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질투관(嫉妬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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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에 이르시길 군자는 붕우강습(朋友講習)이라 이르셨고, 대열반경(大涅槃經)에는 말씀하기를 스스로가 득도(得道) 하지 못하면 먼저 다른 것을 제도해야 된다고 하였다.
금강경(金剛經)에는 말씀하기를 만약에 선남자와 선여인이 이 경 속에 모두 있는 것을 받아서 지탱해 가지고 이에 사구게(四句계) 글과 같은 그런 것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설명하면 복덕이 아주 좋아지고 나아지고 이사람의 복덕이 저사람의 복덕보다 더 낫다고 하니(피복덕(彼福德)이라 하고 저복덕(저福德) 이라고도 하니) 모든 사람과 더불어 함께 한다고 하였다.
자기를 그만두고 남을 쫓아서 따라가며 남에게 좋은 것이 돌아가도록 양보하는 것이 지선(至善)의 도리이니 이것은 말하자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지선(至善)의 도리를 하여야지, 질투와 사사로운 마음을 두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무릇 참 진여의 수련을 하는 사람은 심성과 생명을 수련해야 한다. 심성과 생명이라는 두글자는 모든 사람마다 갖추어 풍족하고 낱낱 사람들이 원만하게 성취해서 성인을 처리하는 데에도 더해주지도 않고 보통 범인을 처리하는데 더 감하지 아니하니 부귀빈천에 대해서나 현인과 어리석은 사람과 높고 낮은 데에 우리가 낱낱이 심성과 생명이 없으리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심성과 자기의 생명을 가지고 있은 즉 대도라 하는 것은 공공의 물체가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니 사람마다 가히 대도를 밝힐 수 있는 것이며 사람마다 가해서 신선과 부처가 될 것이다.
이것은 심신과 뜻있는 지사들에 있어서는 스스로가 수련하고 스스로가 정득할 다름인 것이라. 그러나 수련하고 정득함에 있어서 주요한 일은 밝은 스승을 찾아 구해서 가르침과 인도를 받아야 하고 현량한 벗에 자려하고 더함을 빌리는 것이니 밝은 스승은 주요한 강령을 제도하는 까닭이며 선량한 친구들은 그 식견을 확충하는 까닭인 것이라.
밝은 스승을 찾되 모름지기 주요함은 정성으로 찾아서 구해야 되는 것이며 어진 벗은 마땅히 존경해야 한다. 대개 어진 친구의 유익함은 반쯤 스승의 공이 있으니 저 사람의 지혜 있는 것을 빌려서 나의 무지함을 더 유익하게 하고 저 사람의 능한 것을 빌려서 나의 무능함을 잘 구제하면 이익 됨이 심히 많으니 어찌 가히 가벼이 거만하게 하리요.
그런 까닭으로 조사 님들이 모든 사람에게 일깨우는 바는 스승을 찾고 도반의 친구를 찾고 방문하는 일이라. 비유하건대 스승을 같은 스승으로 해서 도를 배우는 것은 같은 마음으로 하고 같은 일을 하는 것이며 아침저녁으로 모이는 곳은 모름지기 피차간에 서로 공경하고 서로 아끼자는 것이니 지선(至善)의 도리가 있으면 서로 권유하고 허물이 있으면 같이 법으로 삼으며 근심과 난리에 대해서 서로 붙들어주고 지탱하게 하고 질병에 대해서 밝게 돕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함께 많은 재물을 구할 때에 배 끊는 소리를 내서 치고 배를 그만두게 하되 저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나의 강설을 빌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은 저 사람의 개명한 것을 구해서 피차간에 서로 잘 구제해주면 그 공덕이 곱이나 더할 수 있게 된다.
하물며 같은 집에서 도를 배우는 사람은 심성과 생명의 벗인 것이다. 도의에 삽입이 되는 것이며 이치에 마땅히 가까이 친애하고 화한 기운으로 해서 저 사람이 깨달아 얻은바가 있는 것을 내가 깨달아 얻은 거와 같이하여야 한다. 저 사람이 실수한 것을 나의 실수와 같이해야만 이것이 진정 마음을 함께 하며 도를 배우는 선비인 것이다.
시전에 이르기를 남들이 가진 재주와 기술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고 남들이 아름답고 성스러운 것을 남들의 음성을 그 마음으로 좋아하는 것이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입에서 나오는 거와 같이 아닌 것이 이것인 것이라.
이세간에서 호도(糊塗) 학인 들은 스스로 자기는 뜻과 기운이 없는데 친구끼리 서로 권하고 힘쓰게 하면 도리어 아끼지 아니함을 더하고 자기 스스로가 허물을 범함이 있으며 친구간의 서로 경계하는 데에 곧 무명함을 일봐시서 다만 듣지 아니함은 아니지만 또 성내고 한스러움을 맘속으로 회포해서 생각을 하며 자기가 도리를 찬연해서 갈아서 닦지를 즐기지를 아니한다.
오래 되어도 아는 것이 없고 다른 사람이 은근하게 정성을 들여서 공덕을 사용함을 보고서 능히 풀 수가 있고 능히 깨달으니 스승을 높이고 착한 것을 발견하고 남모르게는 질투한 마음을 일으키니 그런 까닭으로 스스로 옳고 그른 시비를 반론하게 된다. 실패하는 사람을 좋은 일거리라고 여기며 자기의 무능한 것을 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사람의 능숙함을 꺼리고 삐쳐 도를 배우려는 생각을 아니하니 배운 즉 무슨 일을 하리요.
도(道)를 배운다는 것은 지선(至善)의 도리에 옮아가고 허물을 고치는 까닭인 것이다. 착하지 못한 곳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착한 곳으로 옮아가고자 하는 것이고 허물이 있음은 허물을 고쳐서 허물이 없기를 하고자 함이다.
다른 사람의 착한 것을 보아도 착한 지선(至善)의 도에 옮아가기를 알지를 못하고 자기 스스로는 본데 허물이 없으면서도 남들이 스스로 그 허물을 이루는 것을 미워해서 자기 마음 가지기를 적지로 유인하고 날마다 배우지만 날마다 하등 어리석은 사람이 자기 있는 곳을 옮기지 못하는 거기에 밑으로 하학을 해서 배우는 것이라.
다시 한 등급의 사람이 있으니 높고 낮은 그릇된 종류를 알지 못하고 사람이 도를 말하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앞에서 웃게 되고 남들이 수행하는 것을 보면 은근히 그 사람을 훼방해서 안되게 하며 이미 도를 믿지 않거늘 어찌 도에 들어갈 수 있으리요.
도문에 들어가서도, 도의 관[道관]과 조사의 관복과 조사의 의복을 즐기지 아니하며 조사님의 말씀을 어기고 조사님의 행동의 실천을 등지며 허물과 제어를 알지 못하고 인과응보에 대해서 연구하며 행동을 아니하니 어찌 도인이 된다고 하리요.
예전에 지장보살님은 사람 사람마다 다 부처님이 된 연후에야 비로소 부처를 이루겠다고 원력을 세웠고, 여조의 도인은 이 세상사람을 다 제도하고 다스림을 원력으로 하고자해서 바야흐로 스스로가 비승해서 날아가서 칠진으로 스승을 함께 해서 중량제군을 하고, 제군은 진인에 오른 뒤에 구씨와 유씨와 담씨와 왕씨와 학씨와 송씨 이 여섯 사람으로 다 마조에게 스승으로 섬겨서 제휴하여 다 마조에 제휴해서 인도함을 얻어서 대사를 완전히 하신 것이라.
배우는 사람들이 가장 긴요한 일은 큰 공변됨으로 존속시키고 사심을 없게 해서 모든 사람과 더불어 지선(至善)을 하되 자비심으로 해서 남도 이익 되게 하고 자기도 이익 되게 해야만 바야흐로 앞으로 나갈 수 있고 유익함이 있는 것이라.
내가 참마음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에게 권유하나니 속히 질투해서 미워하는 이 난관의 출입구를 가지고 타파하고 통달을 해서 대동적으로 크게 보편적으로 함께 하고 나라는 것을 없게 하고 자기를 꽉잡아서 고초스러운 수련 법을 가지고 갈고 닦고 수련하고 다스리며 남들의 장점을 높여주고 자기의 단점을 보아 고개를 숙여서 일을 하고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앞으로 전진해서 한 걸음을 달려 지나가면 이것은 한 걸음을 실행한 것이다.
이것이 한 공덕이 되는 것이니 성현의 이 심성을 존속시켜서 성현들이 실행한 것처럼 자기도 실행하면 그 마침내는 성현의 사업을 착실하게 끝마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한즉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꽉찰것이니 배울수록 더욱 무너지게 되는 것이라. 좋아하는 사람도 능히 이일을 치룰수 없거늘 어찌 감히 성혜를 바랄 수 있으리요. 망령된 생각을 하게 되니 도를 밝히는 일은 어려운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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