 됐죠.
그런데 그때도 그러면 왜 그럼 우리나라를 보호해 주셨으면 일본한테 합방하지 않게 하시지,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이렇게 당하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라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그런데 저는 아까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우리한테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을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너희들은 고난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고난을 주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고난 속에서 우리가 36년을 지나고 난 다음에야 마치 광야의 40년 생활을 하고서 우리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 갈 수 있듯이 36년의 고난을 거치고 난 다음에 대한민국에게 독립을 허용하신 거예요. 그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라, 이거예요. 우리가 지금 와서 과거 일제가 우리한테 그게 뭐냐, 우리가 참 못난 민족이다, 이럴 필요가 전 없다고 봐. 그게 다 하나님의 뜻으로 우리 핏속에서 하나의 고난이 영글어져서 지금 이것의 뿌리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후회할 필요도 없고 애석하게, 지금 애석하긴 애석하지만 그것 때문에 상심될 필요는 없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기독교가 들어 왔지만 기독교가 들어 온 반면, 그 500년 동안 내려왔던 조선의 못된 관습, 게으름, 이런 것은 일제 시대 때도 같이 기독교인들은 부지런하고 열심히 일하고 이런 걸 하나의 모토로 삼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없을것 같은데. 저는 어렸을 때, 요즘에는 찬송가에 그런 게 없어요. 찬송가, 그 당시 1930~40년 찬송가에 일하러 가세. 지금 우리 찬송가에 있습니까? 일하러 가세~ ('일하러 가세' 노래) 기독교가 뭡니까? 기독교가 우리 조선 민족들한테 너희들 일해야 한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 근면해야 한다, 근면해야 한다. 그걸 깨우쳐 준거야. 스콜필드 박사라는 분이 선교사였는데, 일제 때. 이 사람이 이런 말을 했어요. 하나님은 조선 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 개를 주셨다고. 아마 양반들이 옛날 청나라 사람처럼 손톱을 안 깎은 모양이에요. 우리나라 양반들이. 하나님은 조선민족에게 나라와 긴 손톱을 두 개를 주시면서 너희들이 선택해라, 이렇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그런데 조선 민족은 애닳게도 나라를 선택하지 않고 긴손톱을 선택했다. 양반들이 얼마나 게으르고.. 민영익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민비의 친척되죠. 일제 말에 굉장히 높은 벼슬도 하고. 이 사람은 일을, 물론 그때 양반들은 아무도 일하는 사람 없었습니다. 양반들이 일하는 것은 수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러면 양반들은 뭐하느냐. 긴 담뱃대에다가 담배 피우고 그다음에 또 할 수 있는 건 뭡니까? 앉아가지고 독경, 독경이 아니고 감독같은 걸 합니다. 그것만 하느냐. 그러면 또 이렇게 게으른 조선민족의 상징은 아까 말씀드렸지만 게으른거야. 그런 게으른 것을 우리 기독교 정신이 들어 와서 그걸 깨자고 한 것이 우리 기독교입니다.
당시 일본에 유학을 많이 갔어요. 돈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돈 많은 사람들이 양반 자제겠죠. 일본 유학가서도 일을 하느냐. 일을 안 해. 조선 민족의 그 못된 관습 때문에. 일을 안 해. 일을 안 하고 뭐하느냐. 지금 제가 또 하나 읽어드리겠습니다. 조선 지식인이 어떤 거였나, 그 당시. 조선 유학생 90%가 사회학, 철학, 정치학에 코를 묻고 있는데 그들의 게으른 혀를 굴리는 데에는 사회주의가 이상적일 것이다. 이거 윤치호 일기에 나온 거예요. 그 당시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일본 가서 유학했을 때 공학을 한다거나 의학을 한다거나 진짜로 우리가 이 나라가 비탄에 빠진 이 나라를 구하려면 그런 게 필요한 것 아닙니까? 과학을 한다거나. 그런 것 아무 것도 안 하는 거야. 사회학, 철학, 정치학 그거 뭐냐. 다 혓바닥 놀려서 게으르게 먹고 살려고 한다 그거야. 그게 우리 조선사람들 엘리트들의 생각이었어요.
윤보선이라는 대통령 아시죠. 그 사람이 영국의 에든버러 대학을 나왔습니다. 문학을 했어요. 그 사람은 집이 백 칸이 넘는, 백칸짜리 집이에요. 안국동에. 그런데 이 사람이 부자니까 영국가서 뭘 했느냐. 문학을 했어. 문학을 했는데 그 때 문학을 하면서 집에 다가 학비를 보내시오. 내가 문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학비를 보내라고 했는데 800파운드, 그 당시 아마 한 학기에 생활비하고 800파운드였던 모양이야. 아마 쌀이 100가마 이상 되겠죠. 그걸 이제 보내라고 한 거야. 그걸 보고 통탄을 하였네 윤치호가. 아니, 그 비싼 돈을 들여서 그것도 영국 에든버러에 가서 문학을 하다니, 지금 우리나라가 당장 필요한 거는 나라를 부강시키고 어떻게 해서든지 국권을 회복하고 이렇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문학을 네가 선택하냐, 꾸짖는 편지를 쓴 게 있어요. 우리나라 그 때 지식인들이 라는 게 다 똑같았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어떻게 또 버전업을 시켰느냐 하면, 이 윤치호라는 사람은. 조선유학생들이 일하기가 싫다, 이거야. 그리고 앉아서 순 말로만 하는 것 좋아한다 이거야. 게으르고 자립심이 부족하고 남한테 신세지고 이게 아주 우리 민족의 DNA로 남아 있었던 거야. 그러니까 윤치호라는 사람은 뭐라고 했느냐 하면 조선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딱 맞는 거다, 체질상. 왜 그러냐. 공산주의가 사람들로 하여금 열심히 일하기 보다는 남의 노고에 얹혀살기를 조장한다. 이것이 유교를 가진 조선과 공통점이다. 그렇죠? 공산주의도 자기가 일하는 겁니까? 자기 일 안 하려고 하잖아. 정부가 세금 내라고 해서 세금 거둬가지고 나는 어떻게 해서 든지 놀자고 하는 게 공산주의 아니에요? 사람이 자기가 열심히 일해서 자기 노력과 자기 땀으로 일해야 되는데 야 돈 번 사람들은 다 우리 것을 착취했다, 그러니까 저 사람 것 뺏어서 우리가 먹자. 그게 아주 심플하게 얘기하면 그거 아니겠어요? 조선의 과거 조상들의 그 피에는 오히려 공산주의가 맞는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조금만 먹고 살만한 사람들에게 달라 붙는 친인척들, 조선은 옛날부터 공산주의를 해왔다. 조선버전의 볼셰비즘, 이거 공산주의죠. 공산주의는 강도짓을 무산자의 영광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우리나라 그 이조 말기에 우리 민족들의 피에는 공짜로 놀고 먹는 게 아주 그냥 몸에 박혀 있었대요. 하여튼 이런 나라였어요. 게으르고 일하기 싫어하고 그런데 그런 나라에 선교사님들이 와가지고 변화를 시킨 거야. 제가 국립민속관인가요? 경복궁에 있는 거. 거기에서 재작년에 무슨 사진전이 있었어요.
사진전을 가봤는데 사진전이 뭐냐 하면 북간도에 명동이라는 데가 있었어요. 거기에 한 일백 몇 명이 처음 가서 정착을 했는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정치학을 해서 자기들이 일궈 나갔느냐 하는 것을 그 후손이 사진을 전부 다 발견을 했어. 그래서 사진전을 연거야. 거기에 가보니까 그 당시 북간도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깨끗하고 열심히 살았는지 진짜 감명스럽더라고요. 이렇게 게으른 나라의 피를 타고 났는데 선교사님들, 거기에 목사님이 있었는데 김약연? 목사라는 분이 가족을 한 120명을 5가구를 끌고 가서 거기에서 교회를 만들었어요. 명동교회를 만들고 명동학교를 만들고 명동유년주일학교를 만들고 명신여학교를 만들고. 사진전을 했는데 이렇게 아까 이가 득실거리고 냄새가 나는 조선이었는데 얼마나 깨끗한지 몰라요. 애들이 중고등학생들에게 전부 다 여학생들에게는 세라복을 입히고 실험실에는 전부 다 가운을 을 입혀서 비커 이런 실험 기구들이 다 차 있고, 애들을 악대를 만들어 가지고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가지고 제복을 입혀서 교회를 지었는데 교회가 500명이 다니는 교회를 만들었어요. 그렇게 거기에서 잘 살았어요.
우리가 게으른 가운데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우리가 하나님 뜻에 맞게 살기로 작정한 다음에 이렇게 달라지는 거예요. 그래서 참 하나님이 우리한테 얼마나 많은 것을 조선 민족들에게 보여줬나 하는 걸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일제 시대가 지났어요. 그래서 우리한테 독립을 주셨어. 독립을 주셨으면 잘 살게 만들어야 할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36년을, 40년을 우리가 광야에서 방황을 했는데 잘 살아야 되는데 또 하나님은 시련을 주신 거야. 분단이야, 분단. 남북 분단을 만들게 해 주셨어. 그것도 지금 와서 보면 저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봐요. 그당시 아까 얘기했죠. 조선 지식인들이라는 건 다 거의 공산주의 사상에 가깝게 있었어요. 만일 그때 통일한국을 주셨으면 한국은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때. 자동적으로 공산주의가 되는 거예요. 그 당시 남한에 얼마나 많은 공산주의, 그러니까 조선노동당이 있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나중에 다 여순반란 사건 같은 것 일으켰는데 그 당시 우리 체질로 봤을 때 한국한테 온전한 독립을 주셨으면 우리는 공산화 될 수 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 위에는 다 소련이고 그 옆에는 중공이고, 그러면 우리가 거기에서 견뎌낼 수가 없어요. 그런데 우리를 분단시켰어요. 분단시킨 이유가 뭐냐. 그때는 안타깝고 이게 뭐냐, 도대체. 우리는 독립을 얻었는데 독립도 못하지 않았느냐. 그렇지 않다 이거예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너희들은 내가 불쌍해서 독립을 시켜줬지만 앞으로도 너희들은 더 고난의 길을 갈 수 밖에 없어. 아직도 너희의 그 게으름, 죄 깨끗하게 안 된 거야. 분단을 시킨거예요. 분단을 시킨 것이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우리한테 분단이 됐기 때문에 한국이 이렇게, 이 정도 살게 된 거예요. 만일 그때 공산주의가 됐으면 우리가 지금 어떻게 됐겠습니까? 지금 월남, 중국, 중국은 지금 몇 년 사이에 잘 살아졌지만. 지금 북한, 그게 우리 현실이에요. 남한이 그 당시 통일됐다면 지금 북한이 되어 있는 거야.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놔둬 주신 게 아니야. 하나님은 너희들은 안 되겠다. 다시 고난을 더 가져라, 그래서 분단을 시켰어요.
그것 뿐입니까? 6·25까지 만들어 주셨어요. 이 6·25까지 주신 거야. 우리 생각에는 이야, 하나님 참 너무 하다, 이럴 수가 있냐. 어떻게 6·25를 우리에게 주셨습니까? 6·25가 저는 이렇게 얘기하면 지가 죽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6·25를 또 저렇게 미화한다는. 6·25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단련이 된 거예요, 6·25가 있었기 때문에. 미국은 그 당시 한국을 떠나려고 했어요. 1949년에 애치슨 라인이라는 걸 만들어서 미국은 방호책임을 한국에서 제외한다. 일본하고 대만까지만 미국이 방호책임을 진다. 그리고 1949년에 여기 남한에 있던 미군들은 다 철수 했어요. 철수하고 나니까 1950년 북쪽에서 쳐들어 온 거예요. 소련과 중국의 지원을 받아가지고. 그러면 그때 6·25 전쟁이라는 건 6·25전쟁이 그렇게 났으면 우리는 소련이나 중공 밑에서 그 후원을 받은 북한에 우리 다 지금 다 흡수되고 말았을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이 안 되겠다, 너희들 붙잡아야겠다. 너희들 어떻게 붙잡느냐. 미국을 못 가게 만들어 주겠다. 하나님이 미국을 우리 딱 붙잡아 주셨어요. 미국이 6·25 사변이 끝나면서 우리하고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상호안보조약을 맺었어. 그건 뭐냐. 우리나라가 침략을 당하면 미국이 침략을 당한 것처럼 도와주고 미국이 침략을 당하면 우리가 침략 당한 것처럼 또 미국을 도와준다. 우리가 무슨 미국을 도와줄 힘이 있습니까? 괜히 미국에 조약을 맺기 위해서 그러는 거지. 그 안보조약을 맺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까지 그 조약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지금 우리나라가 살고 있는 거예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지금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한국에 미군이 없는 한국을 한 번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반미, 제가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야. 미군이 없는 한국은 금방, 옛날에는 소련 밑에 가 있는 거고 지금은 중국 밑에 가 있는 거예요. 중국의 속국이 될 수 밖에 없어. 이미 북한은 중국의 속국이 거의 되어 있지 않습니까? 6·25를 왜 주셨느냐.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하나님이 또, 돌아보면 미국을 붙잡기 위해서 주신 거야.
그다음에 경제발전 했습니다. 경제발전 했는데 경제발전 누가 시켰습니까? 우리 힘으로 했습니까? 물론 우리가 새마을 운동도 하고 박정희 대통령이 뭐하고 다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했습니다. 진짜 하루에 3교대씩 밤을 새워가면서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해서 상품을 만드는 게 다 어디갔습니까? 그 당시 신발, 앨범, 흑백TV 이런 것 다 우리가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것 다 어디서 사줬죠? 미국에서 사준 거야. 우리 경제개발의 가장 뿌리는 뭐냐, 미국에서 사줬기 때문에. 우리 경제개발도 사실 미국의 덕이 굉장히 컸습니다.
저는 이런 얘기는 우리가 친미를 하자는 게 아니야. 나라를 지키려면 힘이 있어야 되고 힘이 있으려면 경제도 부강해야 되고 이런 게 골고루 다 있어야 돼. 그런데 그거 있는데에 하나님의 뜻이 지금 돌아보니까 다 이해가 될 만 하더라 하는 걸 말씀드리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그때 1960년대에서부터 70년부터 우리는 공업화를 했잖아요. 그런데 공업화를 했던 가장 큰 힘이 뭡니까? 일본의 기술력이야.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기술을 다하고 일본이 우리보다 앞장섰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일본만 따라 가면 되는 거야. 박정희나 삼성이나 다 일본 따라서, 현대자동차 다 일본 따라서 우리가 이만큼 컸습니다.
일본이 우리는 지금 우습게 보지만 우리 일본 사람들 특히 우습게 보죠. 쪽빠리들 이렇게 생각했지만 일본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경제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거야. 또 하나, 중국. 그냥 지금은 중국이 달라졌지만 우리가 막 경제발전을 할 때 중국은 뭐했습니까? 중국은 문화혁명을 했어요. 모택동 밑에서. 문화혁명이라는 게 뭡니까? 그 공산주의 젊은 애들이 다 내쫓는 것 아닙니까? 윗 사람들 다 내쫓고 다 폭력으로 정권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한 20년을 중국이 문화혁명으로 경제고 뭐고 다 내팽개쳤어요. 우리가 그 사이에, 20년 사이에 우리는 올라섰어요. 어느 단계까지 올라섰어요. 그러니까 깜짝 놀라고 중국이 1980년부터 지금 등소평이 와서 이런 개혁개방이다 해가 지고 지금 세계의 G2나라가 된 것 아닙니까?
그러면 안보가 필요할 때 하나님은 미국을 우리한테 주셨고 경제가 필요할 때는 일본과 중국 사이에 우리나라를 있게 해 주시고 이런 게 그냥 보통 생각하면 다 역사가 그런 거야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만 저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면 이게 당연하게 그렇게 온 우리의 역사라 이거예요. 지금 제가 걱정되는 거는 이제 중국이 옛날 중국이 아니잖아요. G2가 됐어요. G2가 뭡니까? 세계에서 두 번째 강대국이야. 우리는 평생 미국이 제일 큰 나라고 제일 잘 사는 나라인줄 알았는데 앞으로 2015년, 많이 남지 않았어요. 4년 뒤에는 중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강대국이 된다. 아니, 강대국보다 제일 생산을 많이 하는 경제제1의 국가가 된다 이거예요. 물론 인구가 많으니까 개별 소득을 따지면 미국이 앞서지만 전체 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이 1위예요. 그러면 지금 까지는 미국이 1위였지만 앞으로는 중국이 1위 나라가 되는 겁니다. 그게 2015년이에요. 그러면 2015년 이후에 한국은 어떻게 될 것이냐. 이게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우리는 미국이 계속 있으니까 잘 봐주겠지, 이렇게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중국이 어떻게 방향을 바꾸느냐에 따라서 우리나라에 아주 막대한 영향 준다 이거예요. 이것도 우리가 잘 해결을 앞으로 해나가야 할 일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중국이 G2로 올라선 것까지는 좋은데 거기에 나는 또 하나님이 뜻이 저는 있다고 봐요. 그건 뭐냐. 과거에는 세상의 축이 어디였느냐 하면 대서양이었어요. 미국과 구라파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일본, 중국, 한국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이 되어 가는 거예요. 중국이 1위 국가가 되지, 일본이 3위나 4위 국가지. 한국이 7~8위 국가지. 그러면 이 동북아가 세계의 중심권이 된다 이거예요. 그러면 이거는 또 뭐냐. 거기에 또 우리 한국이 앞으로 미래를 어떻게 가야 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지정학적인 뭐가 있는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시간이 없는데, 지금 이렇게 역사를 제가 훑어보면서 중국을 우리가 한편으로는 우리 물건을 수출해야 하니까 중국이 우리하고 친해져야 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국은 아직 공산주의를 채택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또 북한하고 가깝잖아요. 그러니까 중국의 영향에 따라서 우리는 통일이 되고 통일이 안 되고 그럴 가능성도 굉장히 많아졌어요. 그러니까 중국이 굉장히 중요한 나라로 우리한테 됐어요. 그러니까 중국을 하나님께서 터치하셔야 된다. 중국을 어떻게 터치할 거냐. 그것은 우리가 아직 모르겠어요. 중국에 지금 1억명이 기독교 신자가 있다고 그래요. 그래서 나라에서 인정하는 기독교 말고 그건 교회를 세우게는 하거든요. 그건 나라가 다 감시하는 거고 처소교회까지 합쳐서 1억명이라고 하는데 중국이 앞으로 하나님의 터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공산주의라는 것이 우리가 무슨 협상을 통해서 이렇게 망하는 건 아니에요. 그렇게 안 망해. 하나님이 터치가 되어야 해.
그건 뭐냐 하면 동구에서도 다 그런 일이 일어났어요. 폴란드가 제일 먼저 변했는데 폴란드를 제일 먼저 변하게 한 건 누구입니까? 그 당시 바오로 2세입니다. 바오로2세가 거기에 가서 설교를 하고 했기 때문에 그때 터치가 되어서 폴란드가 변하기 시작했어요. 소련이 왜 붕괴를 했습니까? 소련이 그냥 붕괴한 게 아니에요. 레이건 회고록에 보면 레이건이 분명하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레이건은 소련을 무슨 핵무기 개발 경쟁을 서로 덜해서 소련을 개방하고 이래서는 소련이 변하지 않는다 이거예요. 하나님이 터치를 해야 한다. 레이건이 아주 믿음이 좋았던 사람인 것 같아요. 겉으로는 무슨 영화배우라고 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경시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 한다. 그 하나님의 터치를 어떻게 만들거냐. 고르바초프를 개종을 시켜야겠다. 고르바초프가 교회 나오도록, 하나님 믿도록 만들어야겠다. 그래 가지고 정상회담을 하는데 1985년 한 4차례를 만났는데 그때 비밀이죠. 두 사람만 있을 때 레이건이 고르바초프한테 전도를 했어요. 너, 하나님 믿어야 한다. 너 나보고 헤어질 때는 God bless you 그러더라 이거야, 고르바초프가. 너 God bless you라고 얘기하지 않았냐. 너 하나님 믿어라, 하나님이 계시다. 내 아들이 있는데 내 아들은 지금 하나님 안 믿는다. 나는 내 아들이 꼭 하나님 믿기를 바란다. 그러나 걔한테 얘기하고 싶은 게 있다. 뭐냐, 좋은 식당에 데려가서 우리 아들한테 좋은 음식을 먹이겠다. 그러면 잘 먹을 것 아니에요? 그리고 나서 아들한테 묻겠다. 얘야, 이 음식이 어디에서 만들어 졌는데 네 앞에 와 있니. 그러면 아들이 글쎄요, 그거 주방에서 만드는 것 아니에요. 그렇게 얘기할 것 아니냐. 그러면 너는 누가 만들었냐. 너 여기 와 있는데 누가 만들었냐. 하나님이 만든 거예요, 하나님. 고르바초프 당신이 하나님을 믿으세요. 직접 정상회담을 하면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전도를 했어요.
카터 대통령이 1978년에 한국에 와서 박정희 대통령한테 하나님 믿으라고 전도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하여튼 공산주의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가 뭐 협상을 통해서 공산주의가 무너지고 남북통일이 되고 이런 것 없어요. 그런 것 일어날 수가 없어. 지금 남북을 분단시킨 이유가 다 있어. 왜냐, 하나님은 통일을 통해서 하나님이 역사한다는 걸 우리 민족한테 다시 한 번 보여주려고 한다이거야. 분명히 보여주실 거예요. 그것은 우리가 뭐 남북회담해서 개방정책을 써가지고 그렇게 안 돼. 분명히 10년 내에 그런 하나님의 터치가 온다 이거예요. 그때 한국민족이 아, 이게 뜻이 있구나 하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제가 왜 이 기회의 나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우리나라 기도를 하느냐 하면 우리나라가 보통 나라가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한테 매 순간 매 순간 기회를 주셨어요. 지금은 어떤 기회를 주셨습니까? 모든 나라가 한국으로 다 오려고 해요, 아시아에서. 우리도 아시아 전도대회에 나가지 않습니까? 아시아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모든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합니다. 한국의 예술, 체육, 문화, IT 기술 그거 다 배우려고 해, 다 오려고 해. 그 사람들 생각에 한국은 기회의 나라라는 거예요. 옛날에 우리가 미국을 보고서 미국은 기회의 나라라고 했어요. 그런데 미국이 그 기회의 나라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터치가 있는 그런 축복받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에 지금 까지 복을 받아서 제일의 국가가 되었지만 지금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 왜 쇠퇴하는 겁니까? 미국은 왜 쇠퇴합니까? 사이클이 있는 거예요, 사이클.
그 사이클은 우리 인간 잘못으로 있는 거야. 가난하고 어렵고 이럴 때는 열심히 노력해. 절약해. 그러면 가난한 고난 있다가 절약하고 열심히 하다가 그러면 돈이 생겨, 부유해져, 번성해. 그러면 그 다음에 뭐가 생깁니까? 그 다음에 퇴폐, 퇴폐로 가는 거야. 그건 인간사가 똑같은 거야. 모든 세계역사는 똑같은 거예요. 번성하고 잘 살게 되면 그 다음 사이클이 뭐냐. 그 다음에는 자기가 나태해지고 게을러지고 부패해지고 이기주의가 번성하고 이렇게 되는 거야. 그 다음 단계는 뭡니까? 몰락이야. 그다음에 몰락이 되는 거야. 이 사이클이야. 하나님은 우리 한테도 이런 사이클을 주실지 몰라요. 우리가 정신을 차려야지, 이 사이클을 막을 수 있는 거야. 이 사이클을 막는 것은 하나님 뜻을 따라서 우리가 살아야 된다, 이거지. 기회의 나라를 달라는 건 뭐냐. 만들어 달라는 건. 미국 선조들이 처음 미국에 올라갔을 때 청교도들이 원하는 건 뭐냐 미국이라는 나라를 저 언덕 위에 빛나는 집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환한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교도들이 기도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미국이 점점점점 쇠퇴해서 G2의 국가가 됐어요. 앞으로 G3가 될지도 몰라. 미국 기독기독교가 점점점, 유럽은 이미 끝났어요. 이제 그다음에 미국 차례야. 미국도 끝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몰라. 그러면 그다음에 하나님이 누구를 써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이 쓸 사람이 있어야 돼. 하나님이 쓸 사람은 전 대한민국이라고 생각해요. 왜? 이건 제가 괜히 우리가 우리 민족이 잘났고 뭐 이런 걸 부추기려고 하는 게 아니야.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어요.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선교사가 왔어요. 임진왜란 때 일본 소서행장?을 따라서 선교사가 이미 조선에 왔어요, 일본에 있던 선교사가.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200년, 300년 앞서서 선교사가 왔는데 일본은 하나님의 나라가 안 됐어. 중국도 우리보다 훨씬 먼저 선교사가 왔어요. 그런데 중국도 하나님 나라가 안 됐어. 한국이 유일하게 그래도 지금 천 만 교인이라고 하는데 천 만 교인을 지금 가지고 있는 거야. 참된 신자는 얼마인지 모르지만 그래도 하나님 나라로 지금 되어 있는 거예요.
아까 동북아 시대가 열렸다, 여기가 중심이다 할 때 하나님은 아, 한국을 써야 되겠구나. 한국을 다음 세계의 중심국가, 세계의 새 예루살렘으로 만들어야 되겠다 하는 뜻이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걸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아야 된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이 그런데 우리가 다음 주에 우리 오대원 목사님이 와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해야 하는데 나라를 위한 기도 뭘 해야겠습니까? 나라를 위한 기도. 시간이 없어서 제가 간략하게 하고 그만하겠습니다. 아까 사이클이 있다고 했죠.
흥망성쇠, 번영, 퇴락, 부패 이거 다 이어 진다고 했죠. 우리가 이 사이클을 끊어야 돼. 이 사이클을 끊을 힘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성령님 밖에 없어. 그 사이클을 끊어야 돼, 우리 스스로가. 그래서 이 나라를 다시 성령님으로 도덕의 나라, 개혁의 나라로 다시 정신적으로 우리가 다시 바꿔야 된다, 이거야. 그게 우리의 첫째 기도가 되어야 해.
요즈음 왜 자살이 많습니까? 왜 꺼떡만 하면 대통령부터 다 죽습니까? 장관 지낸 사람들. 나라가 벌써 부패해 진거예요. 정신이 썩어진 거야, 벌써. 이러면 이 나라는 고꾸라 지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정신, 이 나라의 정신을 살려주십시오. 이 나라에 성령이 임해서 정신의 부흥이 되게 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를 해야 된다는 게 제일 첫째입니다. 둘째는 뭐냐. 우리가 개혁, 지금 정신개혁에 따라 오는 건 뭐냐. 지금 이 시국, 이 나라가 너무 분열이 되어 있어요. 너무 분열이 되어 있어.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그것은 잘 살게 된 데에도 큰 원인이 있어요. 그것은 또 있는 사람들의 그 원인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분열이 된 이 나라가 다시 통합이 되어야 해요. 지금 갈등에 쌓여있는 이 나라가 다시 화합을 해야 돼요. 그게 우리나라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것 없으면 이 나라는 이제 쓰러질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분열, 분열의 영 이런 것이 이 나라에서 떠나가게 해 주십시오. 두 번째 기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기도가 있습니다. 세 번째 기도는 북한에 대한 기도입니다. 아까 북한이 하나님의 터치가 있어야지, 북한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제 통일원 사람들을 몇 사람 만나봤는데 이 사람들 예측은 2020년까지 북한에 분명히 변화가 일어나서 자기들 보기에는 통일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2020년까지 우리 통일이 온다 이거예요. 그건 하나님 터치가 있을 때 통일이 오는 거예요. 그때까지 우리가 열심히 기도해야 돼요. 기도하고 지금 못 먹고 있는 북한 애들을 위해서 우리가 또 도와줄 것 있으면 도와줘야 돼요. 지난 번에 목사님도 그런 말씀하셨죠. 왜? 애들은 못먹이면 뇌가 상해요. 3~4살까지 뇌가 100% 발달을 하는데 그때 영양부족이 되면 평생을 애들이 IQ가 낮은 저능아가 되는 거예요. 북한애들이 다 저능아가 되면 나중에 통일되면 우리가 어떻게 다 먹여살리겠습니까? 우리가 북한을 도와줄 것은 식량이나 의약품이나 영양가 있는 것 이건 도와줘야 돼요. 도와주면서 북한이 하나님의 터치가 있기를 기도해야 된다. 세 번째는 북한에 대해서 기도.
네 번째, 중국의 민주화, 중국의 자유화를 위해서 우리가 기도해야 해요. 그 필요는 아까 말씀드렸죠. 중국이 우리한테 굉장히 중요한 나라가 됐어요. 지금 식으로 가면 조선반도, 이 한반도가 어떻게 될지 몰라. 중국에 자유화, 민주화가 있고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져야 해. 중국의 기독교화가 이루어지면 우리나라 통일은 자연히 되고 중국의 민주화도 자연히 이루어지니 겁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 그걸 놓고 중국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 번째, 제일 중요한 거예요. 우리 좋은 지도자를 좀 주십시오, 좋은 지도자. 이거 중요한 시점인데 저는 미국의 파운딩 파더들, 조지워싱턴, 제퍼슨, 존 아담스, 해밀튼, 1976년 미국이 독립을 차지했을 때의 그 미국의 무수하게 좋은 지도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미국이 독립이 가능했던 거예요. 그 사람들은 그 당시 월급을 안 받으려고 했어. 나라일을 하는데 월급을 받다니, 그게 말이 되느냐. 안 받으려고 했던 사람들이에요. 미국의 파운딩 파더들은, 그런 사람들이야. 링컨은 너무나 잘 아니까 얘기할 필요가 없죠.
링컨은 무슨 일을 할 때 마다 다 기도하면서 했어. 링컨의 명연설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링컨은 공부를 못 한 사람이에요. 켄터키 옛집에서 책 이렇게 해서 그 사람 학교도 못 가봤어요. 그런데 어떻게 그 사람이 그렇게 명연설을 합니까?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세우겠다. 그런 명 연설을 어떻게 합니까? 이 사람은 자기가 중요한 연설이 있을 때는 요즈음 우리나라는 다 밑의 사람이 써오잖아요. 자기는 그거 안 해요. 안 하고 성경책 하나, 미국 헌법 하나 딱 두 개만 들고 자기가 혼자 멀리 백악관을 떠나서 혼자 갑니다. 가서 성경을 읽으면서 미국 헌법을 읽으면서 내가 이 백성들한테 미국 시민들한테 무슨 얘기를 해야 되겠나 일주일 동안 기도하면서 연설문을 썼어요. 그래서 링컨의 연설문이 그렇게 명연설문이 된 거예요. 우리 지도자들이 저는 그런 지도자가 좀 나와야 된다고 봐요. 지도자가 중요해요. 그런데 우리는 지금 지도자에 너무나 기근이 들렸어요. 우리가 좋은 지도자를 만나서 우리가 과거 미국 파운딩 파더 같은 그런 지도자들 우리한테 주십시오. 그런 정치지도자를 주셔서 이 나라를 좀 살리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해야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기도, 마지막으로 기도할 것은 우리 크리스찬들이에요. 한국이 천 만이라고 해요. 그런데 이 크리스찬이 지금 제 역할을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그걸 냉철하게 생각해 봐야 돼요. 며칠 전에 임요한이라고 연대 세브란스 병원 교수인데 선교사 아드님이신데 그분이 어느 신문에 기고를 했더라고요. 거기에 그런 얘기가 있어요. 만일 지금 한국 교회에 예수님이 며칠 목욕을 안 하고 또 허름한 넝마를 거치고 한국교회에 들어 설 때 한국교회에서 그거 받아줄 교회가 한국교회에 어디 있느냐, 있겠느냐 하고 기고를 했어요. 우리가 이거 그냥 넘길 일이 아니야. 우리 크리스찬들이 먼저 각성을 해야 돼요. 다른 사람 손가락질 할 것 없습니다. 우리가 먼저 각성해야 돼요. 영국이 그렇게 한때 해가지지 않는 나라가 된 건 뭡니까? 그리고 영국은 망했죠. 그 이유가 윌버 포스나 그리고 감리교 했던 누구죠? 그런 분 존 웨슬레, 요한 웨슬러나 이분들 성령운동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당시 영국에서 영국 상인들이 세계에서 제일 정직했다 이거야. 제일 정직하니까 영국 상인들은 다 믿을 수 있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왜 영국상인들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 당시 윌버 포스 이런 사람들이 개혁운동을 했기 때문에, 크리스찬 개혁운동을 했어요. 그러니까 우리 크리스찬이 개혁운동에 앞장서야 해요. 준비한 건 많았지만 시간이 벌써 12시가 되어서 나중에 기회있으면 개인적으로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하여튼 크리스찬이 먼저 정신차리는 게 중요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어요.
우리나라 옛날에 80불 하던 소득이 아프리카 기니하고 같은 80불의 나라였어요. 불과 50년 전에. 그런 나라를 이렇게 만들어 주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괜히 그렇게 만들어 주셨습니까? 미국이 기회의 나라가 됐듯이 우리나라도 기회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소망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 수요 여성 예배, 이렇게 또 주님을 찾아 나왔습니다. 주님, 저희들 이 나라를 향해서 주님의 뜻을 지금 생각해 봤습니다. 주님, 저희 우리 크리스찬들이 각성하게 먼저 도와주시옵소서. 저희 생활을 돌아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를 축복하셔서 이 나라 사람들이 고통당하지 않고 가난하지 않고 불행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 이 나라가 앞으로 세계 복음화와 세계 선교화의 주축이 되는 나라, 미국을 다음 이어 가는 나라가 주님께서 만들어 주시옵소서.
크리스천 리더십 스쿨-13강
제가 우리 CEO 모임의 1기예요.
제가 제일 처음 시작할 때 그때, 그때는 부부들이 많이 왔어요. 부부들이 와서 제가 1기로 졸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강사로 나오는 것은 지금 두 번째 인지 세 번째 인지 잘 기억이 없는데, 그렇습니다. 제가 지금 뭘 하나씩 나누어드는데 제가 아무것도 안 가지고 왔어요. 파워포인트도 없고.
그래서 오늘 아침에 중앙일보에 쓴 저의 칼럼인데, 혹시 중앙일보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한 번 드릴게 없으니까 저야 한번 가서 읽어보시라고 드렸습니다. 저한테 부탁하신 제목은 ‘하나님의 눈, 그리고 세상의 눈’ 이렇게 부탁하셨어요. 우리 목사님이.
제가 이걸 제목을 붙잡고 제가 한번 묵상도 해보고 또 기도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이게 사실은 제가 여기서 말씀을 드릴 게 제가 못되는 사람이에요. 왜? 제가 하나님의 눈을 정말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의 눈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로 봐야 되는 데 제가 아직도 그것에 대해서 너무 약해요.
그래서 참 말씀은 드리지만, ‘그러면 너는 세상에 눈을 안가지고 있고 너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냐?’ 라고 묻는다면 제가 참 감히 말씀을 드리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봐라보지 하고 못하고 우리 많은 사람은 크리스천이지만 살면서 세상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경우가 사실은 많습니다. 어쩌면 거의 저도 우리 교회나 나오는 거지.
물론, 교회 안 다니는 분도 계시겠지만 크리스천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교회 나올 때는 크고, 세상 가서 사업하고 또 일하고, 이럴 때는 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이 세상의 눈으로 우리가 일을 하지 않느냐? 그래야 세상에 가서 경쟁을 하고 세상에 가서 싸워서 거기서 이익도 내야 되고 거기서 승리도 해야 되고 이러니까 자연히 세상의 눈으로 같이 경쟁할 수밖에 없는 거 아니냐? 하고 반문하실 수가 있겠습니다.
‘그래, 우리가 세상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이것의 가장 저는 기본적인 기준을 뭐가 될까 저 나름대로 이 미션을 받고 생각을 해봤어요.
인생의 목적인 것 같아요. 우리가 인생의 이 목적이 내 인생의 목적을 위해서 내가 살면 그것은 세상의 눈으로 세상을 사는 것 아니겠느냐, 내 인생의 목적을 위해서 내가 산다면 그것은 세상의 눈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사는 것은 뭐냐?’ 내 인생을 하나님 것으로 드린다, 하나님의 도구로 드리겠다,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에 맞는 것에 내 인생을 드리겠다. 할 때는 제가 하나님의 인생 하나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보는 게 아니겠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 가지 삶의 태도가 있는데, 이 두 가지 삶의 태도는 분명히 다릅니다. 제가 길게 얘기하지만 여러분들도 많이 느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기업하는 분, 회사나가는 분 다 계세요.
우리가 가장 세상을 살면서 힘든 게 뭡니까? 어려운 게 뭡니까? 저는 우리 인간이라는 것은 누구나 상황을 지배하려고 해요. 자기가 자기 힘으로 상황을 지배하려고 해. 거의 비슷한 거예요.
그래서 세상의 상황을 내가 지배할 수 있다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자기가 생각을 하게 되면 그러면 자기가 안정감을 느끼는 거예요. ‘아, 내가 이번에는 이렇게, 이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 이 상황을 이렇게, 이렇게 가져가겠다, 그래서 이렇게, 이렇게 가면 이렇게, 이렇게 갈 것이다. 이렇게 가자고 생각을 한다 이거예요.
그것은 무슨 얘기입니까? 자기가 자기의 상황을 마음대로 컨트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컨트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럴 때 사람들은 굉장히 자기가 이것 내가 마음대로 할 수 있구나, 안전하다는 감정을 혹시 느끼실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사람은 살다보면 여러분들도 다 느끼지만 자기가 상황을 완전히 컨트롤 할 수 있는 기회가 몇 번이나 됩니까? 사실은 별로 없잖아요. 우리가 왜 불안하느냐, 우리가 왜 사는 게 불안하느냐?
그것은 우리가 항상 우리 마음속에는 깊은 곳에 걱정이 있는 거야. 내 마음대로, 내 마음을 컨트롤 할 수 없는 일이 환경이 벌어질 것이다, 라는 것 때문에 우리가 불안한 거예요. 상황을 내가 지배할 수 없을 때 불안감을 느낀다 이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눈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무슨 얘기냐. 그런 경우. 상황을 우리가 컨트롤하려고 하는 데 내 마음대로 컨트롤 못한다 이거예요. 그럴 때 뭐를 하느냐, 그럴 때 우리는 내가 컨트롤 상황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한테 믿고 내가 상황에 맡겨 버리는 거 라는 거예요.
‘하나님한테 믿고 하나님이 나한테 잘 해주시겠지’ 하고 믿고 내가 스스로 맡기는 것이 그것이 하나님의 눈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저 나름대로는 정의를 해봤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도대체 무슨 소리냐?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지면 다 매일, 우리가 매일매일 살아야 되잖아요. 매일 결정을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할 것이냐?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나님한테 맡긴다는 것은 그러면 나는 아 하나님 이 다 해준다고 하니까 나는 하나님한테 맡겼어. 그러면 나는 잘 되겠지 뭐. 그러면 나는 가만히 있는 것입니까? 그것이 하나님한테 맡긴 것입니까? 그런 것은 아니잖아요. 하나님한테 맡긴다는 것은 그렇게 소극적인 게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게 소극적으로 게으르게 나앉아서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겠지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하나님한테 맡긴다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하나님한테 맡긴다는 것은 뭐냐?’ 내가 하나님한테 모든 상황에 대해서 신뢰를 가지고 그 신뢰 뒤에 모든 상황에 대해서 내가 감사할 준비가 되어있는 거예요. 내가 감사할 준비가 되는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소극적인 삶이 아니고 나는 가만히 누워있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내가 하나님 눈으로 이 세상을 사는 거다, 저는 그런 식으로 제가 한번 정의를 해 봤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본 적극적인 삶은 뭐냐.’ 저는 그것이 핵심이 감사라고 얘기했어요. 매일 매일 무슨 일을 하든, 먼저 감사하고 살면 그것이 감사가 감사를 낳고 또 이 감사가 다음 감사로 이어지고 그렇게 된다, 이것은 감사의 법칙이라고 누가 얘기했어요. 감사는 감사를 또 불러온다.
그것은 마치 우리 정리, 수학에서의 정리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무조건 감사를 해보면 그 감사가 다음 감사를 또 끌어온다 이거예요. 감사들은 서로 서로 통해했다,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무조건 감사를 해라. 무조건 감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어떻게 해야 됩니까? 무조건 감사하려면. 그냥 됩니까? 무조건 감사하려면요? 감사도 훈련을 해야 된다. 훈련. 감사도 그냥 되는 게 아니야. 훈련을 해야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그런 것은 다 하나님의 뜻이니까 하나님이 알아서 척척 감사한 마음을 내 주겠지 그렇지 않단 말이에요. 우리는 작은 감사라고 자꾸만 자기가 훈련하면 이 감사가 다른 감사를 도 불러오고 이런 다 이거예요. 훈련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물론 주시는 마음인데, 그런 마음을 우리가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노력을 해서 훈련을 해야 된다. 감사만이 훈련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사실은 훈련이에요. 용기도 훈련이에요. 용기.
그것이 무슨 소리야. 용기가 무슨 훈련이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용기 훈련이죠. 여러분, 여러분이 갑자기 누가 지하철이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같이 뛰어 내려가고 그 사람을 붙잡고 올라와도 보통 저 같은 사람들은 뛰어내리지 못해. 거기서 벌써 계산을 하는 거야 뛰어내렸다가 3분 뒤에 오면 어떻게 하나 아니면 못 올라오면 어떻게 하나, 그 사람하고 부둥켜안으면 어떻게 하나, 이런 계산을 벌써 하기 시작하면 결코 거기 뛰어내려 갈 수 없다 이거야.
감사도 그런 식으로 일단 주춤해서 용기도 주춤해서 처음 결정을 못 내리면 용기는 그 용기는 죽어버리는 말아요. 용기가 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용기에 대해서 끊임없는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 이거예요. 무슨 훈련이다?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한테 마음을 주시기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훈련을 좀 해야 된다 이거죠.
이것은 제가 이런 말씀은 안 드리려고 그랬지만, 자랑으로 제가 하는 얘기가 아니고 이런 훈련이라는 것에 대해서 제가 말씀드리기 위해서 한마디 하겠습니다.
기자라는 사람, 특히 저같이 매일 글 쓰는 사람은 세상에 평생 일을 해 본게 없잖아. 매일 글만 쓰고 책상물린 그런 삶이잖아요. 이게 인생을 이렇게 살아서 되겠냐. 나도 뭘 좀 괜히 말로만 쨀쨀 뭘 잘해라, 어떻게 해라, 그런 것 하지 말고 너도 한번 네 몸으로 뭘 좀 해봐야 되는 것 아니냐? 하는 제마음속으로의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그래, 그러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내 지금 환경에서.’ 제가 지금 국회의원 나갈 수 있는 저기도 아니고, 그러면 뭐를 네가 지금 할 수 있느냐? 제가 매일아침 분당에서 산보를 하거든요. 중앙공원 뒤에 산도 산보를 매일 거의 한 시간 하는데, ‘아, 그래 청계산도 잘 가고, 나는 쓰레기를 줍겠다, 무조건 쓰레기를 보면 줍겠다.’ 이렇게 저는 결심을 했어요. 그래서 쓰레기만 보면 주웠어요. 봉투도 있고 까만봉투 같은 것을 가져와서 주웠어요.
그것도 안 돼. 왜 안 되느냐? 창피해요. 그리고 그렇게 주으려고 하면 혹시 다른 사람이 멀리 저기서 보다가 ‘저 영감은 저런 걸 줍고 있나’ 그러고 또 한편으로는 ‘되게 잘난 척 하네. 자기가 뭔데 일일이 쓰레기를 줍고 저러나’, 되게 또 ‘위선 떠네.’ 이런 얘기 같은 것이 뒤에서 들리는 듯 한 그런 나 나름대로의 뭐라 그럴까요. 저어하는 마음. 그런 것 때문에 쓰레기 줍는 게 그렇게 쉽지 않더라고요.
여러분, 한 번 해 보세요. 절대 쉽지가 않아. 허리 굽혀서 쓰레기를 이렇게 가다가 줍는 게 쉬운 게 아니야. 그런데 이것을 하루해 보고 일주일 해보고 한 달 하고, 또 지금 오래는 안됐어요. 3개월, 4개월 됐는데, 3개월, 4개월 되니까 이제 제 눈에는 뭐가 땅에 떨어져 있으면 줍고 싶어. 가서. 이렇게 줍고 싶다 나는.
우리 아까 용기도 훈련이라고 그랬잖아요. 용기도 훈련이고, 또 감사도 똑같이 훈련이다. 이거예요. 감사의 마음을 우리가 가져야 된다. 감사는 그런데 훈련에서 오는 것이다. 하는 얘기를 이것은 개인적인 하나님의 눈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눈을 가질 수 있는 것이냐, 하는 것을 답을 하나 딱 얘기한다면 일상 개인생활에서는 무조건 늘 감사하는 훈련을 하면 적극적인 삶도 되고 하나님의 삶도 또 살게 되는 것이다, 라는 것을 제가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 개인의 삶은 그런데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사회.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국가, 하고 세상눈으로 보는 국가, 세상눈으로 보는 사회 이것은 또 어떠냐. 아까 제가 또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각 개인에 관한 얘기 아니겠어요? 개인은 그렇게 할 수 있다 이거야. 개인은. 누구든지 내가 감사를 열심히 해야 되겠다 하면 개인은 자기가 감사를 할 수가 있잖아요.
개인은 개인생활은 되는데, 그러면 하나님의 눈으로서 사회, 국가는 뭐가 다르냐? 그거야. 어떻게 다르고, 과연 하나님의 눈으로 보는 국가 질서와 세상눈으로 보는 국가 질서나 나라 질서가 다른 것이냐, 하는 것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생각을 해 봐야 되지 않겠나. 제가 개인은 얘기했으니까.
그런데 여기에서 말씀드리려면, 국가나 나라에 대한 우리 하나님의 눈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까 개인의 눈이 마찬가지로 세상의 사람의 눈과 마찬가지로 기자를.
또 기자얘기를 하네. 기자를 했잖아요. 기자를 했는데, 또 크리스천이야. 그러면 제가 30년을 언론인 생활을 하면서 이렇게 보면 말이죠. 크리스천 노릇 하기가 어려워. 언론인들은. 왜 그러냐? 여러 사람을 접촉하잖아요. 사람들을 많이 보잖아요. 그것도 보는 사람도 특히 세상에서 잘 나가고, 힘 있고, 돈 있고 이런 사람만 보는데, 그 사람들을 이렇게 보면 아니 저런 사람이 어떻게 성공하느냐 이거야. 저런 사람이 어떻게 돈을 저렇게 버느냐 이거야. 저런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출세를 하느냐 이거야.
하나님이 진짜 계실까? 내가 보기에는 아주 인간쓰레기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저 사람한테 저런 복을 주셔서 그런 부자가 되고, 그렇게 무슨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이거야.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기가 그렇게 어려워. 하나님의 눈을 가지고. 이게 참 우리 결점이죠.
그리고 우리 세상에 눈으로 우리는 그러니까 익숙해질 수밖에 없어요. 세상을 보고 국가를 보고 사회를 보는 데는. 아 그러니까 뒤통수도 쳐야 되고, 적당히 거짓말도 시켜야 되고 말이지 이런 게 다 세상의 눈으로 사회를 보는 것이고, 또 국가를 보면 힘 있는 놈이 제일이야. 무력을 쓰든 쿠데타를 하든, 권력을 잡는 게 제일이야. 그런 것으로 우리가 세상을 본다 이거예요. 그러면 그게 옳은 것이냐 말이지. 그것이 반드시 옳은 것이냐. 하는 것의 문제제기가 된다 이거죠.
우리가 세상의 눈으로 국가를 보고 사회를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뭡니까? 과학이야 과학. 과학으로 세상을 보면 우리는 세상이 보인다고 얘기를 해요. 그것이 소위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이런 것이 다 과학 아니예요. 사회, 과학이죠. 사회, 과학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거예요. 다.
저는 정치학을 전공한 사람인데, 정치학을 전공했으니까 정치학에서 권력이라든지 권력론이라든지 이런 것을 보면 그것이 무슨 하나의 과학적인 법칙이 있어서 과학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거야. 모든 사회과학자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경제학자가 경제학이야 말로 사회·과학 중에 사회과학이다, 가장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게 경제학이다 그렇게 얘기합니다. 돈이라는 단위가 있기 때문에 이 단위로 인해서 경제를 분석할 수 있다,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의 눈으로 나라를 본다거나 사회를 볼 때 우리 사회 과학에 의존할 수 있습니다. 그 사회과학의 기본적인 게 뭡니까? 과학의 기본적인 게 뭡니까? 일반 과학의. 법칙을 알아나는 것 아니겠어요? 법칙. 물리학. 또 천체학이라고 하면 왜 지구는 태양을 돌고 우주의 태양계에 있는 위성들은 왜 태양을 도는가? 어떻게 몇 년마다 도는가? 주기가 있단 말이에요. 몇 년에 한 번 씩 돌더라. 매일 돌더라. 그런데 영원히 돌더라. 그러면 이게 법칙이다. 이게 바로 과학의 법칙이다.
법칙이 있으면 그 사회 현상이나 그 천체 현상이나 물리학 현상이나 그 법칙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과학이라는 것은 즉, 세상의 눈으로 세상, 사물, 물체를 보는 거란 말이죠. 그런데 그런 줄 알았어요. 저는. 그런 줄 알았는데, 사회과학? 그것이 어떻게 법칙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 사회과학으로 해결된 게 있습니까? 경제학 여기 하신 분들 많이 계실지 모르지만, 경제학 하신 분들이 2008년도에 금융위기 한 번도 예측한 있어요? 세계 경제학자 중에서 2008년도 금융위기 예측한 사람 아무도 없어. 법칙이라는 게 있으려면 법칙이 있고, 법칙은 왜 있느냐, 우리가 미래에 벌어진 일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게 법칙이라 이거예요. 그런데 사회과학에서 가장 과학이라고 얘기하는 경제학도 아무도 금융위기를 누구도 예측은 못했어요. 그런 경제학 해서 무슨 소용이 있냐? 소용없는 거예요. 법칙이 없고 법칙을 모르니까. 정치학은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이 세상의 눈으로 우리가 해석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요즘은 점점점점 과학에 대한 저기가 더 불신이 있고, 불신이랄 것은 없지만 하여튼 양자론이라는 게 있습니다. 여기 물리학 하신 분들. 양자론이라는 것은 우리 분자, 원자, 중성자, 이런 단위를 더 내려가면 최하의 단위로 가면 양자라는 게 있어요.
양자라는 게 있는데, 분자나 원자나 중성자 까지는 규칙적인 게 다 발견이 되어 있어요. 원자는 중성자를 중심으로 돈다, 분자는 어떻게 구성이 되어있고 이런, 이런 법칙으로 움직인다 이런 게 다 있는데, 더 내려가서 양자를 들여다보니까 양자를 들여다본 사람들이 깜짝 놀랐어요. 양자라는 것은 법칙이 없는 거야. 우리는 분자는 이렇게, 이렇게 돈다고 생각했는데, 양자는 제멋대로 움직이는 거야. 제멋대로. 이쪽으로도 가고 어느 때는 이쪽으로도 가고 자기마음대로 움직여.
거기서는 법칙을 발견할 수 없어요. 물리학자들이 깜짝 놀라는 거야. 이게 이렇구나. 과학이 법칙을 발견할 수 없기도 하는 구나. 하게 과학자들이 깨달았어요. 그래서 양자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양자는 자기마음대로 움직이지만 자기마음대로 움직일 뿐만 아니라 쳐다보는 사람,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또 마구 움직이는 거야. 구멍을 뚫어놓고 관찰자가 '야, 너는 이쪽으로 좀 가봐.' 이렇게 자기 마음을 먹으면 그 양자가 그쪽 구멍으로 가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이 과학이에요? 과학은 그렇게 해석이 될 수 있겠어요. 관찰자의 마음의 의지에 따라서 막 움직이는데. 참 기묘한 거지요.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으로 항상 익숙하게 나라를 보고 또 사회를 본다면 그것은 지금 양자론에서 제가 주장하듯이 사회를 우리가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는 이거예요.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벌어진다. 제가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 한국역사를 보면 그렇다 이거예요. 제가. 한국역사를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한국역사를.
우리나라가 100년 전, 120년 전으로 한번 돌아가십시오. 돌아가셔서 우리 조선말의 우리를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그때 조선에 처음 설교사가 들어왔어요. 1832년에 피츨라프라는 독일 개신교 선교사가 처음 몽금포 저기 장산곶 있는 데로 들어왔어요. 이 사람이 들어와서 설교도 하고 통상도 하자 그러니까 그때는 쇄국정책 할 때니까 ‘안 된다’ 하고 쫓아냈어요. 그 사이에 잠깐 내려서 이틀인가 몽금포를 돌아다녔어. 거기서 몽금포 사람들 사는 걸 알았죠. 그리고 그 다음에 30년 뒤에 파리 왜방 선교사 달래라는 사람이 또 한국에 왔다 갔어.
그 다음에 중국 가서 ‘코리아 역사’라는 것을 썼어요. 거기에도 그 당시에 한국 상황이 나와. 저는 그 당시 얼마나 우리 조선이라는 게 엉터리고 이런 나라였나 하는 것을 지금 책에서 지금 제가 발췌를 한 것인데, ‘조선 사람은 불결했다,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피부는 때로 덮여 이가 득실댔다. 그 사람들은 그 이를, 해충을 사람들 보는 앞에서 잡고 있는 데 부끄러워 할 줄 몰랐다.’
조선의 보고에요. 아주 그냥 시골에 조선말에 시골이라는 형편없는 동네란 거예요. 달래 신부가 가서 보고 한 것을 보면, 어디 병기고를 가서 본 적이있는 모양이에요. ‘병기고 속에는 무기도 탄약도 없다. 다 팔아먹었다, 대신 고철 나부랭이 헌옷만 갖다 놓았다.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다 수탈했다. 백성은 곤궁해서 서해안에서는 쌀 한말에 어린 딸을 쌀 한 말에 팔고 있었다.’
이것이 그 당시의 조선이에요. 배고프고 그러니까 중국 사람들한테 딸을 쌀 한말에 파는 거야. 1870년, 1840년 이때. 공양미 300석 심청이가 거짓말이 아니라 이거예요. 다 그런데 그것은 300석이나 받았는데, 여기는 쌀 1말 가지고 딸을 파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게 우리나라가 형편없는 나라였다 이거예요.
비숍 여사라고 영국에 있는 약간의 귀족인데, 이 사람이 1894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한 2년을 지냈어요. 우리나라 방방곡곡 다 다녔어. 그래서 저 부산에서부터 저쪽 연해주까지, 그리고 한강을 따라서 삼척까지 다 갔어요. 갔는데 여러분들이 사볼 수 있어요. 재미있어요. 그런데 얼마나 재미있는 얘기가 많은지. 그런데 얼마나 조선이 불결하고 더러운지, 하여튼 이 사람은 조선하면 넌더리를 치는 거예요. 이렇게 불결한 나라가 있느냐 이거야.
이 사람이 동네에서 부산 동네에서 일본인들이 사는 지역에 갔는데 그렇게 깨끗하더래. 일본인들이 사는 지역은 깨끗한데, 거기에서 딱 그 지역만 벗어나니까 얼마나 조선사람 사는 데는 더러운지 서울 한양을 왔더니 한양은 더럽게 더 말할 수가 없는 거야. 도랑, 하수도도 없고 상수도도 없는 나라 아니에요? 이 서울에 그때 몇 십 만이 살았을 텐데 도랑에 뭐 오줌, 분뇨 다 버리고 그러니까 냄새가 나서 서울은 못살겠다 이거예요. 그럴 정도로 우리나라가 그렇게 되어있는 나라였어요.
그런 나라가 어떻게 됐어요, 지금? 그런 나라인데, 지금 어떻게 되어있는 거냐 이거죠. 그러면 그때 여러분이 사회과학을 하고 정치학을 한다는 학자로서 만일 왔다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100년 뒤에 이런 나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상상이나 해 봤겠어요? 상상할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서 그것을 우리는 세상적으로 보면 기적이라고 얘기하죠. 그래서 우리 기적이라고 그러잖아요?
앞으로도 얘기하겠지만 우리가 소득이 얼마예요? 80달러였잖아요. 79달러. 1945년 해방되고 그 다음에 6.25 끝나고 다 79달러랬어요. 아프리카 가나하고 비슷했어요. 79달러. 세계 120개국 중에서 120위 이런 정도죠. 아프리카하고 똑같은 가나하고 똑같이 제일 꼴찌인데, 가나는 지금도 꼴찌에요.
우리는 왜 지금은 이렇게 10위의 국가가 됐느냐 이거예요. 왜? 그것을 사회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물론 설명하려고 하는 사람은 많죠. 사무엘 헌팅턴 이라는 하버드 대학 교수는 그것을 문화론으로 해석하려고 해요. 조선 사람들은 교육문화가 아프리카사람들하고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그랬다. 이런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세상에는 기적이라고 얘기를 하죠.
그런데 이것을 우리가 바꿔서 한번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어떻겠느냐 이거예요.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이것을 어떻게 볼 수 있느냐 이거죠. 저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변한 것, 저는 이중에 기독교인이 아닌 분, 크리스천이 아닌 분이 있을 수 있다고 보는데, 이것을 무슨 크리스천을 강요하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근대사를 보면 기독교, 특히 개신교를 빼고는 해석할 수 없어. 개신교의 역할이 어땠는가가 한국 근대사의 핵심이라 이거예요. 왜 그러느냐, 1882년 한미 수호통상 조약 이후에 설교사들이 우리나라에 많이 왔잖아요. 많이 와서 그 설교사들이 무엇을 했습니까?
설교사들이 와서 학교 짓고 병원 짓고 다 했어요. 그리고 그때 한국에서 소위 각성을 한 사람. 개화를 해야 되겠다, 갈망하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다 크리스천이 됐어. 크리스천이 됐는데, 제가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 두 사람을 뽑았어.
윤치호라는 사람 알죠? 이 사람 나중에는 윤치호씨가 친일파로 돼서 1946년인가 돌아가셨는데, 친일파가 됐어. 그런데 이 사람은 1881년에 만국신사관람단이라고 해서 미국 워싱턴으로 가서 구경하고 그때 미국대학, 벤더빌트 대학을 이 사람이 다녔던 사람이에요. 1882년. 지금부터 몇 년이예요? 130년 전에. 최초의 유학생일 수 있어요.
그런 사람인데, 이 사람이 가서 보고 나서 야 조선이 살길은 기독교 밖에 없구나 하는 것을 자기가 일기에 다 썼어. 이 사람이 영어로 일기를 쓰는 사람이에요. 이사람 그때부터 지금 죽을 때까지 일기를 매일 썼어. 그런데 한국말로 쓴 게 아니고 영어로 일기를 썼어. 언제? 1881년, 1882년 이때. 그러니 우리는 다 가서 죽어야죠. 우리는 사실, 다 죽어야지. 130년 전에 가서 자기 미국 가서 공부 몇 년하고 와서 자기 전부다 영어로 일기를 매일 썼는데 영어를 몇 년을 합니까? 몇 년하고.
저는 미국 가서 특파원도 하고 그래서 한 8년 이상은 미국서 공부도 하고 살았는데 영어로 이걸 쓰라고? 골치가 아파서 쓸 수가 없습니다. 사실은. 그런데 이 사람은 다 영어로 썼어. 그것이 다 윤치호 일기라고 해서 다 번역돼서 나왔어. 이것을 보면 ‘조선급선무는 국민의 지식과 견물을 넓히고 도덕과 신의를 가르치며 애국심을 기르는데 있다, 조선의 교육을 도와주며 백성의 기상을 회복시킬 기개는 예수교밖에 없다’ 이런 얘기를 다 썼어요. 1889년의 일기야 이게.
그리고 그 당시 아까 얘기했잖아요. 한국사람, 조선 사람이 더럽고 일 안하고 그냥 다 일안한 이유는 있어요. 사실. 왜냐? 수탈을 당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뭘 가지고 있는 것만 알면 아전, 수령, 원님이 와서 다 뺏어 가는 거야. 숟가락이 몇 개 있는 것까지 다 아는 거야. 그런데 비숍 여사가 아주 이것을 예리하게 통찰을 했어.
그러니까 백성들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거야. 그리고 게을러지는 거죠. 그리고 조금만 친척 중에서 잘 사는 사람이 있으면 우리나라 옛날에 다 그 친척집에 몰려가서 뜯어 먹었잖요. 일 안하고 다 그렇게 살았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비숍 여사가 연해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있는 데를 갔어요. 갔더니 거기에 조선인들이 와서 이민을 와서 이주해서 사는데 그렇게 깨끗하고 그렇게 잘살고 그러더라 이거야. 깜짝 놀랐어. 왜 그러냐? 한국 땅에 있는 조선인은 왜 저렇게 더럽고 게으르며, 연해주에 와 있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깨끗하고 왜 이렇게 부지런 하느냐, 그 사람이 분석하기에는 연해주에서는 수탈이 없다 이거야. 양반들, 이런 사람들이 뺏어 가지 않는다 이거야.
그러니까 열심히 벌어서 깨끗하게 가서 살아야 한다. 깨끗하게 사는데, 그러니까 이 조선사람 게으른 것, 이것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왜 노동을 안 하느냐 이거야. 노동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조선의 미래가 노동에 의존한다는 것을 배우고, 기독교는 노동의 종교라는 것을 배우게 해야 한다. 노동을 가르쳐야 하는데, 조선인한테. 그것을 가르쳐주는 데는 기독교 밖에 없다 이거야.
이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배반하지 않았어요. 비록 친일은 나중에 했지만, 1938년 이후에 몇 년간 친일을 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은 기독교를 끝까지 가지고 죽은 사람입니다. 하여튼 이 사람이 그렇게 한국이 그런 엉터리 같은 환경에서 기독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또 한사람, 제가 아까도 얘기했는데 이승만이라는 사람 여러분 잘 알잖아요. 이승만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이 처음에는 과거 시험 준비했던 사람이에요. 이 사람이 신학문을 배워야 되겠다고 해서 배재학교를 갔어요. 배재학교를 가서 그 다음에는 독립협회 이런 운동을 했는데, 운동을 하다가 감옥소를 갔어요. 감옥소에 갇혀서 4년 5개월 있었어.
그런데 이 양반이 감옥소에 있으면서 소위 주님을 영접한 거야. 이승만 대통령이. 4년 5개월 동안 있으면서. 주님을 영접해서 아주 신실한 신자가 됐어. 신실한 신자가 돼서 감옥소에서 매일 성경강의를 하는 거야. 이 사람이 성경 번역도 했어요. 우리말로 처음. 하다가 중간에 그만 뒀지만. 죄수들을 모아놓고 성경강의를 하고, 성경 강의 할 때는 간수들도 와서 듣고, 그래서 죄수도 40명이 소위 개종을 했어. 기독교로 설교사들이 깜짝 놀랐지. '야, 어떻게 이렇게 감옥소에서 개종을 할 수 있느냐' 깜짝 놀라서 이승만이라는 사람을 다시 봤다는데. 이승만도 똑같애.
똑같이 한국은 기독교로 밖에 살길이 없다는 것을 절절하게 깨달았어요. 그가 감옥에서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독립정신이라는 책에는 뭐가 들어 있느냐, 당시의 한국의 조선의 상황, 러시아, 일본, 청나라, 미국, 이런 것에 대한 국제정세, 이런 것을 쓰고, 또 조선은 어떤 개혁을 해야 되겠느냐, 무슨 정체를 가져야 되겠느냐,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해야 된다, 이런 것을 쭉 쓴 책인데, 그 말미에 뭐라고 쓰여 있느냐면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맨 끝에 결론이에요. '지금 우리나라가 썩고 쓰러진 데서 일어나라면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무슨 일의 근원으로 삼아 이나라를 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나라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승만이 1984년에 감옥소에 쓴 결론이에요. 우리나라가 살길은 기독교밖에 없다 이거예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비록 일본한테 강탈을 당했지만 기독교로 인해서 우리나라가 일제 때 교회가 많이 생기고, 병원이 생기고, 학교가 생기고,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 계몽하고 다 그런 것 아니겠어요? 1919년 3.1운동의 33인 중에 16명이 기독교인이었어요.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한 번 생각해 보셨어요? 왜 일본은 그런데 기독교가 안됐어? 왜 한국은 기독교가 됐어? 그리고 우리는 지금 천만이야. 기독교인이. 일본은 지금 0.1%, 0.2%밖에 안돼. 왜 그러느냐 이거예요. 우리가 세상의 눈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까? 역사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지. 그런데 그것을 해석을 우리가 한번 하나님의 눈으로 해석을 해본다면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사용하신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있으시기 때문에 근대화 시작부터 기독교를 이쪽으로 우리나라를 가게 해준 게 아니냐, 하는 것이 한국 역사를 소위 하나님의 눈으로 볼 수 해석한다면 그렇게 해석할 수도 저는 있겠다, 제가 이것은 제 주장입니다.
이것은 누구의 주장도 아니고, 그런 주장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눈으로 대한민국 근대사를 볼 수 있겠다, 그것은 그 다음에는 마찬가지예요. 독립을 얻었잖습니까? 독립을 얻고 그런데 싸우다가 6.25가 났어요. 6.25가 났는데 6.25는 6.25가 났을 때 우리가 공산 북한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 ? 없었어요. 아무런 힘이 없었어요.
그런데 넘어오는데 투르만이 일요일인데 어떻게 와서 우리가 미국이 참전한다는 것을 바로 결정을 해 줬어요. 그것도 지금 보면 지금 정치학자들은 어떻게 투르만이 그런 결정을 했느냐 이거예요. 그것 참 어려운 이해다. 왜냐? 1948년, 1949년 미국은 철수했어요. 한국에서. 왜? 한국은 지킬 가치가 없는 나라다. 그래서 국무장관 에이스친이 라인을 그었어요. 그런데 한국은 제외됐어. 미국이 방위를 책임지는 선을 넣었는데 그 선은 대만하고 일본까지만 이렇게 되어있고, 한국은 제외가 됐어.
그러니까 그것보고 소련하고 중공하고 김일성하고 '야, 미국이 여기 떠나고 자기들 책임 안진다고 그러니까 관심 없다니까 내려가자.' 내려온 게 6.25라 이거예요.
그러면 그때 그렇게 떠나간 미국이 왜? 왜 금방 그렇게 하루 만에 참전결정을 하느냐. 이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한미사를 연구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거야. 이 얘기를.
6.25 전쟁 나서 1년 만에 미국은 또 도망가려고 그랬어. 미국은 전쟁이 나서 사상자가 1,000명만 넘으면 그 다음부터는 도망갈 생각이에요. 왜냐하면, 여론국가이기 때문에. 사상자. 전사자 백. 그것을 백(bag)이라고 하는 거예요. 시체 백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휴전 생각을 한다 이거야. 미국 사람들은.
그런데 한국이 1년이 지났어요. 처음에는 9.28 수복이 된다고 해서 올라왔는데, 중공군이 내려오니까 뭐 이것 밀려서 또 내려와서 서울을 뺏기고 오산까지 내려왔잖아요. 그 다음부터 교착상태야. 사람은 자꾸만 죽어. 시체 백은 미국으로 자꾸만 가. 그러니까 얘가 ‘안 되겠다. 빨리 끝내자. 전쟁을 끝내자.’ 미국은 전쟁을 끝내려고 그랬어요. 1년 만에.
그런데 그러면 끝내면, 이것은 도대체 우리는 뭐냐? 우리는 침략당하고 죽을 사람은 수백만 다 죽고, 너희들 떠나면 한국은 어떻게 되느냐? 이승만 박사 걱정이 그거였어요.
그러면 한국은 어떻게 되겠어요? 미국이 그때 휴전하고 떠나면. 그러면 월남이 휴전하고서 월남이 망하고서 한국이 망하는 거죠. 그때도 똑같이 망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승만 박사가 ‘안 된다! 미국이 우리나라 방위를 책임을 져라. 도장 찍지 않으면 너희들 떠날 수 없다.’ 그래가지고 체결한 것이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에요.
그러면 그것도 우리가 보통 세상에 논리나 사회과학 입장에서 본다면, 미국이 그런 것 해줄 리가 없어요. 그런데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체결이 됐어. 그것 참 이상한 거거든요. 물론, 이승만 박사의 리더십이나 고집도 있었지만, 그런 것을 우리가 세상의 눈으로 해석할 수가 없다 이거예요.
그러면 왜 미국한테 그것으로 인해서 한국이 소위 서방진영에 속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확실한 반공주의가 그때 생겨났습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1945년부터 1948년 사이에는 좌우대립이 심해서 남쪽에도 소위, 좌익이 더 많았다. 그런 소리도 있었어요. 그 정도인데, 6.25를 계기로 우리나라는 반공국가가 됐다 이거예요. 그것은 우리가 뭐로 해석할 수 있느냐? 이거예요. 그것도 일종의 기적이다 이거예요.
여러분, 그 다음에는 더 얘기할 필요가 없어요. 경제기적. 그것 다 기적이라고 그러잖아요. 한국이, 한국한테 어떻게 그런 경제기적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세계에서 2차 대전 이후에 탄생한 신생국 모든 나라, 한국 같은 나라 단, 한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 10위가 된 국가, 국력이 10위가 된 국가가 하나도 없어요.
또 민주주의 이만큼 하는 나라 아무데도 없어요. 그러니까 모두들 한국이. 특히 오바마는 한국을 좋아하는데, 한국이 기적 같은 나라니까, 미국이 도와서 이렇게 됐다고 자기들은 미국의 친구라고 생각하고 그러는데, 어떻게 이런 기적 일어났냐 이거예요.
왜, 우리한테. 그것은 저는 하나님의 눈으로 밖에 해석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우리나라 근대사를 본다면. 지금 현대까지를 본다면 하나님의 눈으로 밖에는 한국을 이해할 수 없다. 지금 우리 인간들은 현재, 이게 현재죠. 과거, 미래, 이렇게 구분하면서 있잖아요. 오늘, 내일, 어제 이렇게 다 구별하잖아요?
하나님은 현재, 내일, 모레, 이런 게 있을 까요? 하나님은 없어요. 하나님은 영원한 현재만 있는 분이다, 영원한 현재만 있는 분이예요. 우리 인간이 미래가 있고 현재가 있고 과거가 있었습니다. 왜 이러느냐 하면,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의미가 뭐냐. 하나님이 이미 미래를 다 가지고 계시는 거야. 미래를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은 미래라고 생각하지도 않죠. 이 민족은 내가 점찍어서 내 자식으로 나의 샛별로 기르겠다. 하는 의도가 있지 않으시면 이스라엘이 그렇듯이 한국을 그렇게 할 수 없다 이거죠.
하나님은 우리 앞에서 항상 지금까지 끌어오셨습니다. 제가 기독교 역사 지금 쭉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전부다 끌어오셨어요. 미리 다 준비하셨어요. 어떻게 준비하셨습니까? 미리 앞서서 다 치워주셨어. 일본 치워서 우리 해방시키고, 6.25 나서 미국이 다 들어오게 다 앞서서 치워주시고, 그러고 중국, 일본 우리한테 얼마나 나쁜 짓을 많이 했습니까? 청나라, 일본.
그런데 청나라가 옛날에는 우리 나쁜 사람이었는데 우리가 이렇게 근대화할 때 경제개발 할 때 중국은 무엇을 했습니까? 문화혁명을 했어요. 중국은 1980년까지 아무것도 안하고 서로 문화혁명으로 지금 싸우고 붙고 해서 아주 생활이 형편없어졌어. 그때 우리는 이미 벌써 우리는 1980년에 이미 3차 5개년 계획까지 다 해서 우리는 껑충 뛰었어요.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중국에 물건을 팔아먹을 수 있는 거야. 그때 누가 중국을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우리나라 살리려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왜 일본을 우리 옆에 뒀습니까? 하나님은 일본을 왜 우리 옆에 뒀어요? 그래서 우리 침탈하게 했잖아요.
한반도를 보면 과거는 뭐라 그랬습니까? 우리가 '야, 참 강대국의 질곡 속에 태어난 나라다. 한반도는. ' 다 둘러싸여 있어. 중국, 러시아, 일본, 다 둘러싸여서 조그만 반도는 질곡 속에 있는 반도라 이거예요. 그런데 현대사에서 질곡입니까? 아니죠. 일본이 있으니까 우리는 일본으로부터 기술을 받아와서 우리가 경제개발 할 수 있었던 거예요. 일본, 지금 우리 보다 일본은 점점 사그라지잖아요. 그러면 질곡의 지정학이 아주 축복의 지정학으로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거라 이거예요.
이것은 세상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어요. 세상의 눈으로 해석할 수 없는 거란 말이에요. 또 하나 하나님은 어떤 분이냐. 하나님의 눈을 가지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 하나님은 우리 민족이 준비되기까지 또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다, 이것입니다. 그래, 가만히 한국의 발전을 보면 제일 필요한 안보, 안보를 이승만 대통령 때 완결을 시켰어요.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미국과 동맹관계를 맺어서 안보를 만들었어요. 안보가 튼튼하니까.
그 다음에는 뭘 만들었어요? 기다렸다가 경제를 우리를 잘 발전시키게 했어. 경제를 발전하니까 그다음에는 뭐했습니까? 민주주의를 그 다음에 만들어 주셨어. 그러니까 안보, 경제 민주주의, 이것이 순차적으로 잘 됐기 때문에 오늘의 우리가 된 것이 아니냐, 그것이 세상눈으로 보면 기적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계획이고, 하나님이 이 나라를 분명히 도구로 쓰시려고 한다는 우리가 하나님의 눈을 깨달을 수 있는 게 아니냐, 저는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끝>
마리아 행전-특강 1편
이렇게 열기가 뜨겁고 성령님이 이 자리에 임하신 그런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저는 교육자도 아니고, 평신도가 이 자리에 올라와서 과연 무슨 말씀을 드려야 될 지 제 가슴이 떨립니다. 특별히 우리 전부 다, 우리 여성, 자매님들이기 때문에 더 마음이 떨립니다.
저한테 무엇을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할 것이냐, 그것을 한 번 30분 동안 하나님 뜻을 한 번 전해 달라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으로 우리 자매님들과 함께 30분 짧은 기간이지만 30분 동안 나눠볼까 합니다.
제가 준비를 하는데 ‘출애굽기 19장 4절’ 말씀이 저한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한 번 다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이 두 사람에게 행한 일을 너희가 직접 보았고, 독수리 날개 얹어 나르듯 내가 너희를 내게로 데려온 것을 보았다.’
그 다음에 또 한 번 읽겠습니다.
‘그러니 이제 너희가 내게 온전히 순종하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 특별한 내 보물이 될 것이다. 온 땅이 다 내 것이지만’
여기서 제가 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 가슴에 와 닿았던 것은 ‘독수리 날개에 얹어 나르듯이 너희를 내 앞에 가져왔다.’ 하는 말씀하고, ‘너희들이 내 특별한 보물이 될 것이다.’ 그런 말씀이었어요.
제가 한국 역사를 이렇게 공부하면서 정말로 우리 한국 역사를 되돌아보면, 이야, 진짜 하나님께서 우리를 독수리 날개에 얹듯이 얹어서 그 어려운 세상에서 여기까지 끌고 오셨구나. 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님께서 ‘내 민족을, 이 대한민국을 내 보물로 삼겠다.’ 하는 말이 ‘아, 이게 진짜 하나님이 우리를 보물로 삼으려고 우리를 이렇게 보호해 주시는 구나.’ 하는 것을 제가 느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으로 제가 잡았습니다.
그러면서 ‘그러면 뭘 기도를 할까’ 하면서 생각을 해보니까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무슨 기도를 했을까 그런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무슨 기도를 했을까 하고 제가 한 번 책을 여러 군데를 한 번 들쳐봤습니다.
사실 우리 개신교가 시작된 것은 1880년대부터 시작이 됐습니다. 그 이전에 가톨릭이 조금 있었지만, 실제로 개신교가 들어온 것은 선교사님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신 것, 즉, 한미 수호조약을 맺었던 1882년 이후에 개신교가 우리 한국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때 우리 선조들, 그러니까 1880년대 우리 선조들은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기도했을까 하는 것이 제가 의문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 대표적인 사람을 두 사람을 골라봤습니다.
한 사람은 윤치호라는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아마 잘 아실 거예요. 윤치호라는 분은 1881년에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만국신사관람단인가를 처음 조직해서 미국으로 갔던 사람이에요. 거기에 한 수행원으로 갔어요.
그리고 가서 그 다음에는 미국의 벤더빌트대학이란 데를 또 수학을 했어요. 그때가 언제냐? 1880년대에요. 그러니까 지금부터 130년 전입니다. 그러고 돌아와서는 이 나라 독립을 위해서 독립협회를 만들었고, 그리고 독립신문을 운영했습니다.
그러고서 쭉 지내고서 YMCA 회장도 맡고, 쭉 이러면서 105인 사건이라고 기독교 우리 신자를 중심으로 한 그런 반일운동이 있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감옥살이까지도 했어요.
그런데 이 양반이 1938년 이후에 일제가 너무 탄압이 심할 때 일제에 일종의 친일을 했다 그런 저기를 받아서 결국 해방된 이후에 1년인가 2년 살다가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런 분이 그러니까 우리 1880년대 초창기 나라를 위해서 이 사람은 무슨 기도를 했을까.
하는 윤치호라는 분을 제가 한 번 살펴봤고, 또 한 분은 이승만 대통령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이승만 대통령.
그 두 분을 한 번 그러면 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윤치호 우리 선생님보다는 조금 연한데, 이 양반들이 그러니까 우리 개신교로써는 굉장히 우리 선조라고 해당할 수 있고, 또 그 당시 굉장히 높은 자리에 있었고,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이 양반들 기도를 따라가 보면 우리도 또 무슨 기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생각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제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당시 한국, 조선이라는 나라는 엄청나게 부패하고, 엄청나게 또 먹을 것이 없고, 엄청나게 가난했던 나라입니다.
선교사들이 와서 보고를 한 것이 있어요. 그것은 1830년대에 선교사가 피츨나프라는 분들이 한 번 오셨어요. 이 사람은 독일 개신교 선교사였습니다. 몽금포로 와서 한국에 와서 문을 열고 우리 개항하고 선교를 좀 하게 해 달라. 그런데 조선에서는 내쫓아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1874년에 마리 왜방 선교사의 달래신부라는 분이 왔습니다. 이 분도 와서 문을 두드렸는데 우리가 열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한국을 당시 보고 간 거예요. 그래서 리포트를 했어요. 책을 썼어요. 북경 가서. 거기 보면 우리 조선이 잘 나타나 있어요. 제가 잠깐 읽어드리겠습니다. 아주 요약하게
‘조선 사람들은 굉장히 불결했다. 끔찍한 거처에서 살고 있었다. 피부는 때로 덮여서 이가 득실거렸다.’
이게 조선 사람의 특징을 얘기한 거예요. 선교사가 와서 짧게 보고 간 다음에.
그 다음에 왜방 선교사 달래신부는 또 어떻게 봤느냐? 어떻게 병기고를 가서 본 모양이에요. 어느 조그만 데에. ‘병기고 속에는 무기도 탄약도 없었다. 다 팔아먹은 듯하다. 대신에 고철 나부랭이, 헌옷만 갖다 놓았다. 아전과 수령은 그들 마음에 드는 것이 있으면 다 수탈했다. 백성은 곤궁해서 서해안에서는 어린 딸을 쌀 한 말에 팔고 있었다.’
이게 리포트를 한 거예요. 북경에 가서.
그러니까 조선말에 이 나라 상황이 얼마나 형편없었던지 여기 그대로 지금도 책에 나와 있습니다. 공양미 3백석 절에 바치고 눈을 뜨게 한 심청이 알잖아요? 심청이가 쌀에 팔려갔잖아요. 그래도 심청이는 3백석에 팔려갔으니까 그래도 다행이에요. 우리 지금 그 당시 서해안에 있는 딸들을 부모들이 파는데, 쌀 한 말에 중국 사람들한테 팔았단 말이에요. 이렇게 조선이 형편없는 나라였습니다.
서울은 그러면 어땠느냐? 서울이 그 당시 한양에는 비숍여사가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이라는 책을 썼어요. 한 1년 반 2년을 조선을 방방곡곡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책은 지금도 다 여러분이 구해볼 수 있습니다.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 1894년에 이 사람이 와서 쭉 돌아봤는데, 이 사람도 역시 30년 전하고 똑같은 리포트를 냈어요. 책을 똑같이 냈어요.
왜냐? ‘조선 사람처럼 불결한 데 사는 사람이 없다. 조선 사람처럼 더러운 사람이 없다.’ 이 사람이 동네에서 일본 지역에 가봤는데, 일본 사람이 사는 지역을 가봤는데, 일본 사람 동네에 사는 부산 동네에 가보니까 얼마나 깨끗한지 모릅니다. 그때만 해도. 동네에. 부산 동네에.
그런데 바로 그 일본사람 거주 지역을 벗어나면, 조선 사람이 사는 동네에 가보면 더럽기가 한량이 없다. 서울을 올라와서, 한양을 와서 보니까 한양은 웬 그런 냄새가 많이 나느냐는 얘기에요. 도랑, 하수도도 없고, 상수도도 없고. 그런 우리 한양이었어요.
그러니까 그냥 길거리마다 누런 도랑물이 막 흐르고, 냄새가 코를 찌르고. 그런 것이 조선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당시의 사진들 많이 봤을 거예요. 서울 도성, 한양 도성이 어떻게 됐는지. 다 성벽이 다 무너졌어요. 여러분, 서소문이 저희 회사 근처인데, 서소문 지하도를 한 번 가보시면, 옛날 서소문 당시의 모습 1890년대의 모습이라고 사진을 찍은 게 있어요.
그러면 그 도성, 성 있잖아요. 한양 성. 한양 성이 다 무너졌어. 그 안에 초가집이 있는데, 초가집 초가 이영을 못해서 초가가 다 빠져나가 있어. 그런 것이 한양이었어요.
1890년대의 한양이었어요.
이게 우리나라가 진짜로 변변치 못한 나라였습니다. 이런 나라였으니까 너무나 힘이 없는 나라니까 일본한테 뺏기게 됐죠.
이럴 때 윤치호라는 사람이 외국, 미국을 갔다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를 어떻게 구해야 되나 하고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윤치호라는 사람은 매우 머리가 좋은 사람이어서 그때부터 자기가 죽을 때까지 일기를 매일 썼어요. 그래서 ‘윤치호 일기’라는 책이 있어요. 여러분, 사 보실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건 한글로 쓴 게 아니고 영어로 썼어요. 대단한 분이야. 그러니까.
우리 여러분, 저도 미국서 7, 8년 살고 다 그래봤지만 영어로 일기를 쓰다니. 그 당시, 130년 전에. 그러니까 머리가 얼마나 좋은지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매일 영어로 썼어. 왜 영어로 썼을까? 하고 뒤에 학자들이 그것을 캐봤어요. 그랬더니 혹시 누가 보고 자기 마음에 불충되고 이런 것을 혹시 들킬까봐 다른 사람 모르게 영어로 썼어요.
그래서 지금 역사학자들이 그 영어 다 번역해서 ‘윤치호 일기’라는 책을 냈습니다. 거기에 윤치호의 일기를 읽어보면, 재미있는 구절이 너무 많아요. 몇 십 년 동안 조선의 얘기를 다 쓴 것이니까.
다 얘기를 해 드릴 수가 없어요. 저한테 30분밖에 안 줬기 때문에.
딱 그 당시 얘기를 몇 가지만 해드리겠습니다. 그 당시 고종과 민비, 우리가 소위 명성왕후라고 해서 떠받드는 요새 무슨 그런 것이 있잖아요. 명성왕후와, 그러니까 민비와 고종을 얼마나 욕을 했는지 몰라요.
고종대왕과 민비는 이것은 이 사람이 쓴 것이지, 제가 한 얘기가 아니에요.
그때는 무당, 무당굿하고 점쟁이, 이것에 빠져 들어갔어요. 그래서 그 덕수궁, 덕수궁 주변에는 점쟁이집, 무당집이 드글드글 했대요.
그래서 제가 조금 후에 얘기하려고 그러는데, 1905년에 러-일 전쟁이 일어났어요. 러-일 전쟁이 일어났는데, 그때는 이미 민비가 시해됐을 때야. 그리고 고종밖에 없을 땐데, 아마 엄비하고 살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지금 제물포, 인천에서 일본하고 러시아하고 함포사격을 하면서 싸웠어요. 그러면 그 나라 임금이, 우리나라 왕이 ‘내 나라, 내 땅, 내 바다에서 지금 다른 나라 외국배들이 와서 저 군함들이 전쟁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얼마나 걱정이 많겠습니까? 그러면 뭘 좀 수단을 강구해야 될 것 아니겠어요?
그런데 뭐 했느냐? 무당들을 불렀어요. 점쟁이를 불렀어요. 왕궁으로. ‘어떻게 하면 되느냐?’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왕궁 기둥 밑에 솥을 묻으면 우리나라가 안전합니다. 그래서 실제 솥을 묻었어요. 그때 1905년 러시아 전쟁 때.
1904년 러시아 전쟁 때 실제로 그랬어요. 그렇게 왕궁, 우리나라는 피폐하고 도처에 먹을 게 없어서 딸들은 쌀 한 가마니에 팔려 가는데, 왕은 무당 끼고, 점쟁이 끼고 그러고 백성이 서울, 한양 시내가 코를 찌르듯이 악취가 풍기는데 그런 것 아무 관심 없이 그런 짓을 하고 살았단 이거예요.
그래서 그 한 번 그 사람 일기에 얘기된 것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민비와 고종은 무당에 빠졌다.’ 하고서 지금 얘기하는 그 얘기가 쭉 있습니다.
그러면 양반은 왕이 그렇다면 그 당시 양반은 어땠느냐?
‘양반은 수저를 들고, 붓을 드는 것 이외에 자기 손으로는 아무 것도 안 하려고 그랬다.’
양반은 일을 안 하려고 그랬어요. 아무도... 무슨 일도 안 하고, 아무 일도 안 하고, 숟가락으로 밥 먹고, 붓글씨 쓰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안 했다. 이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 일기에 ‘민영익’이라고 있죠? 민비의 친척. ‘민영익’이라는 사람은 일을 안 하니까, 일할 필요가 없으니까. 왜? 양반이니까.
그 당시 이제 시계가 처음 나왔어요. 시계가 나와 가지고 시계를 가지고 다니는데, ‘양반이 어떻게 시계를 차나? 그 무거운 걸.’ 그래가지고 자기가 가면, 자기 하인한테 ‘네가 시계를 차라.’
양반이라고 시계를 안 차고, 하인한테 시계를 채워 보냈어요.
고종은 거기 외교관들을 불러서 테니스를 했어요. 구경을 하면서 ‘아니,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느냐? 저런 것은 하인들을 시키지 왜 땀을 저렇게 흘리느냐?’ 이런 나라였어요.
백성은 어땠느냐? 그러면.
백성은 이것도 거기, 일기에 쭉 나오는 얘기에요.
‘열심히 일하기보다 남의 수고에 얹혀살려고 했다. 조선 민족은 너무나 자립심이 부족하다.’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당시에 우리가 조선, 지금부터 120년 전, 130년 전의 조선이라는 것을 한 눈에 알 수가 있어요.
그러면 이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이 나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겠느냐?
이 사람은 철저한 기독교 신자였어요. 마지막까지 신앙을 놓치지 않았어요. 1946년에 돌아가셨나 그런데, 끝까지 신앙을 붙들고 계셨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일기에 쓴 것을 제가 읽어 드리겠습니다.
‘조선의 급선무는 국민의 지식과 견문을 넓히고, 도덕과 신의를 가르치며, 애국심을 기르는데 있다. 조선의 교육을 도와주며, 백성의 기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길은 예수교밖에 없다.’
이것이 1889년에 쓴 어떤 날의 일기에요.
그 다음에 아까 제가 조선 민족이 일하기 싫다는 것. 다 게을러서 백성이고, 양반이고 다 일을 안 하는 거야.
‘조선은 노동을 수치라고 안다. 노동은 수치가 아니라는 것을 배우고, 조선의 미래가 노동에 의존한다는 것을 배우고, 기독교는 노동의 종교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1895년에. 그 당시에 아무도 일하려 그러지 않았어요. 이 사람 돈이 많은 양반집이었어요. 그런데 자기가 열심히 도와주려고 자기 집에다가 벽돌 학교를 세우고, 개성인가 어디에서 학교를 세웠어요.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을 모아서, 우리 젊은이들을 모아서 일을 시키려고. 그래서 일을 시켜서 다 불러서 ‘여기 벽돌을 좀 쌓자.’ 그런데 조선 사람이 일을 안 해. 안 하는 거야.
‘왜 안 하느냐?’ 하니까 그 당시 일당을 아마 80전을 준 모양이에요. 일당이 적다고 일을 안 하는 거야. 조선 사람은.
그런데 누가 그러면 와서 일을 하느냐? 그 당시도 아마 중국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에요. 중국 사람들이 와서 다 일을 다 뺏은 거야.
그러니까 이 사람이 와서 통탄을 하는 거야. ‘아니, 어떻게 조선 젊은이들은 이렇게 일을 안 하느냐?’ 이거예요. ‘내가 너희들을 위해서 일자리를 만들었는데, 왜 이렇게 안 하느냐? 다 중국 사람한테 뺏기는 구나.’
지금도 사실은 마찬가지이죠. 지금도 우리 일자리, 젊은이 일자리 없다고 그러지만, 사실 눈높이만 조금 낮추면 일자리가 얼마든지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 젊은이들, 웬만한 일자리는 다 안 가려고 그래. 꼭 대기업 가야되고. 그런 것만 생각한다 이거예요.
나는 이런 것이 혹시 우리 피에 그런 것이 좀 내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좀 들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 사람의 생각은 무엇이냐? 이 사람은 유교라면 아주 치를 떨게 싫어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공산주의, 그러니까 일하기 싫어하고.
그래서 이 사람 얘기가 한국 사람은 ‘공산주의를 좋아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왜 그러냐? ‘일하기 싫어하고, 남이 한 것만 뺏어 먹으려고 그러니까 한국 사람은 체질적으로 공산주의가 하기 좋게 되어 있다’ 이렇게 쓰여 있어요.
공산주의라면 아주 싫어한단 말이에요. 이 사람은 자유, 그 다음에 인권, 그 다음에 개인의 개인주의, 평등. 이런 것이 가장 소중한 가치인데, 그런 가치는 기독교에서밖에는 구할 수가 없다. 그렇게 얘기를 한 사람이었어요.
그 다음에 이승만으로 한 번...
이승만은 그러면 어떻게 했을까? 이승만은 이것보다 한 10년, 20년 뒤에 활동했던 사람이에요.
이승만은 여러분이 잘 알지만, 1906년대 초반에 독립협회라는 것을 이 사람이 운동을 했어요. 그래서 감옥을 한 5년쯤 감옥에 갇혀 있었어요.
그런데 이 사람은 처음에는 과거를 보려고 준비했던 사람이요. 그런데 과거 가지고서는 이 나라를, ‘과거시험을 가지고서는 이 나라를 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신학문이라는 것에 대해서 눈을 떴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어디로 갔나? 배재중·고등학교를 다녔어요. 배재학교. 배재학교를 이 사람이 다녀서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야, 이것이 참 대한민국을 바꿔야, 조선을 바꿔야 되는데 어떻게 해야 되느냐?’ 조선은 민주주의 나라를 만들어야 된다. 공화주의.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은 지금 뭐죠? 헌법에 뭐라고 되어 있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이 사람이 110년 전에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나라와 공화주의 나라로 만들어야겠다.’ 하고 1900년에 이렇게 떠들고 다녔어요.
고종이 좋아하겠어요? 고종이 ‘아, 이놈 안 되겠구나.’ 해서 잡아넣었어요. 그래서 이 사람이 4년 한 반 동안을 형무소에, 유치장. 형무소에 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형무소에 가 있으면서 이승만이 기독교 신자로 완전히 바뀐 거예요. 물론, 배제학교 다닐 때 선교사의 설득도 있었지만,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래서 그 감옥생활을 이렇게 적어 놓은 책이 있는데. 이승만 전기 같은 것을 보면. 참으로 놀라워요.
왜 놀라우냐? 이 사람이, 이승만이 아침에 일어나면, 아침에 반드시 일어나면 기도를 하고, 그 다음에 하루 종일 성경을 읽고, 저녁에 자기 전에 또 기도를 하고. 이런 것을 계속 4년 반 동안을 계속 한 거예요.
그것만 했느냐? 안에서 성경번역을 했어요. 성경번역만 했느냐? 거기서 전도를 했어요. 전도를 했는데, 얼마나 전도의 폭발력이 있는데, 죄수들이 그냥 다 빠져 들어가는 거야. 그런데 죄수뿐이 아니고, 간수들도 다 와서 그 전도하는 것, 설교하는 것, 성경 말씀하는 것을 들었다. 이렇게 다 되어 있어요.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여기서 감옥소에서 40명을 소위 전도를 했대요. 완전히 하나님한테 오게 했어요. 그러니까 선교사들이 깜짝 놀란 거야. 아니, 자기들은 말이지요. 일본이나 중국에서 기독교 신자 한 사람 바꾸는 것이 그렇게 힘드는데, 이승만이라는 사람은 어떻게 감옥에서도 40명이나 이렇게 전도를 해서 이렇게 개종을 시키느냐 말이야. 그래서 굉장히 관심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승만의 마음에도 이 나라를 살리는 길은 뭘까? 하면서 자기가 매일 기도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기도하면서 이 사람이 독립심... ‘독립정신’이라는 책을 집필했는데, 거기가 구한말의 정세, 미국 독립선언서는 어떻게 내용이 무엇이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무엇이다. 이런 것을 쭉 했는데, 마지막, 맨 마지막 구절이 여기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한 번 사실증명을 위해서 읽어드리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가 썩고 쓰러진데서 일어나려면 기독교를 근본으로 삼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독교를 모든 일의 근원으로 삼아 나라를 위하고, 다른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되어야 된다. 우리나라를 영국이나 미국과 동등한 수준의 나라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해야 된다.’
이승만의 ‘독립정신’이라는 책 마지막의 결론이 이것입니다. 이거야.
그러니까 그 두, 우리 믿음의 선조. 저도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라고 해당할 수 있겠죠. 할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처음 믿음을 갖고 나라를 위해서 기도한 내용들이 사실은 이것과 일치한다. 제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기독교가 얼마나 그 당시, 썩어져 가는 조선에 얼마나 새 바람을 일으키고, 새로운 희망이었는지.
여러분, 함석헌 옹이라고 아시죠? 돌아가셨지만 함석헌 옹이 ‘뜻으로 본 한국사’라는 책을 썼습니다. 여러분도 아마 읽으신 분은 있을 거예요.
그 분이 그것에 대해서 또 쓴 게 있어요. 이 분이 그 책에 쓴 거예요.
‘찌질이도 못난 조선말 모두의 마음이 헛헛해지고 텅 비어 있을 때 고종과 민비는 무당을 들이고,’ 그러니까 무당을 그때 아마 무지하게 들였던 모양이야. 책마다 무당을 들였다는 얘기가 쓰여 있으니까.
‘곳곳에 선비는 말라비틀어진 유고를 붙들고 있을 때 기독교가 이 나라에 들어왔다. 새 정신이 들어온 것이다. 귀가 번쩍 뜨였다. 눈이 환해졌다. 그렇다. 5,000년 만에 들어온 새 정신이었다. 조선인 마음에 등불이 하나, 둘 켜지기 시작했다. 그 분이 점점 민중의 마음속에 퍼져갔다. 조선에서 가장 천대받던 평안도 민중으로부터 퍼져나갔다.’
기독교가 제일 처음 전파된 데가 평양으로 해서 평안북도로 선천, 이런 데로 올라갔잖아요.
‘그래서 평안도 민중으로부터 퍼져 나갔다. 기독교가 오지 않았다면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비틀어지고 베베 꼬인 깡마른 조선의 나무에 생명의 물이 초봄의 버들가지처럼 올라왔다.’
이것이 ‘뜻으로 본 한국사’에서 당시 우리 기독교가 하나님을 믿는 우리 이 믿음이 어떤 것, 조선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라는 것을 한 마디로 얘기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1912년을 보니까 1명도 없던 신자가 한 15년, 20년 만에 25만 명이 되고, 예배당이 500곳이 되고, 기독교 학교가 960개가 됐습니다.
그리고 모든 기독교, 교회에서는 뭘 가르치느냐? ‘놀음하면 안 된다, 술 마시면 안 된다, 담배피면 안 된다.’ 그 대신 조선 민족은 뭘 해야 되느냐? ‘금연해야 된다, 자립정신을 가져야 된다, 정직해야 된다, 교육을 시켜야 된다’ 이렇게 강조를 했어요.
윤치호가 그런 것과 연관되어서 무슨 얘기를 했느냐면, 우리 다 여성, 마리아 행전 아닙니까?
‘조선의 여성교육이 성공한 것은 예수 덕분이다.’ 그리고 또 ‘미국의 신앙과 돈이 없었다면, 누가 조선에 병원과 학교를 세웠겠는가!’
그러면서 기독교 당시 1800년대 말에서부터 1910년, 나라가 망할 때까지 우리 선조들은 이렇게 하나님 아래서 이렇게 기도를, 이런 기도를 하면서 사셨다. 하는 것을 제가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1910년 되면 나라가 망하잖아요. 일본한테 우리가 먹혔습니다. 그러면 ‘야, 이것 도대체 뭐냐? 기도가 도대체 어디 갔느냐? 그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했는데, 조선이 왜 망했느냐?’ 하고 물어볼 수가 있잖아요.
물론,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500년 동안 썩은 나라에서 단 10년, 단 20년에 그 나라가 힘이 있어질 수 있겠습니까? 안 되는 거야. 너무 시간이 없는 거야. 하나님이 이것을 생각하니까 불쌍해 이 나라가.
그래도 일본한테 먹힐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일본한테 먹혔습니다. 먹혔는데, 이 먹혀서 우리나라 백성들이, 기독교인들이 계속 3.1운동은 계속하지 않았어요? 3.1운동 33인 중에 16명이 기독교 신자였습니다.
하여튼 기독교 사람들은 그 당시 모든 교회, 학교, 병원,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 실력 양성하자. 나라를 뺏겼으니까 실력 양성하고, 우리 또 열심히 근면하고, 술 먹지 말고, 담배 먹지 말고 그 돈으로 애들 교육시키고 그렇게 하자. 그런 것 여러분 위에 우리 선조들이 다 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고 가다 보니까 일본은 더욱더 강해지는 것 같아. 만주를 침공하고 중-일 전쟁이 일어나서 중국을 막 침공해서 먹고, 태평양 전쟁까지 막 일으키는. 미국을 상대로 싸우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야, 이것 큰일 났구나. 일본이 영원히 조선을 지배할 것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어요. 탄압을 의심합니다.
그러니까 ‘아, 안 되겠구나. 얘들이 자꾸 회유를 하는데 어떻게 하나? 할 수 없지.’ 그냥 못 이긴 체 하고 할 수 없이 끌려가듯이 끌려갔던 사람이 윤치호 같은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결국은 해방 후에 친일이라고 몰렸던 것이 그런 것 때문입니다.
하여튼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는 아주 절망 상태에 빠져 있었어요. 모두가 다. 아무도 독립이 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정말로 뜻밖에 갑자기 하나님께서 우리한테 해방을 주신 거야. 미국한테 일본이 패배했기 때문에 우리한테 거저 해방을 갖다 준 거야.
최남선씨가 그때 이렇게 얘기했어요.
‘까마득하던 조국의 광복이 뜻밖에 얼른 실현되었다.’
우리 조상들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서 그렇게 기도를 했는데, 우리는 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이 뜻밖의 해방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해방을 주신 다음에 어떻게 됐습니까? 우리나라 독립이 됐죠. 독립이 된 다음에 1945년에서 1950년까지 나라가 어떻게 됐습니까?
1950년은 6.25입니다. 6.25 때 우리가, 이 나라가 완전히 뭉개졌어요. 그러면 이것 어떻게 합니까?
이 나라는 독립을 하나님이 진짜 뜻밖에 주셨는데, 우리가 그 독립을 잘 이용하지 못한 거야. 우리 잘못이야. 그런데 이때에 우리 조상은 어떻게 기도했을까?
제가 여러분, 손양원 목사님이라고 아시죠? 여수에서 애양원을 운영하시고. 문둥이 촌입니다. 문둥이라고 하면 안 되죠. 나병환자. 나병환자촌인데, 저도 가봤어요. 가봤는데, 거기 쫙 사진도 걸려있고 그런데, 진짜 목사님이 그 나병환자 발을 입으로 빨고 있어. 고름을 입으로 빨고 있어.
그렇게 하고 1941년에 우리나라 신사참배 거부했습니다. 목사님이라고 ‘난 안 한다.’ 해서 4년 동안 감옥소에 가 있었어요. 그리고 해방이 됐어. 기도를 얼마나 했겠어요? ‘이야, 잘 됐구나. 해방이 됐구나.’ 그런데 우리나라는 또 좌우로 갈라져서 싸우는 거야.
그래서 손양원 목사님이 그때 어떻게 기도했을까? 하는 것을 제가 손양원 목사님 저기를 한 번 봤습니다. 손양원 목사님 설교집이 있어요.
‘이제 해방이 됐으니 과거를 깨끗이 정리하고, 민족끼리 담합하여 우리 민족정신을 찾아 살아보자. 시기나 섬이나 땅파짓는 일이나 거짓말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지 않은가. 서로 불쌍히 여기고 도와가며 한 식구처럼, 내 집안처럼 살 수 있지 않은가.’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를 하면서 크리스천인은 어떻게 되느냐? 그러면 크리스천인에 대해서 이 사람이 한 얘기를 또 간단하게 읽겠습니다.
‘정계에 나간 기독자들’ 그러니까 크리스천인이죠. 기독자들은 기독교를 이용하려고만 말고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된 정치를 하고, 교육계에 나간 기독자는 학생들에게 지식만 가르치려 하지 말고, 지식의 근본인 여호와를 가르치고, 경제계에 나간 기독자는, 크리스천인은 자기 이익만 구하지 말고 정식한 상도를 세워 만인에 편의를 주는 일을 최선을 다하고, 의학에 나선 사람은 병자를 이용해서 돈 벌려고만 하지 말고, 의사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병으로 신음하는 이들을 고쳐주고, 위로해 주며, 육신병뿐 아니라 영혼의 병도 고쳐주고. 공무원들, 관공서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권세나 부리지 말고 만인의 종’ 공복이죠. 공무원. ‘만인의 종이 되어 봉사하기를 그리스도가 제자 발 씻기듯이 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되면 행복한 국가에 이를 것이다.’
이것이 그 당시 손양원 목사님의 기도, 설교예요. 설교집에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도를 이렇게 꼭 하셨을 거야. 손양원 목사님은.
그런데 6.25가 났습니다. 6.25가 발발이 됐어요. 6.25 발발 전에 여러분, 여수반란사건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수반란사건’은 간단히 얘기하면, 제주도에서 4.3 폭동사태라는 것이 있어서 공산주의자들이 거기서 반란을 일으켰어요. 여수에 있던 부대를 16연대를 제주도에 보내기로 했어요. 진압을 하려고. 그래서 그 16연대 장교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야. 공산주의자들이어서.
그런데 그때 이 반란군에 의해서 아들 2명이 순교를 당해요. 그래서 아들 2명을 다 잃었어. 첫째 아들, 둘째 아들 다 총살을 당했어. 자기 친구들한테. 공산주의자를 신봉하는 친구들한테.
그런데 그 양반 거기 써 놓은 것 보니까 여덟 가지, 자기가 여덟 가지 감사를 쭉 써놨어요. 그런데 왜? 뭐가 감사하느냐?
‘이렇게 죄인의 세대에 태어난 우리가 순교할 수 있는 가족으로 만들어지니 얼마나 감사하느냐?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첫째 아들, 둘째 아들을 순교하니 이것 얼마나 큰 복이냐?’
또 셋째, 얘가 미국을 가려고 준비를 했는데 아들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얼마나 감사하느냐. 다섯째, 내가 이 새 아들을... 그러니까 아들을 쏴 죽은 아들을 자기 양아들을 삼았어요. ‘내가 새 아들을 얻었으니 이 어찌 감사하지 않으냐?’
여덟 가지 감사를 적어서 매일 그것 놓고 기도를 올렸어요. 그것이 여러분, 지금 여수 엑스포 가시면, 거기 한 번 들려보세요. 거기 가면 다 보실 수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그 당시에 6.25 전에 그런 우리나라를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6.25가 났습니다. 그런 기도에도 불구하고 6.25가 났어. ‘왜 6.25가 났습니까?’, ‘왜 전쟁이 났습니까?’
우리가 정치적으로는 여러 해석을 할 수가 있어요. 미국이 우리나라에서 빠지려고 그랬습니다. 그래서 미군들이 다 철수했어요. 그러니까 북한이나 소련이나 중국에서 ‘아, 이럴 때 내려가면 되겠다.’ 해서 내려왔습니다. 전쟁이 터진 거예요. 김일성이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여수에서 혼자 남아 있었어요. 어디 가지도 않고. 그러면서 그 기도를 했습니다. 이 사람이 그때 저기 한 것이 있어. 기도한 것이 있어. 6.25가 일어난 후 9월 23일에. 그러니까 서울이 수복되기 바로 전에 기도를 했는, 설교를 했는데.
‘국가적으로는 수도 서울을 빼앗기고, 교회적으로는 성전을 다 잃었으니 이 어찌 한심한 일이 아니냐. 이것이 왜 이러느냐? 우리가 내가 오늘 이 죄악성, 우리의 죄악성을 말하면, 우익이나 좌익에게나 정치가에게나 경관에게나 미국인에게나 교역자나 교인에게나 매 맞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어찌 하나님 명령인데 전하지 않겠느냐?’
하면서 네 가지 조약을 이 사람이 얘기했습니다. 무엇이냐?
‘국가 지도자들이 범죄한 결과다.’ 이렇게 하면서 국가 지도자들 문제라고 그러고.
‘그 다음에 한국 민족이 범죄한 결과다.’ 라고 얘기를 했습니다.
하여튼 우리는 민족이 그렇게 역경을 거쳤는데도 정신을 못 차렸기 때문에 6.25를 맞았습니다. 6.25 후에 우리나라가 어떻게 됐습니까? 그 다음에는 우리나라가 다행히 6.25 이후부터 이제 올라가게 됐습니다. 올라가서 미국과 상호안보조약을 맺었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안보가 튼튼해졌어요. 여러분 다 아시죠. 지금부터는 현대사에 해당하니까.
우리나라 안보가 튼튼해졌어요. 그 안보 튼튼한 것 바탕으로 해서 우리나라 경제가 지금 일어났어요. 지금 우리나라 경제가 지금 어떻습니까? 세계 10위권 경제국이 됐어요. 그때는 70달러. 아프리카, 가나하고 비슷한 나라였는데, 지금 50년 만에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국가에요. 세계에서 아무도 이런 나라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것은 어떻게 이것이 됐느냐?
하나님의 기도. 그 당시, 선조 때부터 기도, 기도가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다. 경제가 발전이 되니까 그 다음에 우리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가 민주화, 경제, 그 다음에 안보, 이것이 차례차례 이룬 나라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밖에 없다. 이렇게 말할 수가 있겠습니다.
제가 결론을 내겠습니다. 이러면서 제가 이런 우리 한국 현대사를 보면서 ‘참, 하나님 뜻이 참 굉장하구나. 하나님은 진짜 우리가 모르지만, 우리에게 앞서 가시는 하나님이시구나. 우리를 앞서 가서 내가 내게 천사를 보내 내가 가는 길에 내내 너를 보호하고, 내가 준비한 곳으로 너를 데려갈 것이다.’ 라고 ‘출애굽기’에 말씀을 하셨듯이 ‘우리나라 앞서서, 하나님이 앞서서 우리를 좀 데려가셨다.’ 하는 얘기를 하나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은 기다려 주시는 하나님이시다.’ 왜? 우리가 지금 일제 때나 그 다음에 1945년에서 1950년이나 이때 보면, 우리가 준비가 안 됐어요. 독립할 준비가 안 되었어요. 독립은 했지만 서로 싸웠어요. 우리가 아무 능력이 없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은 ‘너희들이 능력이 생길 때까지 도와, 기다려 주겠다.’ 그것은 마치 무엇이냐? ‘출애굽기 23장 29절’에 보면, ‘내가 그들을 1년 내에 내쫓지 않을 것이다.’
그때 가난으로 들어가는 것 아니에요. 왜? 하나님이 기다리는 거야. 이 이스라엘 민족이 준비가 안 되면, 완전히 내쫓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그러면 너희들이 감당을 못한다.’ 왜 못하느냐? ‘땅이 황폐해지고 들짐승이 많아서 그렇다. 내가 그들 앞에 조금씩 네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서 결국의 너희 수가 늘어나 그 땅을 다시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우리의 능력이, 우리의 힘이 기다려지기, 준비되지기를 기다려줍니다. 기다려서 우리가 준비가 되면, 그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를 쓰신다. 그런 말씀을 제가 드리고 싶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면, 기도,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해야 되겠습니까? 제가 네 가지만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아까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하나님은 한국을 내 보물이 될 것이다.’ 라고 저는 말씀... 이미 말씀하셨고, 지켜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대한민국이 지금 어떻게 되어 있습니까? 대한민국이 지금 굉장히 어지럽습니다. 우선, 북한이 굉장히 어지러워서 김정은이가 미사일 발사, 핵 준비해. 이것이 지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 테러가 있을지, 아니면 연평도 같은 그런 포격이 있을지, 아무것도 지금 누구도 예측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외부적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 굉장히 위험합니다.
두 번째,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위험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잖아요. 지금 주사파, 북한 간첩 경력 있는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국회에 들어가니, 안 되니 이런 것 가지고 지금 막 싸우잖아요. 어떻게 대한민국에서 간첩 경력 가진 사람이 국회의원이 될 수가 있습니까?
이것을 지금까지 누가 막지 못했습니까? 지금 이 나라가,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참 보물이 되어야 될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 굉장히 위험에 빠져 있다 이거예요.
그래서 나는 첫째 ‘우리 대한민국을 지켜주십시오.’ 하고 기도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우리 정신이 좀 새로워져야 되겠어요. 이것 아까도 계속 다른 목사님들 우리 말씀하셨지만, 지금 경제위기 아닙니까? 경제위기가 왜 왔습니까? 유럽에서. 일 안 하고 놀려고 해서 사실은 경제위기가 온 거예요. 복지병이에요. 복지병.
우리 옛날 조선 사람들이 일 안 하려고 하고, 친척들한테 기대 살려고 그랬는데, 지금은 친척 대신에 나라에 기대 살려고 그런다 이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러면 안 된다 이거예요. 정신이 똑발라야 돼. 부지런해야 돼. 부지런하고, 근면하고, 절약하고, 성실하고, 이런 정신이 우리가 계승되어야 되겠다. ‘우리 정신을 좀 차리게 해 주십시오.’ 이것 두 번째, 여러분이 기도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셋째, ‘사회통합을 좀 이루어야 되겠다.’ 왜 그러냐?
너무 이 나라가 분열이 되어 있어. 너무 분열이 되어 있어. 그것은 세계경제가 지금 이렇게 다 국경이 터져서 세계화 때문에 경쟁이 너무 심해서 제일 잘난 놈만 먹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1%만 모든 것을 먹고, 99%는 먹을 수가 없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1% 대 99%다.’ 이렇게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가진 사람은 더 가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되면, 사회가 분열이 되는 거야. 그런 분열 속에서 간첩출신 같은 사람이 국회의원 되려고 나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그런 것을 막아야 돼. 사회통합을 이루어야 돼.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우리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야 돼. 예수님 정신으로 돌아가야 돼. 가진 사람, 부자, 많이 배운 사람, 그런 사람들이 더 겸손하고, 봉사하고, 더 도와주고, 그런 마음이 있어야 된다 이거예요.
사치하지 말아야 돼. 조금만 잘 살면, 부자면, 교육을 많이 받았으면 얼마나 교만합니까? 그리고 얼마나 다른 사람을 많이 마음에 상처를 줍니까? 우리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부터가 좀 그러지 맙시다. 그래야 이 사회가 통합이 되는 거야. 크리스쳔인부터 그러지 말자. 이것입니다.
넷째, ‘미래세대를 잘 길러야 됩니다.’
지금 일본이 망하고 있습니다. 젊은 애들이 다 정신이 썩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에요. 미국도 지금 무슨 오바마 대통령이 동성연애를 지금 허용한다, 어쩐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나라가 지금, 기독교가 지금 다 무너지고 있어요. 한국이 그래도 살아 있는 나라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미래세대를 여기서 잘 길러야 돼. 우리가 잘 길러야 걔들이 우리나라를 끌고 가고, 걔들을 바탕으로 해서 중국도 우리가 선교 나갈 수 있고. 또 동남아에서도 한국을 못 배워서 야단인데, 동남아에도 나가고, 중앙아시아에서도 나가고. 우리가 모두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지도자의 각성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지도자가 각성해야 돼. 우리 백성들은 지도자 따라가는 거잖아요. 주로. 그러니까 앞에서 잘 이끌어주셔야 돼요. 그러니까 우리 지도자를 위해서 기도를 해야 되겠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너무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제가 말씀을 드리고, 오늘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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