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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 -600-800; 수,당

[661-662년] 고-당전쟁;사수대전2

by 사마르칸트 2016. 3. 16.

20년(661)


여름 4월에

임아상(任雅相)을 패강도행군총관으로,
계필하력을 요동도 행군총관으로,

소정방을 평양도 행군총관으로 삼아,

소사업 및 여러 오랑캐 군사와 함께

무릇 35군이 수륙으로 길을 나누어 일제히 전진하게 하였다.



-가을 8월에 소정방이우리 군사를 패강에서 깨뜨려

마읍산(馬邑山)을 빼앗고 마침내 평양성을 포위하였다.


- 9월에

연개소문은 그 아들 남생(男生)을 보내 정예군 수만 명으로써 압록수를 지키게 하였으므로

여러 군대가 건너 올 수 없었다.

계필하력이 수십리를 뒤쫓아 우리 군사 3만 명을 죽였으며

나머지 무리는 모두 항복하고 남생은 겨우 죽음을 면하였다.

마침 군사를 돌리라는 조서가 내려져 이리하여 그들은 돌아갔다.


-21년(662)

봄 정월에

좌효위장군 백주(白州) 자사 옥저도총관 방효태(龐孝泰)가

사수(蛇水)가에서 연개소문과 싸웠는데, 전군이 몰락하고 그 아들 13명과 함께 모두 전사하였다.


소정방이 평양을 포위하였으나 마침 큰 눈이 와서 포위를 풀고 물러 갔다.

무릇 전후에 걸친 행군에서 모두 큰 성과없이 물러 갔다.


->뜬금없는 기록의 연속이다.


35군 200만대군이 고구려를 정벌하는데...

8월 느닷없는 소정방의 평양포위...

9월 계필하력이 뜬금없이 압록수에 나타나...남생을 이겼는데...또 뜬금없는 퇴각..

다음해 방효태가 연개소문에게 떼죽음...

소정방이 평양포위를 풀고 퇴각..


->소정방이 661년 8월부터 662년 봄까지 무려

장장 반년 동안 평양성을 포위했는데..


연개소문은 평양의 포위를 풀 생각은 없고..

남생에게 압록수로 출정시킨다.

평양이 포위되었는데...거꾸로 압록수로 병력을 보내다니..


연개소문도 평양으로 진군하지 않고..

사수에서 방효태만 작살낸다.


-이것이 말이 되남...

-역사학계의 해설을 읽어보면...온통 뒤죽 박죽이다.





[사실적인 시나리오]


-당이 침략하자... 늘 그렇듯

연개소문은 신성에 출정해서

당나라군을 맞이 할 준비를 한다.


-그런데 교활하게도

백제가 패망한 이후

[백제 패망시에도 당군은 요동을 공격함으로써..요동의 고구려 주력을 묶는다.]

주력군을 백제와 신라땅에 보내 남에서 북으로 쳐들어 간다.


-계필하력군은 요동의 고구려주력군의 발을 묶는 역할정도...

-요동도총관은 요동으로 진군하는 병력이다.

[벼슬이름을 보면 진군로가 보인다.]


-661,8

소정방이 바다건너 평양으로 진격하여 포위함...


-661,8 평양성이 포위되었다는 보고를 받음...

연개소문은 남생에게 요동방어를 맡기고 남하했을 것이다.


-661,9

계필하력이 압록수[요수]에 다다라...강을 도하하자..

남생이 요격함..

-이 전투의 승패는 알수 없지만..[아마 기록의 반대상황일수도...]

계필하력이 요동의 성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물러간 걸로 보아 패전했거나,

적은 군사로 요동성을 공격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므로 퇴각 한것임..

나름 견제작전은 성공함...


[요수의 동쪽 지류가 압록수라는 증거는

너무 많아...헤아리기 힘들 정도이다.

현재의 압록강[오골강]과 압록수를 구분 할것...]



-계필하력이 압록수로 왔다기에...

어떤이는 요동성을 우회했다고 주장...그건 백만정도는 되야 가능한 작전..

어떤이는 압록강에 상륙했다는 주장...그냥 평양가지 왜...

이런 엉터리 주장이 넘친다.

여기서 압록수는 요하의 지류이다...

계필하력은 요동성 근처도 오지 못했다.

그냥 주력군을 묶는 정도의 역할...




662,1


-당나라의 원래 계획은 소정방의 수군과


신라에서 출발하는


육군이 동시에 평양성으로 진군하는 것인데...


-남쪽에서 북으로 침공할 당군의 행군날이 많이 늦었다.

-아마도 백제땅에 무슨 문제가 생겼을 것...


-패강도총관의 행적은 사라진다.

북상하다가 고구려 수비군에게 몰살당한듯...


-옥저도총관 방효태는 우회하여

평양으로 진군하다가

사수가에서 연개소문에게 걸려...전멸한다.


-평양을 포위한

소정방군은

아무리 기달려도 당육군은 도착하지 않고..

이윽고

군량이 떨어지고..

사방에 고구려 군이라

전진도, 후퇴도 못하고..

급히 김유신이 군량을 끌고 간다....


-다행이 아사를 면한 소정방군은 혈로를 열고 고구려를 탈출한다.


-신라의 식량을 받고...힘내서 평양성을 공격한 게 아니고...

힘내서 포위 뚫고 도망갔다는 역사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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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록에서 평양성은 전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평양성이 수개월 동안 포위를 당했는데도...

연개소문은

침입한 적을 죽이기에 바쁘고..

평양성을 직접 구하지 않는다...


->진짜 평양성이 도읍이었다면 만사제쳐두고...

평양성으로 달려갔어야 됐다.


평양은 중요성이 떨어지는 곳이라는 느낌...


지금의 평양은 고구려의 도읍이 아니라는 반증...


고구려의 주력이 요동...천리먼곳에 있는데..


외로이 먼곳에 도읍을 둘리가 없다.


요동군을 지휘하기에도 너무 멀다....


잘 나가는 신라의 경계와 너무 가깝다...


평양성이 포위되어도 별로 신경도 안쓴다.


후반기 고구려 도읍은


봉황성이라는 반증....





---그런데 왜 엉뚱한 평양을 집중공격했을까...


고구려 영류왕때 당나라에게


고구려 지도를 갖다바친적이 있는데...


당시 지도 제작기술상...


엉터리지도였을 가능성..


고의로 엉뚱한 곳을 그렸을 가능성...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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