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행위와 행위자라고 하는 세 가지는
(물질적) 요소의 차이에 따를 뿐이라고 말해진다오.
(물질적) 요소를 열거하면서 있는
그대로 (설명하겠으니) 그것에 관해서도 들으시오. (19)
모든 존재 중에 불멸하는 하나의 존재,
분할된 것들 중에 분할되어 있지 않은
(존재)를 보는 지식이 순수한 것임을 아시오. (20)
그러나 모든 존재에 대해 각종의 다양한 상태를
개별적으로 아는 지식은 격정적인 것임을 아시오. (21)
그리고 하나의 결과에 대해 전부인 양 집착하여
근거도 없고 진리에 부합하지도 않는 비좁은
(지식은) 둔중하다고 한다오. (22)
결과를 구하지 않는 자가 집착을 제거하고
애욕과 증오 없이 행한 절제된 행위를
순수하다고 한다오. (23)
그러나 욕망을 구하는 자나 혹은 아만을 지닌 자가
많은 노고(를 겪고서 행한) 행위는 격정적인 것이라 한다오. (24)
결과와 손실과 상해와 인간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고
미망으로부터 시작된 행위는 둔중한 것이라 한다오. (25)
집착에서 벗어나 자기를 내세우지 않으며
정진력과 열정으로 가득 차 성공과 실패에
변함이 없는 행위자를 순수하다고 한다오. (26)
욕망을 지니고 행위의 결과를 바라며 탐욕스럽고
(남을) 해치려하는 불순한 마음을 지닌,
기쁨과 슬픔에 굴복된 행위자를 격정적이라 한다오. (27)
절제되지 않고 저속하고 완고하고 위선적이고
부정직하고 우둔하고 무기력하고 (매사에)
지체되는 행위자를 둔중하다고 한다오. (28)
(물질적) 요소에 따른 지성과 정진력의 세 가지 차이를 들어 보시오.
개별적으로 남김없이 말하겠소.
다남자야(아르쥬나)여! (29)
활동과 비활동,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위험과 안전,
속박과 해탈을 아는 지성은,
프르타의 아들(아르쥬나)이여!
순수하다오. (30)
옳은 일과 옳지 않은 일,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그릇되게 아는 지성은,
프르타의 아들(아르쥬나)이여! 격정적이라오. (31)
둔중함에 가리워져 옳지 않은 일을 옳은 일이라 생각하고
모든 가치에 왜곡된 지성은,
프르타의 아들(아르쥬나)이여!
둔중하다오. (32)
충실한 정진력의 요가로써
마음과 호흡과 감관과 활동을 취하는 정진력은,
프르타의 아들(아르쥬나)이여! 순수하다오. (33)
그러나 정진력으로써
의무와 욕망과 부를 취하며 집착되어
결과를 구하는 정진력은,
아르쥬나여!
격정적이라오.
프르타의 아들(아르쥬나)이여! (34)
잠과 두려움과 슬픔과 낙심과
교만을 버리지 못한 우둔한 정진력은,
프르타의 아들(아르쥬나)이여!
둔중하다오.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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