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해상도 좋은 사진이
모언론사를 통해 나왔다.
[설명]평안남도 용강군에 있는 점제현신사비.
1914년 조선총독부 고적 조사단이 발견했으며
낙랑군에 소속된 점제현의 장(長)이 산신에게 제사드리는 내용을 새겼다.
서기 85년경에 세워진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비석이다.
->1번 비석의 부분을 보면... 비석의 옆면까지
아주 깨끗하게 이끼를 제거하고...
탁본을 먹인 상태...
-그러므로 이끼가 덜 제거되어 글자가 안보였다는 주장은
근거 없음....
->3번..왜 비스듬하게 세웠을까...
-아래와 같은 탁본 사진을 찍기 위해...
-당시 사진기가 별로 였을 테니..
->2,4번 땅의 상태로 보건데...
방금 팠거나, 얼마 안 된 상태이다.
주변의 잡초가 없는 것으로 보아... 땅을 정리했다.
-아무리 봐도
비석이 이렇게 대충 흙속에 서 있는 경우는 없다...
-비석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몰라도...
흙속에 장기간 안정적으로 묻혀있을려면...
비석길이의 1/3은 흙속에 파묻어야 겠다.
-이 사진의 상태는 비석의 끝부분만 살짝 묻혀있다.
비석 뒷쪽은 흙으로 안 넘어지게 다져놓았다.
-이 상태의 비석이 무슨 수천년 동안 이 자리에 있던
비석이라고 주장하는지...
-비오면 금방 넘어지겠다.
-비석은 크지 않다...
성인 2-3명이면 충분히 옮길수 있겠다.
-비석의 기단도 없다..
서 있는 모습이 위태로와 보인다...
즉 이 비석은 이 자리에 죽 있든 비석이 아니다.
들어 옮겨서..
사진을 찍기 위해 대충 세운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비석은 이곳이 점제현이라는 증거로는
불충분하다.
왜..들어 옮기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
-이 비석은 일제치하 왜놈들이 발견했단다...
[현대 일본은 일본이지만, 일제치하 일본은 왜놈일뿐이다.]
이 왜놈이 우리나라 역사계의 태두라는 분의 스승이란다.
-우리문화재를 도굴하고, 밀반출하던
일제치하 왜놈과 그 앞잡이들...
-우리나라가 프랑스만 같아서도...
이들이 이때까지 큰소리 치고 살지는 못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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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제현은 무엇인가...
한서지리지에 보면...
고대 낙랑군에 점제현이라는 지역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이 비석이 발견된
한반도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증거로 내세운다....
-우리나라 고대사의 증거는
대부분 일제치하 왜놈들이 발견한다...
-그 보다 수백년전에...직접 요동에 간...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보면...
지금의 요양 부근에 낙랑군의 치소가 있었다고...
그 지역 주민들이 이야기 한다....
-다른 것은 옮길 수 있어도...
지역주민들의 증언은 옮길수 없었겠지...
목격자가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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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우기 웃기는 것은
고구려 대무신왕이 침략한 낙랑국이
낙랑군의 일부란다....
낙랑군은 왕이 다스리는 곳이 아니다.
그냥 한나라의 지방관리...태수가 다스리는 지역이다.
낙랑국은 전혀 다른 고대국가이다.
한나라의 지방태수가 허락없이... 왕이라고 내세운다면...
토벌을 당했겠지...
-우리나라 고대사는 언제 진실 된 모습을 찾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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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幽州)
⑩ 낙랑군(樂浪郡)
樂浪郡, 武帝元封三年開. 莽曰樂鮮. 屬幽州.[1] 戸六萬二千八百一十二, 口四十萬六千七百四十八. 有雲鄣. 縣二十五. 朝鮮,[2] 䛁邯,[3] 浿水, 水西至増地, 入海. 莽曰樂鮮亭.[4] 含資, 帶水西至帶方, 入海. 黏蟬,[5] 遂成, 增地, 莽曰增土. 帶方, 駟望, 海㝠, 莽曰海桓. 列口, 長岑, 屯有, 昭明, 南部都尉治. 鏤方, 提奚, 渾彌,[6] 吞列, 分黎山, 列水所出, 西至黏蟬, 入海, 行八百二十里. 東暆,[7] 不而, 東部都尉治. 蠶台,[8] 華麗, 邪頭昧,[9] 前莫, 夫租.
낙랑군(樂浪郡), 무제(武帝) 원봉(元封) 3년에 열었다. 왕망은 낙선(樂鮮)이라 했다. 유주(幽州)에 속한다.[1] 가구수는 6,2812이고 인구수는 40,6748명이다. 운장(雲鄣)이 있다. 현은 25개이다.
1) 조선현(朝鮮縣),[2]
2) 염감현(䛁邯縣),[3]
3) 패수현(浿水縣), 패수(水)가 서쪽으로 증지현(増地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왕망은 락선정(樂鮮亭)이라고 했다.[4]
4) 함자현(含資縣), 대수(帶水)가 서쪽으로 대방현(帶方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5) 점선현(黏蟬縣),[5] ;이곳이 바로 점제현....
즉 점제현 비석이 있으면..이곳이 낙랑군이라는 증거....
그런데 오늘 심은 비석인데...
6) 수성현(遂成縣),
7) 증지현(增地縣), 망(莽)은 증토(增土)라 했다.
8) 대방현(帶方縣),
9) 사망현(駟望縣),
10) 해명현(海㝠縣), 망(莽)은 해환(海桓)이라 했다.
11) 렬구현(列口縣),
12) 장잠현(長岑縣),
13) 둔유현(屯有縣),
14) 소명현(昭明縣), 남부도위(南部都尉)가 다스린다.
15) 루방현(鏤方縣),
16) 제해현(提奚縣),
17) 혼미현(渾彌縣),[6]
18) 탄렬현(吞列縣), 분려산(分黎山)이 있는데 렬수(列水)가 이곳에서 나와서 서쪽으로 점선현(黏蟬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가며 820리를 흐른다.
19) 동이현(東暆縣),[7]
20) 부이현(不而縣), 동부도위(東部都尉)가 다스린다.
21) 잠태현(蠶台縣),[8]
22) 화려현(華麗縣),
23) 사두매현(邪頭昧縣),[9]
24) 전막현(前莫縣),
25) 부조현(夫租縣).
[1] 應劭曰故朝鮮國也師古曰樂音洛浪音狼. 응초(應劭)는 옛 조선국이라고 했다 사고(師古)는 樂의 음이 락(洛)이고 浪의 음은 랑(狼)이라 했다.
[2] 應劭曰武王封箕子於朝鮮. 응초(應劭)가 말하기를 무왕(武王)이 기자(箕子)를 조선(朝鮮)에 봉했다고 했다.
[3] 孟康曰䛁音男師古曰䛁音乃甘反邯音酣. 맹강(孟康)이 말하기를 䛁의 음은 남(男)이라고 했다.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䛁의 음은 남(乃甘反)이고 邯의 음은 감(酣)이라고 했다.
[4] 師古曰浿音普大反.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浿의 음은 배(普大反)라고 했다.
[5] 服䖍曰蟬音提. 복건(服䖍)이 말하기를 蟬의 음은 제(提)라고 했다.
[6] 師古曰渾音下昆反. 사고(師古)가 말하기를 渾의 음은 혼(下昆反)이라 했다.
[7] 應劭曰音移. 응초(應劭)는 暆의 음이 이(移)라고 했다.
[8] 師古曰台音胎 사고(師古)는 台의 음이 태(胎)라고 했다.
[9] 孟康曰昧音妹 맹강(孟康)은 昧의 음이 매(妹)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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