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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역사/-BC~0년; 진,한

요서...요동...낙랑...대방...

by 사마르칸트 2016. 4. 30.



말도 많고...탈도 많은


요동과 요서...낙랑의 경계를 그려봅니다.


요동과 요서가 요수를 경계로


동서를 구분하는 것은 후대의 개념일 것입니다.




요동과 요서를 구분한 것은 순전히


장성부터 시작하는 중국인들의 시각에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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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과 요서의 경계는 의무려산입니다.


한서지리지에


요동군내에 무려현이 있는 데...


의무려산근처에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요동군의 관할이


 요수의 동쪽지역만이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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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서군의 시점 또한 의문입니다.


요서군의 관할이 장성의 바깥만이 아니라...


유수(渝水;난하)근처의 지명이 많습니다.


즉 요서군은 장성의 안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나라 초기의 요서군은


난하하류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동군은 한나라에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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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소진이..


연나라 왕에게...동쪽으로 조선과, 요동이 있다


라고 했으니..


진개가 단군조선을 침략했고....


[연나라 장수 진개의 단군조선 공격도


요동까지는 못갔을 것입니다.]


진나라때는...연나라의 경계를 계승하고...


한나라때는 후퇴했으니...


한나라는 요동이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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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한나라 초기 경계는 난하 였을 가능성이 높고...


진시황의 진나라때 만든 동쪽 경계[대릉하부근]가 너무 멀어


가까운


패수를 경계로 삼았다고 하는 것은


난하였을 것입니다.


-난하 하류에 요서군의 지명이 집중되고 있네요...


-흉노족이 강성할때... 난하를 건너 진출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서는


흉노,몽골,거란이 공격하기 제일 쉬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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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흉노가 강성하여...


한참 한나라를 괴롭힐때...


흉노가 비어있는 조양땅을 달라고 하니...


한나라가 너무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고


흉노에게 줘버립니다....


조양근처, 요서땅도


한나라로서는 지키기 어려웠다...


즉 경계는 난하근처에 머물렀다는 것...



cf)국경을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안된다.


한나라 사람들이 난하 부근에서 살다가...


차츰 비어있는 요서로 옮겨 살게 되지만...


요서는 북방유목민[흉노, 거란,몽골]이


수시로 침략하는 곳....


그러므로...난하 동쪽으로 멀리 나가 살기 힘들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자연 땅은 비게 된다...



-오늘날의 장성은 명나라때 건설되었지만...


그 이전 고구려와 대치하든...북주, 당나라...


발해와 대치하든...당나라때...


요새를 만들면서 생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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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이후


흉노를 제압하고...


위만조선과의 전쟁이후...


요동군이 생기고........


낙랑군과 현도군이 생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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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요동과 낙랑의 경계는...


요동반도는 천산산맥을 기준으로...


2부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요동평야쪽과...한반도쪽입니다.


요동평야쪽은 일찌기 여러 도시가 발달 하였지만...


요동반도의 아래쪽...한반도쪽은


천산산맥에 가로막혀


중국측에서 접근하기 힘듭니다.


-아마도 천산산맥이 요동과


낙랑의 경계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사람들이 낙랑과 대방의 땅이


아주 먼곳처럼 이야기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요동평야를 건너면 장백산맥과 천산산맥에 가로 막힙니다.


이 험한 산을 넘어야


비로소 낙랑과 대방의 땅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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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군은 한나라가 끝나고...


중국 삼국시대에 공손도가 요동에 웅거하면서


낙랑군의 남쪽 황무지를 반으로 갈라 만든 군입니다...


그래서 요동반도가 낙랑,대방의 땅이라고


불려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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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서지리지로 들어가면...


또 복잡한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사마씨의 진나라가 공손씨를 멸하고


공손씨의 땅 전체를 이컬어


 "평주"를 설치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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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주(平州)


평주(平州). 안(按):

우공(禹貢)에서 말하기를 기주(冀州)의 영역인데,

주(周)에서 유주(幽州)의 경계로 했으며

한(漢)에서는 우북평군(右北平郡)에 속했고


후한(後漢) 말엽에, 공손도(公孫度)가 스스로 평주목(平州牧)이라고 불렀다.


이에 그의 아들 공손강(公孫康)과 공손강의 아들 공손연(文懿)이 요동을 아우르고 그

곳에 의거하니 동이 9종이 모두 복속하였다.


 위(魏)에서는 동이교위(東夷校尉)를 설치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고

그리고 (이를) 나누어 료

동(遼東) 창려(昌黎) 현토(玄莵) 대방(帯方) 락랑(樂浪) 5개의 군을 평주(平州)로 하였고

후에 유주(幽州)와 합하였다.


이에 공손연(文懿)이 망한 후에

호동이교위(䕶東夷校尉)로 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다.


함녕(咸寧) 2년 10월에 나누어

창려(昌黎) 료동(遼東) 현토(玄莵) 대방(帯方) 악랑(樂浪) 등의

군국(郡國) 5으로 평주(平州)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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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려지방에 평주가 있었다는...


복잡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누구는 요동에서 옮겼네... 안 옮겼네...


하지만...


딱히 어느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힘듭니다...


옮겼다는 쪽도 직접 증거가 아니고


..그냥 추론일뿐이죠....


안 옮겼다는 쪽도 딱히 안 옮겼다는


반증이 별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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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한반도와 만주에는 유래를 알수 없는


오래된 여러 나라가 있습니다.


-단군조선과, 북부여와 낙랑국과 마한입니다.


-함부로 낙랑국을 낙랑군이라 하면 안됩니다.


-대무신왕때 정복한 낙랑국이 낙랑군이라면...


낙랑군은 미천왕 이전에


이미 사라졌다는 이야기 입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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