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탈도 많은
요동과 요서...낙랑의 경계를 그려봅니다.
요동과 요서가 요수를 경계로
동서를 구분하는 것은 후대의 개념일 것입니다.
요동과 요서를 구분한 것은 순전히
장성부터 시작하는 중국인들의 시각에서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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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동과 요서의 경계는 의무려산입니다.
한서지리지에
요동군내에 무려현이 있는 데...
의무려산근처에 있었답니다.
그러므로 요동군의 관할이
요수의 동쪽지역만이 아니라는 반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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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서군의 시점 또한 의문입니다.
요서군의 관할이 장성의 바깥만이 아니라...
유수(渝水;난하)근처의 지명이 많습니다.
즉 요서군은 장성의 안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나라 초기의 요서군은
난하하류에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동군은 한나라에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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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소진이..
연나라 왕에게...동쪽으로 조선과, 요동이 있다
라고 했으니..
진개가 단군조선을 침략했고....
[연나라 장수 진개의 단군조선 공격도
요동까지는 못갔을 것입니다.]
진나라때는...연나라의 경계를 계승하고...
한나라때는 후퇴했으니...
한나라는 요동이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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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한나라 초기 경계는 난하 였을 가능성이 높고...
진시황의 진나라때 만든 동쪽 경계[대릉하부근]가 너무 멀어
가까운
패수를 경계로 삼았다고 하는 것은
난하였을 것입니다.
-난하 하류에 요서군의 지명이 집중되고 있네요...
-흉노족이 강성할때... 난하를 건너 진출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서는
흉노,몽골,거란이 공격하기 제일 쉬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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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도
흉노가 강성하여...
한참 한나라를 괴롭힐때...
흉노가 비어있는 조양땅을 달라고 하니...
한나라가 너무 멀어서 지키기 어렵다고
흉노에게 줘버립니다....
조양근처, 요서땅도
한나라로서는 지키기 어려웠다...
즉 경계는 난하근처에 머물렀다는 것...
cf)국경을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안된다.
한나라 사람들이 난하 부근에서 살다가...
차츰 비어있는 요서로 옮겨 살게 되지만...
요서는 북방유목민[흉노, 거란,몽골]이
수시로 침략하는 곳....
그러므로...난하 동쪽으로 멀리 나가 살기 힘들다....
사람이 살지 않으면 자연 땅은 비게 된다...
-오늘날의 장성은 명나라때 건설되었지만...
그 이전 고구려와 대치하든...북주, 당나라...
발해와 대치하든...당나라때...
요새를 만들면서 생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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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무제이후
흉노를 제압하고...
위만조선과의 전쟁이후...
요동군이 생기고........
낙랑군과 현도군이 생겼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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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요동과 낙랑의 경계는...
요동반도는 천산산맥을 기준으로...
2부분으로 나누어 집니다.
-요동평야쪽과...한반도쪽입니다.
요동평야쪽은 일찌기 여러 도시가 발달 하였지만...
요동반도의 아래쪽...한반도쪽은
천산산맥에 가로막혀
중국측에서 접근하기 힘듭니다.
-아마도 천산산맥이 요동과
낙랑의 경계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사람들이 낙랑과 대방의 땅이
아주 먼곳처럼 이야기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요동평야를 건너면 장백산맥과 천산산맥에 가로 막힙니다.
이 험한 산을 넘어야
비로소 낙랑과 대방의 땅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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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방군은 한나라가 끝나고...
중국 삼국시대에 공손도가 요동에 웅거하면서
낙랑군의 남쪽 황무지를 반으로 갈라 만든 군입니다...
그래서 요동반도가 낙랑,대방의 땅이라고
불려졌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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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진서지리지로 들어가면...
또 복잡한 이야기가 벌어집니다.
-사마씨의 진나라가 공손씨를 멸하고
공손씨의 땅 전체를 이컬어
"평주"를 설치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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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주(平州)
평주(平州). 안(按):
우공(禹貢)에서 말하기를 기주(冀州)의 영역인데,
주(周)에서 유주(幽州)의 경계로 했으며
한(漢)에서는 우북평군(右北平郡)에 속했고
후한(後漢) 말엽에, 공손도(公孫度)가 스스로 평주목(平州牧)이라고 불렀다.
이에 그의 아들 공손강(公孫康)과 공손강의 아들 공손연(文懿)이 요동을 아우르고 그
곳에 의거하니 동이 9종이 모두 복속하였다.
위(魏)에서는 동이교위(東夷校尉)를 설치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고
그리고 (이를) 나누어 료
동(遼東) 창려(昌黎) 현토(玄莵) 대방(帯方) 락랑(樂浪) 5개의 군을 평주(平州)로 하였고
후에 유주(幽州)와 합하였다.
이에 공손연(文懿)이 망한 후에
호동이교위(䕶東夷校尉)로 하여 양평(襄平)에 거하였다.
함녕(咸寧) 2년 10월에 나누어
창려(昌黎) 료동(遼東) 현토(玄莵) 대방(帯方) 악랑(樂浪) 등의
군국(郡國) 5으로 평주(平州)를 설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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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려지방에 평주가 있었다는...
복잡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누구는 요동에서 옮겼네... 안 옮겼네...
하지만...
딱히 어느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힘듭니다...
옮겼다는 쪽도 직접 증거가 아니고
..그냥 추론일뿐이죠....
안 옮겼다는 쪽도 딱히 안 옮겼다는
반증이 별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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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f) 한반도와 만주에는 유래를 알수 없는
오래된 여러 나라가 있습니다.
-단군조선과, 북부여와 낙랑국과 마한입니다.
-함부로 낙랑국을 낙랑군이라 하면 안됩니다.
-대무신왕때 정복한 낙랑국이 낙랑군이라면...
낙랑군은 미천왕 이전에
이미 사라졌다는 이야기 입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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