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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밝은 지혜/ -도학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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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마르칸트 2014. 7. 26.

◇셋. 영귀관(榮貴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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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경에서 이르시기를 아무리 네필 말이 끄는 수레로 가득하게 아름드리 구슬이 있다한들 도()에 앉아서 전진하는 것만 못하다. 공자는 말씀하시길 부자와 귀한 벼슬에 오르는 것은 사람마다 바라는 것이지만 도()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면, 그곳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오진(悟眞)편에서 이르시길, 대도(大道)로 이루어지는 이외의 것들은 미욱한

사는 세월도 돌을 부딪혀서 불이 번쩍이는 것과 같으며 사람의 일평생 은 마치 물거품이 뜨는 것과도 같다.

이익과 녹을 탐하고 영화와 현단을 구하느라 자기의 형체와 용모가 어두워 지고 병들고 몸이 마르는 것을 돌아보지 아니한다. 시험삼아 질문하건대 금을 쌓아 모아둔 것이 큰산과 같은데 한번도 사러오는 사람이 없으니 결국에는 모든 것이 없어지게 된다.

구조(邱祖)는 말씀하기를 마음으로 안정을 하면 공적인 벼슬을 즐기지 아니 하며 사람의 심성이 안정되면 강하기가 십리의 성벽과 같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도의를 가지고 귀중함을 삼아야 하는데 부귀와 영화를 탐하니 이러한 생각은 옳지 않다는 것을 가리킨다.

무릇 영화와 부귀에는 천작(天爵)의 부귀와 영화가 있고 사람이 서로 주고 받는 인작(人爵)의 영화와 부귀가 있다. 천작이라는 것은 도덕(道德)과 인의(仁義)를 말하며 인작자는 공명(功名)과 녹(錄)과 벼슬을 말한다. 인작을 구하는 사람들은 글을 열심히 읽고 다스리기를 쓰라리게 해서 고초스러운 마음으로 십년 동안이나 찬 바람나는 창문에서 밤낮으로 공덕을 쌓아서 활용하니,잠자는 것도 잊어버리고 밥먹는 것도 잊어버려서 거기에 허비되는 것이 다소 과하다는 것도 알지 아니하고 마음의 생각이 소모됨이 심하다 는 것도 알지 못한다.

비록 공명(功名)을 얻었다 해도 여기에는 크고 작은 것이 있고 또한 반드시라는 것이 없어서 혹 태어날 때에는 우수하여 바탕이 있더라도 과거에 나아가서는 이것이 발휘되지 못하기도 하여 등과하지 못하며, 혹 과거에 등과 하더라도 능히 앞으로 전진하지 못하며, 능히 회통하여 전진한다 하여도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기도 하며, 벼슬에 오른다고 해도 실수를 하다든지 사망 한다든지 여타의 일로 가히 보존하기가 어려우며, 이같이 어려우니 정신이 소모하고 기운과 혈액이 흩어져 버리기도 하니 참뜻을 가지고 거짓 뜻으로 바꾸어서 이 헛된 명예만 도모하고 있으며 영화가 어느 곳에 있을 것이고 귀중한 벼슬이 어느 곳에 있을 것인가.

공명이 있다고 할지라도 얻지를 못한다. 병이 들게 되고 과로해서 상하게 되니 일찍이 담이 끓고 숨이 가쁘고 기운이 재촉되고 몸놀림이 어렵고 어려우며 자기의 심성과 생명도 보존치 못한다. 어찌 가히 슬프고 탄식하지 아니 하리요.

소위 말하는 영화와 부귀라 하는 것은 앉는 것으로 친다면 교좌에 앉는 것에 불과하고, 타는 것으로 친다면 고급 승용차의 뒷자석에 편히 앉는 것이고, 의복에 비유한다면 고운 비단과 주단을 입는 것이며, 먹는 것이라면 신선한 야채와 온갖 산해진미를 차려서 먹는 것에 불과한 것이다.

한낱 헛되이 자기 몸과 외양을 꾸미고 입과 배만 충족시키면 공연히 남에게 허울만 좋게 비칠 뿐이다. 자기 몸과 마음을 살려본다면 크게 손상이 되니 복을 받는 다는 것은 명백히 되지 아니하며 벼슬을 한들 언젠가는 그 권좌에서 물러날 때가 있는 것이어늘 그 시기에 이르러서는 부귀도 믿을 수 없다. 결국 영화와 부귀가 없는 사람과 더불어 죽음의 길을 재촉하게 되니 영화와 부귀인들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하늘이 주는 벼슬인 천작을 잘 수련하는 사람은 인의(仁義)를 배불리 먹고, 도덕의 맛을 잘 보아서 이 세상에 뜬 허영의 영화를 거두어 들여서 질박하고 진실한 곳으로 나아가게 된다.

정신을 잘 길러서 정기를 잘 기른다. 덕성을 존중해서 학문하는 것을 다스려서 참 진실함으로서 거짓을 가지고 일을 도모함을 즐기지 아니하고 이세상의 부귀 외에 고초를 가지고서 즐거움을 삼기를 즐기지 아니한다.

자기 하나를 지극히 존경하고 귀중하게 여겨서 자기의 심성과 신체가 있음을 만족하게 여기고 스스로 가득하게 여긴다.

임금의 총애를 받는 다든지 다른 사람에게 욕당함이 자기 몸에 이르지 않게 하고, 자기 허물 하는 것과 자기 칭찬하는 것을 자기 몸에 더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천지조화에도 능히 거리낄 것이 없고 음양의 기운이라도 나를 옮기지 못할 것이며 길하고 흉한 것도 내 몸에 가까이 오지 못해서 본래의 근원의 면목을 완성하게 되니 하늘과 땅도 기뻐하고 희열하게 되고 귀신들도 존경해서 복종 하게 된다.

하늘이 주는 의복 신선이 입는 의복을 입고서 하늘의 녹을 먹게 되고 자기의 본래의 천수를 향유하게 되니 영화와 부귀가 영원히 자기에게 존속이 된다.

이 티끌 세상에 서리 내리고 이슬 내리는 그런 영화와 부귀에 비교한다면 어찌 구름과 진흙바닥에 차이가 있으리요.

나는 권유하나니 진심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속히 티끌 세상에 헛되고 거짓 되는 영화와 부귀의 관문의 출입구를 깨뜨리고 소통시켜서 이 세상을 초월한 참진정한 영화와 부귀의 사업 짓기를 좋아하여야 할 것이다.

이 티끌 세상에 영화와 부귀의 관문의 출입구는 이 세상의 영화와 부귀를 피하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영화와 부귀의 그 경우를 취하는 그곳에서 부귀를 탐하지 아니하는 진실한 공부를 잘 하여야 함을 뜻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화와 부귀에 거처하면서 영화와 부귀를 믿고 있고 혹 어떤 이는 영화와 부귀에 거처하면서 영화와 부귀를 탐한다.

어떤 이는 영화와 부귀로 나아서 영화와 부귀를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혹 어떤 이는 영화와 부귀를 보고서 이것이 영화와 부귀임을 알며 혹 어떤 이는 화와 부귀를 하는 사람을 만나 아첨하고 잘 보여서 부귀 하고자 하는 것은 다 일찍이 관문의 출입구의 고초스러운 것을 타파하고 소통해서 참 진실로 깨닫지를 못한 때문이라.

영화와 부귀라는 것은 능히 사람의 심성을 어지럽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며, 사람의 기운을 교만하게 하고, 사람의 덕을 피폐하게 하며, 능히 사람에게 악한 짓을 하게 하고,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하며, 사람의 생명 을 죽이게 된다.

영화와 부귀는 고초스러운 것이며, 불구덩이가 되는 것이며, 진흙 길과 같으니 바야흐로 관문의 출입구를 타파해서 통달하게 하면 이로써 영화와 부귀 속에 드나들되 이러한 영화와 부귀에 빠져서 상처를 입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사람이 영화와 부귀의 바탕 속에 있으면서도 도를 잃지 아니한 사람은 포천이라는 사람과 회남자(淮南子) 동방삭(東方朔)과 허정양(許旌陽)이라는 사람과 매진인(梅眞人) 갈선옹(葛仙翁)과 포박자(抱樸子)와 나장원(羅狀元) 같은 분들이 있었으니 크게 조정에 은거해 있으면서 큰 대사를 성취하였다. 대개 인연이라는 것은 일찍이 적실함을 보아서 그 학식을 여름에는 표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큰 불 속에 있으면서도 연꽃을 키울 수 있고 진흙물 속에 배를 띄워서 이 세상의 법을 빌려서 도법(道法)을 잘 수련해서 어지러움을 휘어잡고 검어지게 하고 거스르고 순하게 하는 것이지만 이 세상 사람들은 미쳐 영화와 부귀를 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측량도 못하는 것이라.

이 세상을 출세하고 싶은 사람이 필요한 것은 영화와 부귀를 간파하는 것이 아니다. 곧이세상의 들어간 사람들이 능히 이 영화와 부귀를 간파를 하면 자연히 개개인의 숙연이 있게 되어서 그 뜻을 얻게 되는 것이다. 임금에 충성하고 국민을 사랑하고 아끼기를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첫 번째 의 대사를 경륜해서 미루어서 추출하는 것이니, 결코 헛된 벼슬을 하고 일없이 먹는 그런 사람과는 다른 것이다.

자기의 뜻을 얻지 못한즉 홀로 그 몸을 스스로 닦아서 도를 수련해서 득을 세우고 자기의 품행을 높게 초월하게 되니,혼탁한 세상에서 용렬스럽고 어리석은 사람들과 같지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이윤이라는 분은 탕왕을 도왔으되 영화와 부귀를 도모하지는 아니하였다.

대개 도덕으로서 국민들을 깨닫게 함이었다. 공자는 모든 열국 나라를 두루 유세하였고 맹자가 제후나라 모두에서 유식 하심은, 이 세상의 영화와 부귀를 구하려 함이 아니라 그 도덕을 실행해서 세상을 구하게 하고자 함이라.

장자와 주자에 이르기까지 영화와 부귀를 탐하지 아니해서 가히 벼슬할만한 즉 벼슬하였고 가히 멈출만한 즉 멈추었으니 예전부터 대 성인과 성현들은 다 이 도덕으로서 귀중함을 삼았지 영화와 부귀에 뜻을 둔 것은 아닌 것이다.

이 세상에서 호도하는 그런 학인 들은 영화와 부귀속에 빠지되 이를 초월 하지는 못하였다.

혹 어떤 이는 영화와 부귀를 즐기며 그 속에 빠져서 절실하게 영위를 아니했으며 혹 어떤 이는 자기 영화와 부귀를 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 영화와 부귀를 부러워하고 사모하였다.

혹 어떤 이는 세상에 세력을 펴고 이익을 많이 누리고 있는 가문과 결탁하여 이익을 도모하였고, 혹 어떤 이는 공후의 문전을 내왕하면서 자기의 영화를 삼았고, 영화와 부귀를 탐을 내었다. 또한 도를 닦는다 하여도 미혹하고 어둡고 간사한 생각이 자기 머리속을 어지럽혀서 동쪽에 재촉하고 서쪽에 가서 건져내었으니 녹녹한 한 세상에서 늙을 때까지 아무 성공이 없다 한들 괴이할 것이 없는 것이다.

내가 권유하나니 참 마음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속히 이 세상을 걸어가는 길에 영화와 부귀의 관문의 출입구를 깨뜨리고 통달해서 영화와 부귀에 거처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영화와 부귀라는 것을 잊어버리게 하고 영화와 부귀가 없는 사람들도 영화와 부귀를 부러워하지 말게 해서 도를 밝힘으로서 부귀로 삼고 도를 이루고 성도 함으로서 영화를 삼으면 자기의 뜻과 생각이 참 진실한 것에 돌아가니 앞길에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아니하면 거짓된 영화와 부귀로서 참 영화와 부귀가 된다라고 하니 영위의 한 생각으로 자기 몸과 마음속에 생각으로 맺게 되어서 자기의 신령스러운 영위를 막아버리게 되고 망상을 하게 되니 도를 밝힌다는 것은 어려운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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